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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 중 일

[그데담 035] 안 웃을 기분도 아니지.

by 이한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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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그렇게 웃겨요?”


“응. 되게 웃긴데.”


“신기한 여자네.”


“웃으면 좋지, 뭘 그래요.”


“맞아요. 사람은 웃는 게 예쁘지.”


“나 예쁘다는 말?”


“웃는 사람이 예쁘다는 말.”


“거참 예쁘다는 말 비싸네!”


“그게 그 말이지. 어쨌든 얼굴이 활짝 폈네. 밥 먹기 전만 해도 얼굴이 우중충하더니.”


“티 많이 났어요?”


“완전. 집에 우환 있는 줄 알았어요.”


“그 정도였어? 미안해요. 사실 오늘 하루 종일 좀 우울했거든.”


“왜? 또 부장 놈 때문에?”


“그쪽은 일상이라서 이젠 새삼스럽게 우울해질 것도 없네요. 이젠 개념 있는 짓 하면 그게 더 불안해.”


“알만 하다. 그러면요?”


“…그냥. 흘러가는 일?”


“그래요. 그럼 이젠 괜찮고?”


“…글쎄.”


“글쎄?”


“…나는요, 웃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음….”


“지금 뭔 소린가 하고 있죠?”


“맞아요. 정확하게는 이 소리인지 저 소리인지 구분 중이에요.”


“사람이 그렇잖아요. 기분이 좋아야 웃죠. 웃기는 일이 있어야 웃어요. 보통은 그렇죠?”


“아. 그 말이었구나.”


“또! 또 그런다!”


“아, 미안해요.”


“말할 기회 빼앗지 말라니까.”


“오케이. 자, 안겨요.”


“됐어요. 다시. 보통은 그렇죠?”


“보통은 그렇죠.”


“나도 그래요. 근데 나는요.”


“응. 너는요?”


“…….”


“죄송합니다. 혹시 울적함이 남았을까 봐 잠깐 장난쳤어요.”


“거 되게 고맙네요. 텐션 올려줘서.”


“진짜 장난은 끝. 그래서요?”


“음,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러니까 나는 그래요. 기분이 좋을 때 웃으면 더 좋고, 기분이 엉망일 때는 잘 안 웃게 되죠. 대신 울적할 때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으로도 웃도록 내 나름대로 훈련을 했어요. 정말 아주 사소한 거로도요. 예를 들어 카페에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지나가는 고양이가 기지개를 쭉 켜거나, 혼자 방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놓쳐서 얼굴 위로 철퍽 떨어진다든지.”


“으, 아프겠다.”


“아프죠. 근데 나는 그런 것에도 빵빵 터져요. 그냥 재밌고 뭔가 웃기잖아. 그래서 혼자 깔깔대면서 웃고 나면 울적했던 기분이 어느새 날아가 있어요. 마음도 가볍고 상쾌해지고. 그러면 그 기세를 잡고 벌떡 일어나서 막 뭐라도 하는 거예요. 아까 그 울적한 기분에 미뤄놨던 빨래라든가 청소라든가. 사실 아까도 할 수 있었지만 울적할 때 하면 사실 재미도 없고 지루하니까. 근데 아까 말한 어떤 계기로 인해 잠깐이라도 웃고 난 후라면 그런 것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좋아하는 노래까지 있으면 더 좋고요?”


“맞아요. 좋은 기분이 가기 전에 얼른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청소든 빨래든 열심히 하는 거예요. 가끔은 할 게 청소밖에 없어서 세탁기 안 돌리고 일부러 손빨래하기도 해요.”


“참 좋은 일이에요. 사람의 삶에서 기세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죠.”


“나는 보통 그런 식으로 간혹 찾아오는 울적함을 날리는 편이에요. 원래 자주 울적한 사람도 아닌 데다가, 가끔 오는 적당한 울적함은 그렇게 날려버리니 내 일상이 많이 깔끔해졌어요.”


“그리고 거기서 걸러지지 않는 거대한 우울함은 지난번에 말한 대로 풍덩 빠지고?”


“맞아요. 도령 만나고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이 그거예요. 우울함과 쾌적함 간에 명확한 선을 그어놓게 됐어요. 내 일상은 대체로 상쾌하고, 아주 가끔은 옴팡지게 우울해요. 그렇게 명확하게 나눠놓으니 오히려 양쪽 다 말끔해졌어요. 도령이 말한 그 균형도 잘 맞고요. 감정과 몸의 균형 둘 다. 나는 개운할 땐 정말 개운하게 잘 살다가, 우울할 때는 아주 세상 끝까지 우울해지는 거예요. 물론 자주 오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렇게 양쪽을 명확히 나누니 양쪽 다 만끽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음. 개인적으로 나는 그걸 ‘마음에 팔레트를 나눈다’고 표현해요. 그 부분적인 활용 같은데, 혹시 봤어요?”


“맞아. 내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처음 생각난 게 그 글이었어.”


“훌륭해요. 예시로 삼을만한 참한 학생이네.”


“도령은 참 칭찬을 욕처럼 하는 재주가 있다니까.”


“그리고 욕을 칭찬처럼 하는 재주도 있죠. 그나저나 이 여자 언제 이렇게 말끔해졌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꽤나 질척하게 살던 여자였는데.”


“표현이 정말 매를 부르지만, 뭐 맞는 말이에요.”


“계기가 뭐였던 것 같아요?”


“계기?”


“사람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면, 크든 작든 어떤 스위치가 탁 하고 켜지는 순간이 있죠. 나쁜 변화라면 스위치가 탁 꺼진다고 표현하는 거 더 어울리려나. 아무튼 어떤 계기가 있었을 텐데.”


“계기라…. 계기라는 건 잘 모르겠고, 그냥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거라고 봐요. 사소한 것에 빵 터지는 거.”


“음, 축복받은, 아니지, 훌륭한 훈련이네요.”


“적당히 우울하던 중에 그렇게 빵 터지고 나면 그 뒤는 내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 일사천리로 기분이 좋아지니까.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나 웃을 기분 아니야’라는 말. 맞는 말이죠. 사람이 살면서 웃고 싶은 기분이 뭐 얼마나 자주 오겠어요. 근데 그 말이 곧 ‘울고 싶은 기분이야’라는 뜻은 아닌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지금 웃을 기분은 아닌데, 그렇다고 안 웃고 싶은 기분도 아니야’라는 말인 것 같아요. 요즘 내게는 오히려 ‘좀 웃고 싶다’라고도 들려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웃고 싶지 않은 기분’하고 ‘울고 싶은 기분’하고 같다고 혼동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 나도 좀 그랬어요. 그때 나는 웃을 만한 계기도 없었고, 그런 훈련도 없었고, 뭔가에 쉽게 터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니 더 이도 저도 아니게 애매한 상태로 살았던 것 같아.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어정쩡하게. 뭐든 다 섞여서 아무것도 즐기지 못했어요. 그래서 내 삶이 그렇게 늘 무미건조했나 봐.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그냥… 그냥…….”


“…끝?”


“…일단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는데.”


“여전히 거짓말은 못하네. 좋아, 아이스크림 먹으러 갑시다. 무슨 맛?”


“체쥬 두 개.”


“안 돼. 이건 내가 사는 거니까.”


“싫어. 그럼 이것도 내가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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