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백 중 일

[그데담 041] 형광펜과 스무고개 1

by 이한얼

[1/2]





“왜 노트가 여러 개예요?”


“집에 있는 노트 말하는 거죠?”


“응.”


“뜬금 맞는 소리지만, 나도 많이 발전했다.”


“뭐가?”


“뭐긴. 어떤 여자가 단거리 투창을 던지면 예전에는 도돌이표 물음을 던졌는데, 이제는 다음 마디 물음 정도는 던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 또 너무 단도직입적이었나?”


“보통 이럴 때 ‘갑작’이나 ‘대뜸’이라는 단어를 쓰던데. 손재주가 좋아서 그런가, 포장을 예쁘게 하네.”


“나도 많이 발전했네. 지금 이게 욕인 걸 바로 알아채는 걸 보니.”


“원래 사람이 욕먹는 것에는 민감하지. 칭찬 듣는 것에는 인색하고.”


“칭찬 듣는 거에 인색한 거는 뭐예요?”


“사람은 칭찬이든 욕이든 백 프로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조니까.”


“알았어, 여기까지. 도령이랑 말하다가 옆길로 세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까 이건 넘어가고. 처음 질문.”


“노트?”


“응. 왜 여러 개예요? 하나만 써도 되지 않나?”


“안 될 건 없죠. 혹시 일기 써요?”


“전부터 쓰긴 했는데 그땐 드문드문 썼고, 도령 만나고 나서부터는 매일 써요.”


“노트 하나만 쓰는구나.”


“맞아요.”


“그렇구나. 근데 난….”


“근데?”


“짧게 말하고 싶어서 단어 압축 중.”


“길게 말해도 되는데.”


“말의 방식 역시 대답의 한 부분이 될 테니.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이라이트’ 예요.”


“…너무 짧아요.”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글이 너무 많아서죠.”


“글이 너무 많아서 여러 개로 나눈 거란 뜻이에요?”


“맞아요. 근데 아마 짐작한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


“무슨 짐작?”


“방금 내 이야기 듣고 왜일 거라 짐작했어요?”


“글쎄. 글이 너무 많아서 노트가 여러 권이다. 종이 노트처럼 끝까지 다 써서 새로 샀다는 말은 아닐 거고. 집은 어차피 데이터니까 계속 쌓이기만 하지 용량 제한은 없으니까. 그러면 글이 너무 많아서 종류 나눴다는 말 아니에요?”


“맞아요. 근데 종류를 왜 나눴을까?”


“이 아저씨 또 스무고개 하시네. 다른 장르라서?”


“그것도 맞아요. ‘빨간’이나 ‘회색’ 같은 경우에는 맞아요.”


“그런 다른 건?”


“아까 말했잖아요. 하이라이트.”


“…혹시 운전 중에 긴 말 시켜서 기분 나쁜 건 아니죠?”


“전혀 아닌데. 갑자기 왜?”


“오늘따라 말을 되게 찔끔찔끔 하다마는 것 같아서.”


“눈치도 빠르네. 아무튼 옆길로 새지 말고.”


“아, 맞다. 노트, 양, 장르, 하이라이트…. 아.”


“정답!”


“뭐야.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근데 맞는 것 같아.”


“그러니까 글이 너무 많아서 장르 별로 먼저 나누고, 나머지 같은 장르 안에서 형광펜으로 칠하듯 나눠놨다는 말이죠?”


“정확해요. 아까 말했듯이 ‘빨간’이랑 ‘회색’은 장르의 구분을 위해 나눠놓은 거예요. ‘빨간’은 사진이랑 같이 들어가는 거고 ‘회색’은 주로 프로젝트 성 글 묶음이나 어떤 것의 별첨 부록처럼 좀 특별한 것들을 모아놓은 거고. 근데 ‘검정’이랑 ‘하얀’은 장르적 차이는 없지. 내가 ‘하얀’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예요. ‘검정’에만 쓰다 보니까 글이 너무 많아진 거예요. 난 매일매일 숨 쉬듯이 뭔가를 계속 토해내는 사람이니까. 그 안에 내 생각, 그날 있었던 지극히 사소한 사건 기록, 정리해놓은 사상, 아직 정립하지 못한 생각, 잡념, 고민, 어떤 것에 대한 비판이나 예찬, 그리고 그냥 싸질러 놓은 똥 같은 찌꺼기까지 기타 등등이 죄다 난잡하게 섞여있어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내가 어떤 기준에 따라 그것들을 분류해 놓지도 않았고요. 물론 하고자 해도 그럴 수도 없고. 사실 생각이라는 게 장르로 나눠서 딱딱 구분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나오는 대로 쌓아놨는데, 이게 쌓이다 보니 정리하기도 힘들고 다시 읽기도 힘들더라고요. 정리 없이 모아놓기만 한 탓에 다 뭉쳐서 개똥처럼 굳어버리는 거야. 내가 살면서 배우는 것의 절반 이상은 지난 내 글을 보면서 얻는 것인데, 이건 정말 효율이 좋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장르로는 나눌 수 없으니 두 개의 기준으로만 나눠놓자고 생각했고, 그래서 ‘하얀’이라는 노트를 만든 거예요.”


“나눌 수 있는 두 가지의 기준은 뭐였어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두 가지 기준으로 글을 옮겼어요.”


“이유랑 기준은 서로 다른 거예요?”


“달라요. 이유는 넘긴 이유. 기준은 넘길 때 가린 기준. 듣다 보면 이해될 거예요. 일단 두 가지 기준부터. 첫째는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진 글. 둘째는 나중에 다시 보면 눈길이 머물 것 같은 글. 말하자면 ‘단상의 양을 넘어간 것’과 ‘예상 하이라이트’인 셈이죠. 그렇게 옮겨놓는다고 절대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죠. 단지 나누기만 했으니까. 근데 신기하게 정리가 더 잘 됐어요. 보기에 편한 건 당연하고. 그리고 두 가지 이유는 단순해요. 첫째는 ‘검정’에 들어가기 너무 긴 글을 ‘하얀’에 별도로 올렸더니 읽기도 쉽고 분류도 편하더라. 둘째는 ‘검정’의 양이 확 줄어 이쪽도 가독성과 집중도가 올라가더라. 이렇게 두 가지 기준과 이유로 노트를 나눠놓았습니다. 끝.”


“나 참. 짧아진 리스트가 그 정도야?”


“반대로 ‘검정’과 ‘하얀’이 합쳐져 있다고 상상해 봐요. 읽고 싶겠어요?”


“…그것도 그러네.”


“내가 썼지만 내가 읽기 싫더라. 가독성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양만 봐도.”


“아무튼 그랬구나. 고마워요, 성실히 대답해줘서.”


“이렇게 물어봐주는 사람은 처음이라 신선한 질문이었어요.”


“항상 느끼는 건데 무슨 국숫집에 있는 식권 자판기 같아.”


“참신한 비유이긴 한데, 왜요?”


“뭘 물어봐도 바로 대답이 나오니까 신기해서.”


“아, 내가 당신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나 보다.


“나 그 글은 봤거든! 말을 해도 꼭!”


“으악! 들켰다!”


“평소에 다 생각을 해놓는 거예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그건 무슨 말이래요?”


“이건 지난번에 말했던 '행위의 정립'이랑 연결되는 건데, 블록 장난감에 비유해볼게요. 내가 생각과 행동을 정립한 결과값이 블록 장난감 완성본이라 치면, 만 개의 정립을 했다고 만 개의 블록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나는 블록을 100개쯤 가지고 있을 뿐이야. 그걸로 혼자 있을 때 천천히 장난감으로 만들어요. 그리고 완성하면 설계도만 복사해놓고 다시 분해해요. 그 부품으로 다른 장난감도 만들어야 하니까. 그럼 머릿속에는 100개의 부품과 만 장의 설계도가 있겠지. 그게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에요.”


“왜 무너트려요? 그냥 놔두면 안 돼?”


“난 지식인도 아니고, 나이도 어려서 여분의 부품이 없어요. 나와 다르게 학식, 배움, 연륜, 경험이 풍부한 지식인이라면 굳이 무너트리지 않아도 다른 설계도를 만들 만큼 많은 부품이 있겠지. 나는 아니니까 무너트린 상태로 있다가 누군가 뭘 물었을 때, 그에 해당하는 설계도를 펼치고 다시 만드는 거예요. 한 번 해봤고 설계도도 있으니 전에 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완성하겠지. 물론 이미 만들어놓은 상태로 둔 사람보다는 느릴 거고. 어차피 부품은 금방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 부품을 찬찬히 늘려가면서 동시에 허물고 재구축하는 속도도 함께 키우는 거죠. 그게 내가 말하는 방식이고.”


“공장에서 철로를 만들고, 동시에 달리면서 지나간 철로를 들어 눈앞에 까는 것처럼?”


“다른 표현으로는 목으로 고기를 삼키면서 오른손으로 고기를 집고, 왼손으로 불판에 고기를 올리면서, 입으로는 고기를 주문하는 셈이지.”


“…갑자기 고기 먹고 싶다.”


“이 여자 원래 이런 취향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싫어요?”


“아니. 완전 내 스타일이야. 고기 먹으러 갑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데담 039] 왜?라고 먼저 물어보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