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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녹차 초콜릿 맛있네.”
“아, 진짜! 그렇다고 세 개 시키면 어떡해요!”
“당신이 자꾸 그걸 먹이려고 하니까 그렇지.”
“알바생이 나 이상하게 쳐다봤잖아.”
“뭐 좋아하면 두 개 먹을 수도 있지.”
“나 두 개 안 먹어!”
“그래서 하나 취소했잖아요. 빨리 먹어, 녹는다.”
“내가 진짜, 언젠가 꼭 먹이고 만다.”
“기대할게요. 근데 진짜 끝이야?”
“뭐가요?”
“아까 진짜 할 말 다 한 거예요?”
“…….”
“다 했나 보네. 그래요, 축하해요.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서 나는 참 기뻐.”
“도령 묘하게 책 읽는 어투인데.”
“맞아요. 그러니 이 긴 서론은 여기서 끝내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요.”
“티 많이 나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완전. 서론의 내용에 비하면 처음 말 꺼낼 때 표정은 참 우울했거든. 근데 결론은 아니잖아. 마치 말을 꺼내놓고 ‘말하지 말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급하게 마무리한 사람처럼.”
“거기까지 알았으면 좀 모른 척해주지.”
“알다시피 나는 그렇게 친절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얼른 내놔요.”
“…그냥, 별 건 아니에요.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고 나니 ‘예전의 나 같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더라고.”
“예를 들어?”
“요즘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 ‘요즘 묘하게 밝아 보여요’라든지, ‘전이랑 달라 보이네요’라든지. ‘무슨 좋은 일 있어요?’라는 말도. 요즘 내가 어지간히 헤실 거리고 다니나 봐.”
“뭐, 좋은 말들이네.”
“태반은 그런데 몇몇 사람은… 뭐랄까, 약간 시비조 같았어요.”
“음, 확실한… 아니, 아니지. 그런 건 원래 뉘앙스니까 받은 당사자인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 그래서요?”
“옛날엔 안 그랬는데. 아니, 내가 안 그런 사람이었으니 아마 내 눈에 안 보인 것일 테죠. 아무튼 옛날엔 그런 주제도 나올 일이 없었는데. 요즘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내 대답은 주로 ‘그러네요, 요즘은 좋을 일이 많네요’라고 해요. 그럼 칭찬으로 말해준 사람들은 거기서 웃고 끝나거나 다른 호의 섞인 말이 돌아오는데, 몇몇 사람은 뭐랄까, 약간 눈꼴시다는 눈빛이 돌아와요. ‘좋은 일이 많아서 좋겠네요’라는 식의.”
“우와, 진짜가 나타났다! 소인배들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의 나도 참 못났지. 그 사람들처럼 티 나게 되받아치진 않았지만, 그래도 헤실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 보면서 속으로 ‘참 세상 편하게 산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심 얕잡아보고 있었던 거지. 내가 별로 안 신나니까, 내 일상이 별로 즐겁지 않으니까 남을 봤을 때 좋은 의미보다 나쁜 의도에 치중했어요. 그리고 일괄적으로 매도했던 것 같아요. 좋은 일 있다는 사람에겐 ‘거 좋은 일 있어서 좋겠네’라고. 헤실거리는 사람은 생각 없이 사는 사람으로. …그러고 보니 나 언제부터 그렇게 삐뚤어진 사람이 된 거지?”
“자아탐구는 나중에 하고. 어쨌든 지금은 그런 여자 아니잖아.”
“도령 말대로 지금은 안 그래요. 깨닫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재미없게 살았는지 알게 됐으니까. 그 순간 내 기분은 정말 끔찍했어요. 이젠 그러지 않고, 예전처럼 뭐든 어중간하게 살지도 않고,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보다 웃어야 기분이 좋은 거라고, 그리 사는 게 훨씬 행복하다고 깨달았어요. 근데 그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기분이 안 좋대요. 웃을 일이 없대요. 게다가 웃을 기분이 아니라고도 해요. 예전에 나도 분명 그랬겠죠?”
“내가 보기엔.”
“맞아. 내가 보기에도 그랬어. 근데 이젠 그들이 답답하더라고. 한편으론 울컥하기까지 했어요.”
“그래서요?”
“웃을 기분일 때만 웃어서 지금 당신이 그만큼만 행복한 거 아니냐고….”
“어? 그렇게 말했어요?”
“…아니요. 그렇게 말 못 했어요.”
“음, 왜요?”
“그걸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저 말은, 또 다른 핑계를 불러오는 ‘시빗거리’일뿐이니까요.”
“그렇죠. 잘했어요.”
“저런 상황에서, 내가 어디까지 말하는 게 가장 잘한 걸까요?”
“그보다 앞서 ‘내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그 질문의 답이겠죠.”
“그런가….”
“아마도.”
“뭔가 떠밀리듯 주르륵 뱉어내긴 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왠지 좀 창피하기도 하고.”
“잘 들었어요. 창피할 이야기도 없었고.”
“도령이랑 있으면 자꾸 어리광 부리듯 말을 하게 돼. 원래 이렇게 칭얼거리는 성격 아닌데.”
“좋은 거야. 할 수 있을 때 즐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