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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날씨 : 미세먼지와 금욕주의

돌하르방이 되어가고 있지요

by Emile

날씨 하면 해, 구름, 바람, 비, 눈, 추위, 더위, 포근함, 서늘함, 이런 표현이었는데 언제부터 '먼지'가 합류하였지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은 이제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 되는가 했는데, '티끌 모아 미세먼지'가 되어 되살아났습니다. 이제 미세먼지는 태산을 먼지로 만들어 옮긴 것처럼 불어오지요. '먼지'는 과히 태산이었던 것이 맞았습니다.


해는 비추는데 미세먼지가 자욱한 오늘 같은 날에는 이 날씨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막막해지지요. 나가야 되나 말아야 하나부터 미세먼지에 어울리는 옷차람도 애매합니다. 한마디로 김치 없는 고구마 같지요. 목이 꽉 막힌 고구마! 답답합니다. 그런데 군고구마가 생각나는 것은 또 뭐란 말입니까. 뭐 겨울이면 군고구마지요.


이러한 미세먼지는 본의 아니게 금욕생활을 가져오지요. 밖에 나돌아 다니지 말라는 금욕입니다. 햇살에 옷을 훌렁 벗어 버리고 광합성을 하고 싶은 것이 해욕이라면, 미세먼지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하고 숨도 조심스럽게 쉬어야 하는 금욕이지요.


미세먼지가 아니라도 금욕주의 생활이 오래 지속되고 있긴 합니다. 코로나로 특히 그렇지요. 미세먼지만 있었을 때에는 그나마 마스크를 가끔 썼었는데 이제는 항시 쓰고 금욕주의를 실천하지요. 사람 만나는 것을 비롯하여 극장이나 경기장 같은 즐거움은 과감히 버리고 수행에 들어갑니다. 모임도 쉽지 않고 데이트나 연애는 랜선, 책이나 드라마에서나 있는 이야기로 기억됩니다만.


그렇다고 금욕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욕구의 절제는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내기도 하지요. 작은 일에 흥분하지 않고, 큰 재미는 없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금, 불토에 말이지요. 그래도 전혀 화가 나지 않지요. 금욕주의는 타지 않은, 아니 다 타버린 금요일과 토요일이지요. 석금, 석토 입니다. 그러고 보니 맥박이 천천히 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돌하르방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갔습니다. 아 제주도 가고 싶어요! 뜬금없습니다만.


이런 금욕주의가 힘들었는지 잠깐 거리두기를 완화하자 그동안 별로 못 먹은 것 같지는 않은데 술을 엄청 마셔대고 쇼핑도 엄청 해대지요. 그렇게 까지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아마도 본능 같네요. 불확실한 환경에 이제 못 그럴 수도 있으니 마실 수 있을 때 실컷 마시고 살 수 있을 때 실컷 사자는 것이겠지요. 본능은 해욕이니까요.


미세먼지가 찾아온 오늘 같은 날은 금욕의 날입니다. 코로나로 더 이상 금욕을 할 것도 없지만 마땅히 해욕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밀렸던 책을 읽고 작은 요리를 하거나 음악을 듣습니다. 물론 커피는 빠져서는 안 되지요.

금욕을 한다 하면서 할 건 다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래 돌하르방이 보고 싶습니다. 제주도도 가고 싶고요. 해외두요. 아아 본능은 해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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