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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 중 일

[그데담 037] 왜?라고 먼저 물어볼게요.

by 이한얼

[1/3]






“그러고 보니 ‘그데담’ 첫 글이 막대과자 데이였죠?”


“무슨. 그날 10월의 어느 날이었지.”


“그랬나. 반응 보니 어지간히 싫어하나 봐.”


“그냥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그저 휩쓸리고 싶지 않은 거지.”


“왜? 좋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죠. 크리스마스도 나쁘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날이니까. 그래도 자의를 배제한 시류에 무작정 따라가는 것을 최대한 경계하는 편이에요.”


“왜? 그냥 싫어서?”


“그것보다는… 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면 습관이 되니까.”


“무슨 습관?”


“말로는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인데. 굳이 표현하자면 누군가 만들어놓은 판 위에 올라갈 때는 우선 ‘왜?’라는 생각을 먼저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것에 대해 내 호불호를 따지기 이전에.”


“이런 부분은 다르구나.”


“당신은?”


“도령 말에 맞춰보면 나는 내 호불호? 그걸 먼저 따지는 편이니까. 어떤 팬덤이나 시류 같은 것에 대해 그냥 단순하게 내가 그것을 좋아하면 그냥 즐기는 편이지.”


“보통은 그렇지.”


“그래서 사실은 이해가 잘 안 돼.”


“이해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그냥 그렇구나 하는 거지. 그런 의미로 오늘은 어때요?”


“난 좋던데. 비싸지 않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날이니까.”


“분위기도 있으니 못했던 전달도 쉽게 할 수 있고?”


“그렇죠. 사실 우리나라 선물 문화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평소에 선물을 자주 주고받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보니까. 나도 그렇고 내 주변도 그렇고. 보통 선물은 어떤 날이나 일을 기념할 때 주잖아.”


“맞아. ‘그냥 생각나서 소소하게 하나 샀어’라는 사람들도 분명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런 날 얼마나 좋아. 핑계도 좋고, 주기에 부담도 없고. 나는 오히려 이런 날을 이용하는 편이에요.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 신세 졌지만 아직 갚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은근히 미운 사람들까지도. 날을 핑계 삼아 일 년 동안 몰아놨던 은원을 청산하려고 해요. 갑자기 가서 뭐 평소에 신세 많이 졌다, 지난번에 고마웠다, 이런 말 하는 거 쑥스럽잖아. 그냥 과자 하나 내밀면서 겸사겸사 말도 같이 하는 거지. 많이 고마웠던 사람은 거기에 작은 거라도 뭐 하나 얹어주고. 미운 사람은 그냥 예의상 과자 하나만 딱 던져주기도 하고. 뭐 보통 회사에서는 남들 시선이 있으니 통일하는 편이지만, 전하고자 하면 몰래몰래 줄 수 있으니까.”


“좋은 취지를 잘 활용하고 있네요.”


“그리고 다른 의미도 있어요. 그동안 은근히 미운 사람 있잖아요. 주고 싶지도 않고 안 줘도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도 먼저 하나 내밀면서 인사하는 거죠. 그동안 고마웠다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사실 고마운 일도 없었고 미운 일뿐이었지만, 그냥 그러면서 혼자서 미움을 청산하는 것 같아. 지난 건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좋게 잘 지내보자. 그렇게 스스로한테나 상대에게 계기를 만들어주는 거지.”


“오. 그런 건 참 좋다. 현명한 여자네. 그래서 결과는 어땠어요?”


“…….”


“표정 보면 알겠네.”


“사실 결과는 별로예요. 역시 한 번 밉상인 사람은 쉽게 안 변해.”


“의외인 친절에 감동해 잠시 달라진 듯하다가, 그 주가 끝나기도 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그러겠지.”


“맞아. 그러면 ‘내가 내년에는 주나 봐라!’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어지간하면 또 주게 되지. 내년에도.”


“응? 어떻게 알았어요?”


“그 정도 생각을 하고 실행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그 정도 크기의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고, 반대로 표현하면 그 정도 크기의 악순환은 견뎌낼 내구성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나는 그냥 내가 멍청이라서 그러나 보다 싶었는데.”


“멍청한 것도 아니고 착한 것도 아니야. 선해서 그래. ‘어떤 일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권력이라 하는데, 당신은 다음에 그 사람에게 그걸 다시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잖아. 그럼 그 순간 당신은 그만큼의 권력을 가진 거야. 권력을 가지고도 착한 사람, 다시 말해 착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힘을 가지고도 여전히 착한 사람을 선하다고 해요. 그리고 그 선함을 ‘모두를 이롭게 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현명하다고 하고. 그러니 당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고, 단지 똑똑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거야.”


“갑자기 칭찬 들으니 등이 간지럽네.”


“입력 없이 선을 먼저 내미는 건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내민 선의에 악의가 돌아왔음에도 다시 선의를 내미는 건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예요. 선한 사람이 현명한 결과를 위할 때 할 수 있는 일이지. 잘했어요. 그 행위는 결국 당신을 이롭게 할 거야.”


“그래서 그런지, 정말 간혹 그런 일로 바뀌는 사람도 있어요. 그 전까진 잘 안 맞다가도, 그런 일이 있고 나선 이상하게 트러블이 사라져. 오히려 막 친해지기도 하고.”


“사실 모든 ‘나와 맞지 않는 사람’ 중에 대부분은 ‘아직은 나와 맞추지 않은 사람’이니까. 작은 계기로 그간 막혔던 둑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죠. 그리고 그게 다시 막히기 전에 다른 요소로 탄력을 받으면 언제 으르렁거렸냐는 듯이 친해질 수도 있고. 뭐, 당신 말대로 극히 드문 경우지만?”


“그런가 봐. 그래서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문데도 내가 아직도 이걸 계속 하나 봐요.”


“아주 제대로 써먹고 있네. 오늘 같은 날 다 해버려서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초에는 뭐하려나.”


“은원 관계는 분초 단위로 갱신되니까. 그때는 또 그때의 대상들이 있더라고.”


“맞아. 아무튼 ‘무슨무슨 데이’의 순기능을 맘껏 누리고 있네요. 사실 시류가 문제겠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겠지. 나도 잘 쓰면 좋은 날인 건 인정해요.”


“그래! 어쨌든 내 말은 나는 이 날을 엄청 좋아한다고!”


“좋아하라니까. 누가 말려.”


“그러니까 그만 구시렁대고 그냥 좀 먹어요! 줘도 이래!”


“죄송합니다. 근데 이거 너무 짧잖아. 그래도 옛날에는 젓가락만 했는데 지금은 거의 이쑤시개….”


“또!”


“그래. 이쑤시개로 젓가락질하면 되지. 그게 호구지.”


“내놔. 내가 가진 권력으로, 내년부터는 안 줄 테니까.”


“왜 이래. 선순환할 줄 아는 현명한 여자가.”


도령이 가진 악순환까지 버틸 내구성은 또 안 되나 보지. 내놔.”


“오, 맛있다. 이거 되게 맛있네. 엄청 튼튼한 여자가 줘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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