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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 중 일

[그데담 034] 안아준다고 해놓고.

by 이한얼






“근데 보통 작가의 글이 좋다고 작가를 좋아하진 않을 텐데.”


“그렇긴 하죠. 근데 그 사람들은 작가고, 도령은 작가가 아니잖아요.”


“아, 그렇네.”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응? 이해한 거 맞는 것 같은데?”


“도령을 무시하거나 부족하다고 말한 게 아니에요.”


“응. 그들은 글을 쓰는 프로고, 나는 삶을 기록하는 일반인이라는 거잖아. 더 정확하게는 그들 역시 삶을 기록하지만, 삶과 글 둘 다 하는 사람들이고, 나는 삶을 기록하는 하나만 하는 사람이고. 드라마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고 배우를 사랑하진 않지만, 그 캐릭터를 현실에서 보게 되면 눈이 가는 것처럼.”


“…….”


“그거 말한 거 아니에요?”


“맞아요. 혼자 다 말해버려서 내가 할 말이 없네.”


“내가 좀 그래요.”


“살면서 주변 사람들이 엄청 답답해했겠다.”


“어, 많이. 근데 왜?”


“왜긴. 도령이 알고 있는 게 늘 능사는 아니죠. 그들한테는 그들이 그걸 말하는 일로 마음을 풀 수 있는데, 그들이 말하기 전에 도령이 다 알아버리면 그들은, 특히 여자들은 말하면서도 못 풀지, 공감도 이런 식으로 받지, 말을 못 해서 아직 스트레스는 그대로인데 그걸 들어줘야 할 도령은 이미 알고 있으니 다시 말은 못 해서 답답하고.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서두만 듣고 다 알 것 같아도 좀 기다려줘요. 그들이 말을 다 마칠 때까지. 그거 안아준다면서 안길 기회 빼앗는 거랑 똑같아.”


“지금 당신도?”


“아니. 이번 건 아니고. 근데 나도 도령 오래 본 건 아니지만 그동안 몇 번이나 느꼈는데, 주변을 십 수년씩 지킨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답답하다 못해 이미 포기 상태겠지.”


“…맞는 말이네. 명심할게요.”


“근데 그게 또 그렇게 금방 바뀌는 건 아니죠. 도령이 그걸 몰라서 안 했겠어, 알고도 그랬겠지.”


“와, 이 여자 오늘 나 까는 게 찰진데.”


“지금 사회인 모드라서 그래요.”


“그놈의 점심시간은 왜 이리 길어?”


“이미 아까 끝났어요.”


“뭐야? 그런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알 게 뭐야. 부장 놈도 없는데.”


“부장이랑 안 친하구나.”


“안 친한 게 뭐야. 또라이만 모아 놓은 도시가 있으면 분명 시의원쯤 해먹을 놈이라니까.”


“보존 법칙 무섭네. 엄청 좋아하는 상사가 있다고 하더니, 역시 그런 괜찮은 사람만 있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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