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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

feat 아이돌

by Emile

커다란 벽면에는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 왕관을 쓰고 세상을 굽어 보고 있다. 그리고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Love wins all)"라고 말씀하시니 온통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는 듯하다. 그 구원의 황홀경에 눈을 떼지 못하며 곧 빨려 들어갈 것 같지만, "레드썬!"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에게 손가락을 "탁"하고 튕기며 겨우 환상에서 깨어난다.


실은 나도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무슨 나이에 맞지 않은 돌아이 같은 소리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눈치가 좀 있었다면, 벌써 연준 의장 '파월'을 최애의 아이돌로 묘사하며 기획사 대표 같은 느낌을 받았을 글을 이미 읽었을 것이다. 비록 요즘 한참 뜨는 '트럼프'에게 최상의 아이돌 자리를 위협받고 있지만 아이돌에 진심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어차피 21세기는 연예인의 시대가 아니던가? 직장에서도, 사업에서도, 심지어는 글쓰기에서도 아이돌의 끼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일찍이 손에 잡는 마이크 대신, 아이돌처럼 무선 마이크를 머리에 달고,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아래, 무대에 직접 섰던 전적이 있다. 목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아이돌의 선구자가 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최고 경영자의 노석(老石) 마인드는 시대에서 한참 뒤처져 '잡스'를 '짭' 취급했다.


연예인은 드디어 인간 종족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높은 위치의 다음 칸쯤에 이른 귀족 계급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맨 위칸은 아직까지 정치인의 자리인 것 같지만 요즘 연예인과 정치인의 차이가 있을까? 이제 정치인은 유권자의 반 이상이 팔로워를 하면 획득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의 자리에 불과하다. 직장도 마찬가지로 아이돌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면접의 과정은 "픽미픽미 픽미업", 아이돌 선발대회와 비슷하게 치러진다. 진급은 인플루언서를 가려내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고 어릴 적 노래를 따라 부르긴 했지만 연예인이 될 생각은 원래 없었다. 예전에는 정말 TV에 나와야 비로소 연예인이긴 했다. 그런데 이제는 방송 채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인스타에 유튜버에, 영상에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무한히 늘어나면서 연예인의 일자리만 호황인 시대가 되었다. 사농공상 중 어느 것에 속하지도 않는 신분이 새로운 주류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연예인은 이제 정치인의 영향력을 넘어서 차라리 '신'에 더 가깝다. 신이 새로운 '신상'을 내놓지 못하고 '재방'만 계속 틀어주자, 신성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인간은 우러르고 섬길 다른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다. 결국 그 자리는 왕이 사라진 지금, 마침내 연예인이 차지한 듯 보인다. 인간은 설명 불가능한 재해를 거치면서 자신 보다 우위에 선 절대적 존재를 끊임없이 선망하는 종교성이 본투비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신은 실체를 직접 보여줄 수 없는 치명적 약점 때문에 항상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해 왔다. 그러다 그 신성한 실체 승리자는 확실한 아우라가 머리 위에 비추는 듯한 연예인에게 영광이 돌아갔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연예인의 숭배는 옛 교리대로 하면 지탄받아야 할 일이 분명하다. 아이돌이라는 뜻 자체가 우상이라는 뜻인데,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한 신의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굿즈며 포토카드며 각종 아이돌을 숭상하기 위한 아이템은 신발 떨어진 신의 기념품을 빠르게 대체한다. 신 대신 연예인에게 환호하며, 아이돌이 입고 쓰고 드는 브랜드를 성물처럼 여기니, 옛 성인들이었다면 아이돌을 마녀급으로 화형에 처했을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의 대리인들은 "연예인의 것은 연예인에게"라고 선포하며 연예인에게 '가이사'의 지위를 인정하여, 그 권력과 손잡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요즈음의 성직자는 구원이나 해탈보다는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기를 원한다고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연예인의 잘못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플루언서를 만드는 것은 그 일거수일투족을 깨알같이 알려주는 미디어의 권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믿지도 않은 신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누구랑 짝짜꿍 연애사까지 생중계를 해줘 모두 알아야 하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자발적 또는 후발적으로 세뇌된 나머지, 무분별하게 연예인의 영향력을 추종하게 만드는 신격화는

계속된다. 무서운 것은 그렇게 신이 된 연예인 마저 한방에 보내 버리는 미디어의 힘이다. 그렇게 형성된 권력에 선한 영향력이 담보되는 것은 아닌 만큼 신격화된 연예인의 뒤에는 무서운 것이 숨어 있음이 분명하다.


연예인의 영향력, 또는 신격화에 공모자가 되는 것은 이것이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신에게 전 재산을 헌납하듯 인플루언서에게는 아주 쉽게 지갑을 연다. 연예인이 무슨 인간 브랜드 그 자체라며 치켜세우지만, 연예인이 입고 걸치고 들고 있는 것은 연예인에게도 브랜드의 족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연예인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미디어와 거대 브랜드 자본의 영향력이다. 결국은 신을 내세워 당신의 주머니를 탈탈 털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은 신이 기적을 일으키듯 돈도 쉽게 번다. 수백억 원 빌딩으로 수십억을 남겼다는 기사는 끊임없이 신성에 가까운 능력을 설파한다. 인플루언서의 열애설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페이크 정보지만 황금알의 끝판왕이다. 연예인은 책도 신처럼 금방 쓰고 에베레스트처럼 오르기 힘들다는 베스트셀러에도 금세 오른다.


더욱이 문제는 연예인이 범죄를 저질러도 두 눈을 꼭 감은체, 옹호마저 마다하지 않는 열렬한 광신도가 등장할 때다. 예외와 특권을 넘어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신도들이 넘쳐날 때 연예인은 정치인을 능가하는 자격을 얻는다. 대게는 한탕 크게 벌여 역시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


이렇게 연예인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연예인의 팬이 되고 같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그 연예인과 같아질 수 없는데 동일시하는 오류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다. 하지만 연예인의 신성으로 말마암아 미천한 삶조차도 연예인 급으로 구원받는 듯한 기적의 믿음은 힘든 세상에서 견디는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인간의 믿음에 대한 붕괴, 가족의 해체 또한 위기의 순간 각종 종교가 번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플루언서의 창궐과 맹목적 추종을 예측해 볼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작가는 분명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연예인이자 인플루언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의 책을 읽고 그대로 쓴다고 해서 곧 그 작가와 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작가의 글 쓰기 스타일과는 추구하는 바가 자신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어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노벨상 작가가 연예인이 되고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연예인은 위대한가? 그렇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그렇고, 그것이 나의 위대함은 아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 하지만 연예인을 신으로 따르는 신도가 되고 싶진 않다. 글쓰기 연예인을 지망하는 글쓰기 연습생은 오늘도 글을 꾸준히 춤추고 노래한다. 일인 소속사 글쓰기 아이돌이라 불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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