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훌륭한 감정이죠. 인간을 끌고 나가는 원동력은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거니까.”
“그럼 인간을 끌고 나가는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래도 호기심이겠죠. 그리고 두려움.”
“그럼 후회는요?”
“뭐라고 할까, 이정표죠. 인간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원동력도 아니고 가는 길을 줄여주는 지름길도 아니지만, 잘못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게 해주고 틀린 길로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는 화살표 같은 거.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평탄하게 하는 충격흡수장치 역할도 한다고 생각해요.”
“왜요?”
“너무 깊은 부분에 깊게 빠지지 않게 하고, 높은 부분에 너무 높게 튕기지 않게 도와주니까. 여러 가지 의미로. 근데 갑자기 웬 후회?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요.”
“아니긴. 무슨 일 있었구나. 뭐에 대해 크게 후회를 했어요?”
“아니에요.”
“그리고 음, 그 원인이 된 무엇보다 후회라는 감정, 혹은 후회를 했다는 자신에게 뭔가 회의 같은 것을 느낀 건가. 아니면 후회를 하고 있는 현재 상황 자체에 치어서 힘든 것 같기도 하고.”
“…….”
“맞나 보네.”
“아니, 도령 눈치가 빠른 거예요? 아니면 내 얼굴이 그렇게 티가 나요?”
“진짜 맞나 보네. 그냥 찍었는데!”
“…….”
“지금 이 표정은 확실히 알겠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싶을 때의 얼굴이야.”
“알면 좀 맞자.”
“맨주먹이면 한두 대 맞겠지만, 그걸 휘두르는 건 좀 아니지.”
“...몰라, 진짜.”
“진짜 무슨 일 있었구나. 왜 그래요?”
“그냥….”
“그냥?”
“…지금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요. 그럴 기분이 아닐 때가 있지.”
“기분보다는… 아직 내 스스로 정리가 안 돼서 뭐라 꺼내놓기가 뭐해요.”
“그래요. 마냥 풀어놓는 것만 능사는 아니니까.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판단되면 좀 더 담아둬요.”
“도령에게 후회는 뭐예요?”
“응? 내가 후회하는 게 뭐냐고?”
“아니. 머릿속이 엉망이니 말이 이상하게 나가네. 도령이 생각하는 후회… 아, 이것도 아닌데.”
“내가 생각하는 ‘후회’라는 감정이 뭔지. 정의나 의의 같은 거?”
“그리고 기타 등등. 그냥 그 단어에 대해 생각하는 전부.”
“내가 가장 안 좋아하는 질문 스타일이네!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 마음에 드는 기획서를 알아서 써오라는 말만큼!”
“그런 거치곤 철회하라는 표정은 아닌데?”
“이 여자 눈치가 점점 빨라지네. 내가 후회라는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에 많이 적어놨으니 아마 한 번은 봤을 거고. 아까 말한 저것도 있고,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질문을 이렇게 받으면 대답하기가 좀 어렵죠?”
“아무래도 궁색해지긴 하죠. 그럼 다른 식으로. 일단 나는 되도록이면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왜요?”
“후회라는 감정은 인간에게 중요해요. 반드시 필요하고 그리고 귀중한 감정이라는 것도 인정해요. 나는 후회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경계하는 것은 보통 인간이 후회라는 감정을 느끼고 난 뒤에 따라붙는 감정과 과정들이에요.”
“어떤?”
“마치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런 것들?”
“…….”
“후회는 실수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아, 잠깐만요. 도령.”
“응?”
“말 잘라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말해요.”
“나 부탁 하나 해도 돼요?”
“응.”
“그냥 별 거 아닌 건데. 그 생각해요, 라는 말….”
“응.”
“어….”
“어두나 어미에 붙는 사견이니 생각이니 하는 표현들 말하는 거죠? 굳이 필요 없지 않으냐고.”
“응. 근데 이런 걸 부탁해도 되나 싶네.”
“당연히 되지. 어차피 내가 말하는 거니 당연히 내 생각이고, 그러면 말끝마다 ‘생각해요’라고 붙일 필요는 없지. 그게 거슬릴 수도 있고, 가능하면 붙이지 않아 달라고 말할 수도 있죠.”
“거슬리는 건 아닌데… 뭐랄까.”
“거슬리는 건 아닌데 그 외에 다른 단어를 찾기는 힘들죠?”
“…네. 그러네요.”
“그런 뉘앙스가 아닌 거 알아요. 그동안 나는 워낙 내 생각과 남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오래 살았거든. 그에 말도 안 되는 트집이나 오해도 많았고. 늘 그게 나한테 엄청난 스트레스였어요. 피곤했죠. 그래서 어느샌가 어두에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라거나 어미에 ‘이렇게 생각해요’라는 말이 습관처럼 붙이게 되더라고요. 아무튼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게 나도 편해.”
“고마워요.”
“별말씀을, 이 아니라, 뭘 이런 걸로. 가요. 나머지는 마시면서 합시다.”
“아.”
“왜?”
“계란 안 샀다.”
“있다면서.”
“세 개밖에 없어요. 계란말이 하려면 다섯 개는 필요하다면서요.”
“계란찜 하면 돼.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