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브레이킹 배드
마약을 해 보았는가?
혹시 마약을 해 보았는가? 마약에 대해서 좀 아는가? 가슴이 뜨끔할 수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마약을 해 본 사람은 아직 극히 일부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근래에 극도로 마약에 취하고 중독된 자들이 넘쳐나는 듯한 사회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물론 해본 적이 있다!
마약 김밥에 '마약'이란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할 만큼 마약이라는 단어 자체는 금기시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마약 떡볶이만 먹고 있을 수 도 없는 일, 그래서 마약을 해 본 적이 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물론 그렇듯이 문돌이(문과)라는 작자(작가)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꼭 책으로 해 보려 하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약글까지 쓰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으니, 만약 마약글에 중독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읽는 것을 중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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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으로 레알 마약을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마약글의 관심에 비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이 기분이 극도로 좋아진다는 것은 - 드라마적 표현에 따르면,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듯하고 온몸을 찌르는 듯한 쾌감" - 어느 정도 알겠는데, 그러한 쾌락을 느끼고 싶을 만큼 삶이 한가하고 지루하거나 또는 절대적으로 절망적이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의 기쁨이란 기쁨은 다 누리고 모든 쾌락이란 쾌락은 다 사고도 돈 쓸데가 없어 미치겠다면 혹,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번생은 아무래도 마약을 하기에는 그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너무 모든 것을 마약으로 잊고 싶은 만큼 고통스럽지도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마약 말고도 훨씬 더 저렴하게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술'이라는 대체재의 효과를 생각해 볼 때에도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과도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쾌락 vs 통제력
마약과의 거리를 두는 이유에는 '쾌락'의 대가로 잃게 되는 '통제력'의 상실이 포함된다. 마약뿐 아니라 술과 같은 것들의 쾌락의 원리는 일종의 '통제력'의 상실의 대가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뇌가 개인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정신줄을 놓느냐에 쾌감은 비례하여 증가하고 고통은 줄어드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뇌는 안타까운 번뇌와 고통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겠다고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을 확 놓아 버리는 순간 마침내 뇌는 천국, 열반, 물아일체, 신을 만난 듯한 경지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 마침내 통제력을 놓아버린 희구의 도파민을 한꺼번에 수십 배로 보상받는 메커니즘이 바로 '마약'일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쾌락은 원하지만 통제력은 상실하고 싶지 않다는 또 다른 욕망에서 발현한다. 술을 먹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기분 좋은 상태를 갈망하면서도, 똑바로 걸어서 집에 바로 찾아가고픈 통제력의 욕구가 쾌락과 경쟁한다. 이렇게 마약이나 술에 지배되지 않으려는 통제력 보존의 의지는 때로 쾌락보다 강렬하기도 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약왕'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마약왕은 마약 카르텔을 통하여 마약을 제조하거나 유통을 전문으로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쾌락의 결정체라는 마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약에 한때 손댔다 하더라도 불굴의 의지로 마약을 끊은 통제력의 살아있는 표본을 보여준다. 마약으로 벌어 들인 돈이 쌓여 쓸데가 없을 정도여도 마약이라는 쾌락에 쉽게 빠져들지 않으며, 언제 마약을 밀매하다 잡히거나 죽을지 모를 고통의 중압감에서도 마약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통제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마약왕 전성시대
서두에 근래 우리나라에는 극도로 마약에 취하고 중독된 자들이 넘쳐나는 듯한 사회 현상을 보이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념'의 마약이라는 것이다. 특히 '극우'라든지 '종교'가 첨가되어 화학반응을 일으킨 합성 마약의 중독이 아주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친일'을 가미하여 정신 나간 소리를 외칠 때만 해도 그것이 마약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했는데, 이제는 그 모두가 같은 마약의 합성 성분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안타깝게도 이 땅에는 남북분단의 역사 속에 이념의 마약이 퍼지기 쉬운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왔다. 마약의 이권을 놓고 벌이는 카르텔의 피의 전쟁처럼, 이념을 뒤집어 씌워 죽고 죽이는 피의 살육전을 이미 치른 바가 있다. 그 와중에 이념의 마약과 무관한 자들까지 빈번히 희생된 것은 마약 카르텔이 벌이는 전쟁과 닮아있다.
그러다 잠잠해지는 듯 보였지만 다시 '극우'며, '일베'의 엑스터시가 고개를 들고일어나 거대 마약 카르텔을 조직하며 마약왕을 꿈꾸고 있다. 이념의 쾌감이 극도에 달해 마침내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날뛰며 부수는 폭도들의 모습을 똑똑히 목도하지 않았는가? 역사 강사라는 자는 물론이고, 종교 참칭차가 눈이 돌아가 마약에 중독된 듯, 미친 소리를 외치며 쾌락의 절정에 부르르 떠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켜보는 마약왕의 전성시대라니!
그러나 마약을 제조하고 몰래 유통하는 마약왕은 절대 마약에 중독된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치 자신도 마약에 취해 무분별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같지만, 이 카르텔의 마약 유통 업자들은 절대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 하며 더욱 많이 마약을 팔아 중독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마약왕일뿐이다. 그렇게 얻은 마약의 통제권 뒤에는 물론 쉽고 엄청난 돈벌이가 있고, 마약을 더 많이 유통시킬 권력이 주어진다.
'극우'라는 성분은 잘 조제된 이념 합성 마약처럼 쉽게 흥분시키고 폭력성을 동반하여 목을 조르는 듯한 쾌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종교'라는 성분은 예로부터 즐겨 쓰는 마약의 끝판왕이었다. 마약도 치료 목적과 고통 완화의 원래 '약'으로서의 효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종교 또한 그러하나, 그 이상의 신의 쾌락의 경지를 탐할 때 종교는 아주 손쉽게 강력한 마약 성분으로 돌연변이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는 '극우'와 '종교'를 합성하여 최상의 효과를 내는 극약의 마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숨겨져 왔었지만 내란 같은 비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자 마침내 마약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다 더 잘 감염되고 한번 중독되면 치료는 거의 불가능한 인간 말종, 쾌락 극치의 신종 마약이다.
그러나 극우와 종교의 합성마약을 만들어 뿌린 마약왕들은 절대 절대 자신은 마약에 중독되지 않으며 철저히 통제권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극우의 선동가들에게 정작 그 이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돈이 되고 폭력과 쾌락의 아수라 속에 돈벌이가 되기만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종교의 참칭자들도 전혀 신을 믿지 않으며, 그 역시 신을 이용하여 마약과 같이 잠시 고통을 잊고 쾌락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약 효과만 얻으면 될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마약으로 길들여 신과 같은 통제력과 자금을 얻고, 마약을 팔게 할 유통 수단으로 중독된 신도들을 길들일 뿐이다.
마약이 없지만 마약에 중독된 듯한 사회, 극우와 종교의 합성마약에 한없이 취약하여 마침내 정신이 나가버려 마약왕을 신으로 받드는 마약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한번 마약에 중독되며 그 금단현상으로 끊기가 어렵다. 그래서 마약의 폐해는 어미아비도 못 알아볼 정도로 너무나 크다. 그 뿌리를 뽑는 방법은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고, 그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는 자, 마약왕을 제거하고 합성 마약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하도록 그 이념과 시설마저 뿌리째 파괴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마약에 현혹되지 않도록 사회적 믿음에 기대와 통제력을 회복해야 한다.
마약글
마약은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마약글에 한해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마약의 시대를 이길 마약글을 쓰고 싶지만 역시 글쓰기는 맨 정신으로 쓰기에는 고통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무슨 쾌락에서인지 끊지 못하고 쓰는 것이 또한 바로 마약글이기도 하다. 부디 읽다가 중독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