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잠을 설쳤다. 신을 만날 기대 때문인지 부담 때문인지는 명확지 않다. 다만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가 한몫했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신은 신 자신을 잘 모른다.
"신은 신 자신을 잘 모른다?", 신이 신 자신을 잘 모르다니? 이 단언은 신을 당황케 했다. 이런 말을 신에게 감히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도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겠지만. 그러고 보니 신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별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누가 신을 규정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번에는 신은 화를 내지도 못했다.
신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어나는 인간의 민원에 신경 쓰느라, 또는 다른 신들과 좀 더 빠른 퀵 소원 배송 경쟁에 몰두하느라, 물론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만큼 인가 받지 않은 무허가 신과의 경쟁 따위 말도 못 꺼내게 하지만, 정작 신이 신 자신을 돌아보지는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신에게 이렇게 운을 떼고 나니, 어젯밤 잠을 설친 피곤함은 사라지고 갑자기 신 컨설턴트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의 행동교정 전문가, 나도 오은영 박사님이 되어서 금쪽이 신들의 상담을 받고 신들에게 조언과 컨설팅을 해 주는 것이다. 신이 클라이언트라니 보수는 얼마나 후하겠는가? 태평양 한가운데에 신대륙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할까 보다. 크기는 호주 두 배 정도 되고 기후는 지중해풍의 햇살이 넘실거려서 야자나무 아래서 글을 쓰고, 아무 씨나 뿌려 놓으면 과실이 저절로 알아서 자라는 파라다이스!
"레드썬", '정신 차리자 그것이 가당키냐 하겠냐고? 고집불통 신이 인간 나부랭이의 조언을 듣겠냐고? 그럴만한 신들의 클라이언트 수가 충분히 있기나 하겠냐고? 도태된 쩌리 신들은 신용불량자에 지불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텐데, 신들이 행동교정 컨설팅을 의뢰하겠냐고?', "신을 금쪽이라고 부르면 참이나 좋아하겠다!" 아무래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 만에 하나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성공 보수로 받은 신대륙을 언제 태평양 아래로 폭삭 가라앉힐지 모른다. 일찍이 폼페이 최후의 날은 그런 본보기였지않을까?
신 전문 컨설턴트 명함은 기억에서 접고 다시 현업에 복귀하기로 한다. "어디까지 했었지요? 맞아요 MBTI, 이번에는 S냐 N이냐의 고찰입니다"
먼저 감각형 'S'(Sesing)는 현재 사실과 실제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유형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를 선호하고 경험과 실제적인 예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하며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S는 볼 수 없는 숲보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나무를 바라보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직관형 'N'(iNtution)은 가능성과 미래에 주목하는 유형이다. 추상적인 개념과 빅피처를 선호하고 내재적 패턴과 미래 가능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상상력을 통해 미래를 꿈꾸고 그래서 N은 볼 수 없는 숲을 상상하고 눈앞의 나무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자칫 생각하기에 신은 보나 마나 'N'일 것 같다고 했지만, "왜냐하면 신은 딱 보기에도 미래를 생각하고 빅피처를 그리고 그럴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다. 신이라면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과 현상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신이 마음대로 정하고 만들 수 있는 미래에 더 관심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 신은 신이기 때문에 신 자신에게는 의미의 부여나 미래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사물 너머의 것을 모르는 인간이나 의미를 부여하고 모르니까 상상하며, 미래를 꿈꾸는 것이지 신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S'인 신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보에 집중한다. 그래서 신에게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도, 또는 민원이 필요한 것이다. 역시 공무원 스타일이다. 뭉뚱그려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면 신은 "도대체 뭘 해달라는 소리야?" 이렇게 회신할지 모른다. 로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 당첨, 또는 아파트 어느 지역, 단지명, 몇 평, 그리고 키 몇 센티 얼굴 누구 스타일, 연봉 얼마, MBTI 성격 무엇,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 또는민원 하는 것을 선호한다.
'S'인 신은 자신이 계획한 구체적인 일정에 맞추어 인간이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오면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을 기본으로한다. 왜냐하면 신의 기대치에 맞추어 현실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피 창조자인 인간으로서는 역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입장을 바꾸어서 창조자로서는 당연한 결과다. 굳이 예를 들자면 아무리 반려묘라 해도 이 고양이가 엄청난 상상을 통해 인간을 뛰어넘길 꿈꾸고 즉흥적으로 집 밖을 나가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길냥이들과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주인으로서 쉽게 동의하고 그 상황을 방치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S'가 신의 영역이라면 N은 인간의 영역에 보다 가깝다. 신은 현재만을 살고 인간은 미래를 위해 산다. "아직도 이상하다고? 그 반대일 것 같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신이 만든 세계라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이것은 독자라도 지극히 신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경우 죽으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고민하겠지만 신은 죽으면 죽는 거지 천국과 지옥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있어도 신이 다 만든 거고있다가 없어도 적자가 심해서 파산한 것이니 신은 오직 현재의 가치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미래가치에 투자하는 주식 같은 것을 신이 할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이 'S'의 성격일 뿐이지 'N'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 상상과 미래의 영역을 왜 인간에게 주었겠는가?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다 알려주지 않으려는 신의 꼼수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유일무이한 능력이 이 미래를 중요시하는 상상력에 있으니 일단은 신에게 땡큐를 표하기로 한다.
그런데 우려할 만한 일은 점차 인간이 신에 가까워 오며 인간도 'S'로 바뀌고 있다는 현실이다. 바로 현재만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속도와도 관계가 깊다. 삶의 속도가 더 빠르게 변하면서 미래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도 필요도 없어졌다. 지금의 돈이 중요하고 어떻게 벌었냐는 의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의 가치만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도 마침내 미래가치가 중요한 천국과 지옥이라는 주식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심각한 적자에 시달려 파산했을지도 모를 이유다. 문과라서 문송(죄송)하고 이과의 문과침공의 불균형, 인간의 현재를 집대성한 AI의 지배론이 심화되는 이유다.
재미있는 것은 신이 이 의뢰를 한 연유가 바로 이 S의 성격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신의 성격 연구' 같은 미래지향적 영역은 더 'N'에 가까운 인간이야말로 신을 대신해서 제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즉 극 'N'에 가까운 필자를 선택한 이유일수도.
S라면 현재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러한 '신의 성격 연구'에 대한 고찰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여기서 신이 약점이 본의 아니게 드러나는데 신은 너무 가진 것이 많아서 미래를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로 생각해 보아도 가진 것이 많으면 상상을 잘하지 않게 된다. 사고 싶으면 다 사고, 먹고 싶으면 다 먹고, 가지고 싶으면 다 가지면 되는데 굳이 상상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가진 게 너무 많아서 지금 현재가 너무 좋은데 굳이 미래를 그릴 필요가 있을까? 바로 S 신의 성격 단점은 그 능력이 너무 출중하고 다 가져서 부족한 게 없는 나머지 상상이나 미래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인간에게도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원래 신이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반려묘가 너무 잘 먹어 뚱냥이가 되고 있는 것과 같이.
신은 약점까지 들켜서 그런지 이번에는 화 대신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부유한 현실주의자 'S'에서 비롯한 신의 성격에 치명적 약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천국과 지옥의 심각한 적자로 인한 심각한 파산 위기 같은 큰 문제에서부터, 문송한 인간 영역의 작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성격적 편향에 대한 재고 의사를 전달했다. 드디어 신이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기로 한 것이었는데, 신의 나무와 숲의 범위가 인간의 것과는 다르기에 그 범위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N'의 성격을 좀 더 강화하는 방향을 통해 미래가치와 상상력 개발 프로그램을 추가 의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추가 프프로그램이라고? 오늘은 화는 안 냈지만 성격의 단점과 약적까지 너무 몰아붙인 거 같아 피곤함이 다시 몰려왔다. 태평양 신대륙의 야자나무 아래 프로젝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래서 현실성 없는 전형적 'N' 유형인 인간인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