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내가 생각해봤는데.”
“웬일이야. 밑밥을 먼저 깔고.”
“아니. 이건 이렇게 말할 일이니까.”
“아무튼, 생각해 봤는데?”
“도령의 스무고개는 타이밍이 참 묘해요.”
“어떤 식으로요?”
“뭐랄까. 의도적이라고 할까. 고의적? 악의적?”
“잠깐. 악의적은 뭐야.”
“아니, 이건 본심. 아무튼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냥 장난을 치나 보다 싶었는데, 요즘에는 뭔가 의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여자 은근슬쩍 본심이래.”
“으악! 걸렸다! ㅋㅋ 넘어갈 줄 알았는데.”
“웃으며 얼렁뚱땅 넘기려는 뻔뻔함도 늘었고.”
“방금 도령한테 배운 거니까.”
“뭐, 어쨌든 전기식 사고의 통찰력은 역시 대단하네.”
“응? 무슨 말이에요?”
“아니에요. 아무튼 그랬구나.”
“대답이 좀 애매한데.”
“반반이니까. 장난 삼아 하는 것도 있고, 의도도 있고.”
“무슨 의도예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혹시 직관적이라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아닌데.”
“그래? 그럼 분석적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어요?”
“아니. 그런 말도 안 들었는데.”
“그냥 그런 종류의 말을 아예 안 들었어요?”
“갑자기 웬 흑백논리? 사람이 분석적인 게 아니면 직관적인 거예요?”
“그게 그렇게 되나.”
“그렇지 않아요?”
“맞네. 어느 하나이기만 한 사람은 없지. 누구나 여러 가지 모습을 한데 품고 있으니까. 무작정 분석적인 사람도 없고 반대인 사람도 없고. 다만 어느 쪽으로 좀 더 편중되어 있을 수는 있어도.”
“내가 어떻다는 얘기는 들은 적 없는 것 같아요. 도령이 보기엔 어때요?”
“내 생각으로는 직관적인 부분이 더 강한 것 같은데. 혹시 MBTI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나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서.”
“왜요?”
“난 바넘 효과에 많이 휘둘리는 타입이라.”
“동의해요. 문항으로 사람의 유형을 나누는 모든 검사는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지. 그럼 혈액형 별자리 성격유형이나 띠별 운세 이런 것도 별로 안 좋아하겠네.”
“그건 그냥 재미로만.”
“그럼 나중에 생각나면 MBTI는 해봐요. 나는 개인적으로 꽤 괜찮다고 생각했거든.”
“알았어요. 아무튼요?”
“방금 건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말한 거고.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이 굉장히 직관적인 사람이라고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당신이 동의할지 모르겠는데, 뭐랄까, 당신은 굉장히 센스가 있는 사람이거든. 그게 어떤 센스냐면, 어떤 문제를 보면 아주 직관적으로 답을 딱 찾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나보다 몇 배는 더. 사고처리 유형이 전기 같은 사람이에요.”
“전기 같은 건 또 뭐예요?”
“혹시 화났어요?”
“아니요. 갑자기 왜요?”
“아니면 다행인데. 뭐랄까, 좀 예민해 보여서.”
“으흐흐.”
“갑자기 왜 웃어?”
“아니, 재밌잖아. 아까는 내가 그러고, 이제는 도령이 그러고.”
“뭐, 이렇게 맞춰가는 거지.”
“맞아. 아무튼 화난 거 아니에요. 나 궁금할수록 반응이 빨라져요.”
“반응도 되게 직관적이네.”
“아무튼 그렇게 보였으면 미안해요. 나 사실 이런 점 때문에 오해도 많아서, 고쳐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그랬겠다. 근데 그건 고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 설명했을 때 상대가 이해해줘야 하는 부분이지.”
“그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튼 전기 같은 게 뭐냐면, 나 역시 흑백논리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사람의 성향이나 유형을 나눌 때는 이분법을 자주 사용해요. 이분법적 분류가 추상적인 것을 설명할 때 가장 효과적이니까.”
“왜요?”
“이때 이분법의 용도는 규정짓는 게 아니라 뉘앙스 전달이니까. 추상적인 것 자체가 표현하기도 전달하기도 어려운데, 그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과 정 반대인 느낌을 대조시키면 이해가 확 오잖아. 그 양극의 대조에는 이분법이 가장 확실하고.”
“아. 거기까진 이해했어요.”
“그래서 그 이분법적인 분류에 의하여 나는 사람의 사고처리 유형, 즉 생각하는 방식을 둘로 나누면 전기식이 있고 발화식이 있다고 봐요. 둘 다 불을 밝히는 거야. 그리고 불을 밝히는 게 어떤 정답을 찾는 거라고 가정했을 때, 발화식은 일단 나무에다가 불을 붙이는 것처럼 천천히 불을 밝히는 거죠. 조건이나 근거를 하나씩 더하면서 답을 향해 나아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조건이 맞춰지면 불이 확 붙는 거지. 반면 전기식은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탁 하고 불이 켜져요. 그러고 나서 그 불이 어떻게 켜졌는지 찾아가는 과정이죠.”
“…듣다 보니, 이거 연역적과 귀납적이라는 말 아니에요?”
“맞아요. 어려운 말로 하자면 그렇죠. 방금 말한 건 그냥 내 식이고. 당신이 말한 대로 표현하면 당신은 지극히 연역적인 사고유형을 하는 사람이라고 봐요. 어떤 논제를 봤을 때 본능적으로 답을 짠! 하고 찾죠. 정작 당신이 헤매는 곳은 그 답을 찾기까지가 아니라 가정한 답이 맞는지를 증명하는 과정 중이고.”
“그래서 내가 직관적이라고요?”
“‘연약적이 곧 직관적이다’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사고유형과 다른 성격적인 부분과 성향 등이 더해져서 직관적이라고 판단을 했어요.”
“그렇구나. 재.”
“아, 고마워. 그리고 내 생각에 나도 몹시 직관적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당신과 같이 연역적인 사고처리 유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이게 참 좋아요. 사실 내 성정 상, 근거를 차근차근 모아서 답을 도출해나가는 과정은… 뭐랄까, 좀 답답하게 느껴지거든요. 비효율적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그냥 내 성격과는 안 맞는 거지. 차라리 처음에 어떤 답이든 딱 정해놓고 그것을 증명하는 게 편해.”
“둘 다 어차피 증명하는 과정은 똑같잖아요?”
“음… 근거를 모으는 것과 증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해 보이긴 해요. 증명은 100% 채워야 답과 연결되는 반면, 근거는 때에 따라 70% 정도만 모여도 답이 도출되니까. 근데 근거를 모으든 증명을 하든 그 과정과 행위는 비슷한 건 맞아요. 가장 큰 차이점은 가정이 있는지 없는지 차이겠지. 나는 가정이 있어야 마음에 편한 사람이고.”
“그래서요?”
“나는 그런 사람이고 이런 내 성향을 참 좋아해요. 근데 뭐든 그렇듯, 이것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죠. 혹시 연역적 추리에 장단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말해줘요.”
“내 생각에는 연역적 추리는 귀납적 추리보다 발동 및 진행 속도가 훨씬 빨라요. 특히 쉽거나 적당한 문제는 보자마자 정말 귀신 같이 답을 찾지. 그럴 수밖에. 그게 연역적 추리의 특징이자 장점이니까. 그리고 사람은 살면서 여러 수준의 문제들과 직면하지만, 어려운 문제보다 쉬운 문제와 더 많이 마주 하게 돼요.”
“나는 어려운 문제랑 더 많이 직면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마 어려운 문제가 당신에게 체류하는 시간이 더 길어서일지도 모르지. 쉬운 문제는 쉭쉭 처리하고 없어지니까.”
“그런가.”
“정답이 아니라 내 생각인 거 알죠? 그렇기에 이런 연역적 추리의 특성은 사람의 전체적인 연산처리 시간을 결정해요. 쉬운 문제는 확확 풀어서 제쳐버리고, 어려운 문제는 귀납적인 사람보다 오래 걸려. 근데 살며 풀어야 하는 건 쉬운 문제가 더 많으니 전체적인 시간은 귀납적인 사람보다 짧지. 이것은 즉 남들보다 사고처리 속도, 즉 ‘생각 속도’가 빠르다는 말이에요. 이게 장점.”
“응.”
“첫 번째 단점은 전체 속도가 빠르긴 한데 어려운 문제에 국한하면 해결 속도가 너무 느려. 쉬운 문제는 바로 풀지만 어려운 문제는 귀납적 추리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거야. 어려운 문제를 만난 귀납적 추리의 문제 해결 진척률이 5%, 10% 이렇게 늘어나는 동안, 우리는 그냥 0%에서 막혀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단점은 전체 안정성도 떨어져. 귀납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보다 느려도 어지간히 안 틀려요. 틀려도 크게 틀리지 않고 작게, 그리고 적게 틀리지. 근데 우리는 맞거나 틀리거나, 모 아니면 도야.”
“왜요?”
“여기서 근거와 증명의 특성이 나눠지는 거야. 우선 예를 들어 볼게요. 연역적인 A와 귀납적인 B가 퀴즈 대결을 해. 먼저 쉬운 문제가 10문제 연달아 나왔어. 귀납적인 B가 문제를 듣고 있는 동안, 연약적인 A는 문제 첫마디만 듣고 바로 답을 외쳐. 근데 신기하게도 다 정답이야. 쉬운 문제니까. B한테도 그게 쉬워. B 역시 앞부분만 듣고도 왠지 알 것 같아. 그래도 성격 상 질문의 반 정도는 들어야 하니까 정답을 외치는 속도가 매번 A보다 느린 거야. 이제 조금 어려운 3문제와 아주 어려운 2문제가 나와. 조금 어려운 문제를 들은 A는 여전히 앞머리만 듣고 빠르게 정답을 외쳐. 근데 거의 다 틀려. 조금 어려운 문제도 이런데, 아주 어려운 문제는 더 하겠지. 그래서 ‘일단 문제를 끝까지 다 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문제를 계속 들어요. 반면 B는 조금 어려운 문제를 50% 정도 듣고 정답을 알 것 같아. 그래서 정답을 외쳤더니 대부분 정답이야. A도 50%쯤 들으니 정답을 알 것 같아. 근데 계속 틀려서 불안해. 그래서 확신이 들 때까지 듣게 돼. 쉬운 문제에서 B가 했던 행동을 비슷하게 하는 거지. 이제 아주 어려운 문제가 나왔어. B는 70% 정도 듣더니 정답을 외치고 그게 정답이야. 반면 A는 문제를 끝까지 듣고 확신이 선 후에야 정답을 외쳐. B보다 한참 나중에. 혹시 이 빈대떡 같은 예시가 이해가 돼요?”
“잘 돼요. 근데 연역적 추리는 본능적으로 답을 잘 찾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근데 정확히 표현하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잘 찾는 게 아니라, 많은 문제의 답을 빨리 찾으니까 전반적으로 잘 찾는 걸로 보이는 거야. 근데 그건 어려운 문제에는 전혀 소용이 없어. 가정을 세워서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증명 속도가 빨라도 앞서 세운 가정이 틀리면 다시 돌아가야 하고, 가정이 맞아도 증명을 하기 전에는 소용없으니까.”
“100%가 되기 전까지 답인지 증명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귀납적인 사람들은 70% 정도만 되어도 답을 도출할 수 있고?”
“맞아요.”
“그건 왜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문제 난이도에 따른 증명 속도의 차이’ 때문이고, 둘째는 ‘정답을 확인하는 특성’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다 알아들었는데 이건 모르겠다.”
“풀어서 말하면, 연역적인 사람이 쉬운 문제를 풀 때 ‘이게 정답일 거야!’라고 먼저 가정해요. 쉬운 문제니까 그 가정은 거의 정답이야. 가정을 먼저 있으니 증명할 방향이 명확하고, 그 증명에 필요한 단서와 조건만 찾으면 되니 양이 적어. 그래서 전체 증명절차 속도가 빠르고, 증명이 끝나면 가정은 정답이 되지. 이게 쉬운 문제에서 연역적인 사람이 빠른 이유. 근데 어려운 문제에서 연역적인 사람이 가정을 세우고 그쪽으로 증명절차를 밟다가 쾅! 가정이 틀렸던 거야. 이쪽이 아니구나 싶어 새로운 가정을 세우고 다시 가다가 쾅! 이것도 아니야. 50%쯤 증명했을 때 틀렸음을 알아챌 수도 없어. 가정은 100%를 증명해야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전체 속도가 엄청 늘어나. 이게 어려운 문제에서 연역적인 사람이 느린 이유.”
“응.”
“귀납적인 사람은 과정이 전혀 달라. 귀납적 추리는 쉽든 어렵든 문제를 듣고 가정을 세우지 않아. 가정이 없으니 다방면에서, 다각도로 정보, 조건, 근거를 모아야 해서 양이 엄청 많아. 오래 걸리겠지. 그렇게 30%쯤 모았을 때 쉬운 문제에 대한 첫 '가정답'이 나와. 쉬운 문제니까 그 가정답은 거의 정답이야. 그럼 귀납적인 사람은 이제 증명이 아닌, 가정답의 남은 70%를 검산해. 그럼 정답이 나와. 이게 귀납적인 사람이 쉬운 문제임에도 오래 걸리는 이유. 어려운 문제도 똑같아. 가정 없이 다각도로 모은 근거가 70% 정도 되면 가정답이 나와. 물론 꽤 걸렸겠지. 하지만 모인 근거의 양과 비례해서 이 가정답이 정답일 확률이 높아. 가정이 틀려서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 근거가 쌓인다는 것은 틀릴 가능성을 줄이는 과정이니까. 그럼 남은 30%만 얼른 검산하면 정답이 나오지. 100%를 채워야 증명이 되는 연역적 추리와 다르게 검산을 안 해도 상관없어. 연역적 추리가 쉬운 문제의 정답을 잘 찾듯, 이쯤 근거를 모은 귀납적 추리도 어려운 문제의 정답을 잘 찾거든.”
“응.”
“정리하면 연역적 사고의 특성은 ‘근거 없이 가정부터 세운다’ 예요. 그래서 증명 속도는 ‘가정이 맞으면 빠르지만 틀리면 극도로 느려진다’가 돼요. 귀납적 사고의 특성은 ‘가정 없이 근거부터 모은다’ 예요. 그래서 증명 속도가 ‘쉬운 문제든 어려운 문제든 평균적인 중간 속도를 유지한다’가 돼요. 이 차이로 인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연역적 사고가 귀납적인 사고보다 정답 도출과 그 증명절차가 느려져요.”
“이해했어요.”
“이게 내가 생각하는 연역적 사고처리 유형의 단점이에요. 물론 모든 것을 딱딱 이렇다 저렇다 나눌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어느 한쪽이기만 하는 사람도 없죠. 연연적인 사람은 근거를 전혀 안 모으고, 귀납적인 사람은 가정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에요. 연역적인 사람도 어려운 문제에서 귀납적 사고를 하기도 하고, 반대로 귀납적인 사람이 쉬운 문제에서 연역적인 방법을 쓰기도 하고. 앞서 밝혔듯이 전달을 위한 이분법적 대조니까 ‘전반적으로 이런 성향을 띤다'라든지, ‘둘 중 어느 성향을 좀 더 가지고 있다' 정도로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렇죠.”
“말이 길어졌네요. 그래서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는 꽤 연역적이고 직관적인 사람이라고 봐요. 그리고 그 단점도 있죠. 근데 내가 당신보다... 아니지, 여기서는 반대로 표현해서 당신은 나보다 몇 살 어리잖아요. 그래서인지 지금 나는 어느 정도 보완을 끝낸 ‘연역적 추리의 단점’이 지금 당신에게는 보이더라고요. 혹시 방금 내 말 기분 나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근데 기분 나쁘다고 하면 어쩌게?”
“그럼 사과해야지.”
“뭘 사과해요. 내가 물어본 건데. 말 다 끝난 거 아니죠?”
“응. 그래서 그냥 내 나름대로 그 보완책이에요.”
“스무고개가?”
“맞아요. 아까 ‘어려운 문제’라고 표현했는데, 말 그대로 지금 내 수준보다 어려운 문제라는 뜻도 있지만, 수준과 상관없이 부족한 정보로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뜻도 있거든. 예를 들어 아까 우리가 했던 말 있죠. 노트.”
“응.”
“내 생각에 당신 또래의 귀납적인 사고처리 유형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이라이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까 마지막에 당신이 말한 그 답을 도출해냈을 거야. 그들에게는 그쯤이 70%였으니까. 그리고 당신 역시도 아마 거기서 그 가정을 도출했을 거야. 하지만 아직 70%이기에 나머지 30%이 모자란 거지. 그 뒤에 나눴던 대화가 당신에게 남은 30%의 증명인 셈이고. 이건 연역적인지 귀납적인지, 가정을 증명하는지 근거로 도출하는지, 그 특성의 의한 속도 차이니까.”
“그렇겠다.”
“그래서 연역적인 사람은 연역적인 방법만 주로 쓰게 돼요. 그게 익숙하니까. 주변도 연역적인 사람으로 가득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 역시 내게 익숙하고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니까. 그 단점을 보완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성향과 반대인 방법에 자주 노출시키는 거예요. 앞서 말했듯이 어느 한쪽이기만 한 사람은 없으니까. 너무 편중되지 않게 어느 정도 중간으로 당겨오는 거죠.”
“그래서 그 스무고개를 한 거죠? 스무고개라는 것은 지극히 귀납적인 추리과정이니까.”
“맞아요.”
“…도령은 어땠어요?”
“뭐가요?”
“도령은 이런 단점 어떻게 보완했어요? 나처럼?”
“그렇죠. 사람은 보통 본인이 검증한 방법을 타인에게 권하니까.”
“그럼 도령한테도 누가 그렇게 해준 거예요?”
“나는 인복이 아래쪽에만 많아서, 위에서 해준 사람은 없었어요.”
“그럼? 혼자 한 거예요?”
“단점은 보통 혼자서 극복하기 쉽지 않죠.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럼 어떻게 했어요?”
“나 같은 경우에는 운이 좋은 셈이었어요. 내 베프 알죠?”
“말로만 들었죠.”
“응.”
“얼굴은 못 보고 말로만 들었죠.”
“알았어요. 두 번씩 강조 안 해도 돼요. 아무튼 그 베프가 지극히 귀납적인 친구예요.”
“아.”
“그래서 다행히 어느 정도 보완을 하고 나서야 내가 그런 단점이 있었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었어요. 말 그대로 운이 좋은 경우죠. 물론 여전히 보완하는 중이고. 이런 건 끝이 없으니까.”
“그렇구나. …길었다.”
“진짜 길었네.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이었어.”
“도령이 왜 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잠을 줄이고, 다른 거 안 하고 그러는지 조금 알겠어.”
“나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쓸데없고 잡다한 생각을 하느라.”
“별로 안 쓸데없고 안 잡다한데.”
“그렇다고 나만 뭐 특별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건 다들 아는 내용이니까. 나만 알고 있고 그런 건 아니지. 단지 나는 그런 것들을 말이나 글로 바로 설명할 수 있게 내 나름대로 한 번 정리하고 정립을 해놓는 것뿐이에요.”
“그래. 도령은 그런 사람이지.”
“그리고 이게 나에게 있어서 ‘자아성찰의 방식’이기도 하고.”
“그건 왜요?”
“내게 있어 자아성찰이 ‘나 자신을 안다’와 ‘아는 것을 행한다’ 두 가지 뜻인 건 알죠?”
“응.”
“그리고 그 두 번째 ‘아는 것을 행한다’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지난번에 갈매기 먹으면서 말했듯이, 막연히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을 내 식대로 정리해야 제대로 행할 수 있으니까. 날고기를 그냥 먹는 게 아니라 내 입맛대로 조리를 하는 것과 같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나는 도령의 그런 점을 충분히 존중해요.”
“고마워요. 그러고 보면 당신도 참 특이한 성격이야.”
“어디가?”
“나이와 상관없이, 보통은 남의 생각 듣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왜? 재밌는데.”
“지금 친구들과 만나서 이런 얘기를 일상적으로 한다면, 안 특이하다고 정정할게요.”
“나는 안 그러긴 하는데, 도령도 안 그래요?”
“아니, 나는 그랬어요. 당신 나이일 때 남자애 하나, 여자애 하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모여서 밤새 술도 없이 이런 얘기나 하면서 놀았어. 그중 나는 가장 멍청해서 매일 혼나는 입장이었고.”
“그럼 나는 거기 못 끼겠다.”
“왜요? 술이 없어서?”
“응.”
“그럴 줄 알았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