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라더'는 거대 조직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감시, 사상의 통제와 탄압, 문서 검열, 역사 조작 등 암울한 시대의 절대적 지배자를 나타내지요.
이러한 '빅브라더'의 세계는 인간에게 잠복하고 있는 '권력'이라는 궁극적인 바이러스를 경고합니다.
실제로 이 '빅브라더'에 대한 시도는 인류사에 있어 여러 번 시도되었고 심지어 성공하기도 하였으니까요.
실제로 '1984'의 모티브였던 스탈린주의의 소련이 그랬고, 오늘날 부패와 탄압, 쿠데타, 내전이 반복되는 국가들에도 빠지지 않고 이 '빅브라더'는 등장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칫하면 이 '빅브라더'의 시대가 지속될 뻔하였지요. 저 너머 북한은 '빅브라더'를 성공시켜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사례입니다. 다들 비난하고 있지만 권력을 쥐게 되면 추구하게 되는 '빅브라더'의 이상 이기도 하지요.
종교도 발을 약간만 발을 헛디디면 '빅브라더'에 빠져들기에 아주 쉬운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교주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빅브라더'이니까요.
놀라운 것은 '조지오웰'이 '1984'년을 상상하며 쓴 연대가 불과 1949년이었다는 것입니다. '1948'년으로부터 35년 전, 지금으로 부터는 무려 73년 전에 이런 생각을 담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로부터 변하지 않고 인간이 끊임없이 이 '빅브라더'가 되기를 멈추지 않아 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빅브라더'는 인간이 가장 경계해야 할 권력의 속성입니다. 권력을 잡고 권력에 취하고 그것에 대한 경계력이 떨어지게 되면 이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인간에게 퍼져 돌이킬 수 없는 괴물, 즉 '빅브라더'를 기어코 만들고야 말 테니까요.
그런데 요즈음 코로나 시대를 보면 그런 조짐을 볼 수가 있지요. 비상시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이러한 '빅브라더' 바이러스도 활동하기 좋은 때니까요.
잠복하던 바이러스가 백신패스를 통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나라는 방역에 있어서는 세계적 성공 국가였지요.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의 방역 성과를 치켜세웠고 그로 인해 한때 으쓱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에 감사하기도 했었지요.
그래서 질병관리본부는 질병청으로 승격을 이루어냈고, 승진도 하고 권력을 얻기도 했지요. 관련된 산업과 관계자들이 부 뿐만 아니라 권력을 얻은 것은 물론입니다. 이때부터 '빅브라더'의 바이러스는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지요. 권력이 집중되고 견제받고 싶지 않기 시작하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이제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그 성공 공식을 그대로 대입하려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접종률을 집계하고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부터 인 듯하네요. 이때부터는 사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제 수치에 함몰되기 시작하였지요.
언제까지 몇 퍼센트를 달성해야 한다는 성과 목표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이는 우리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 핵심성과지표) 같은 성과 지표를 다뤄봐서 알지요. 그것을 처음 주창했던 기업들에서는 그 효과 없음과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쓰지 않는 KPI인데, 옳고 그른지도 판단하지 않고 가져다 적용하는 기업의 방식과 많이 닮았습니다.
KPI는 성과나 경쟁과 관련이 있는 지표이지요. 언제까지 도달해야 하는 목표이고 경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수치입니다. 달성하면 이익을 주고 달성하지 못하면 불이익이 따르지요. 그때부터는 인간은 안중에도 없게 되지요. 달성률이 중요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백신 부작용 같은 것은 그 지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더니 아이들에게도 필수생활시설에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KPI에 이 목표 수치를 포함하기로 했나 보네요. 의견이나 동의를 구하기보다는 강하게 명령하기로 합니다. 공포를 조장하고 정보도 왜곡을 하지요. 예외나 반발은 무시하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권력을 얻었기 때문이지요.
'백신 패스'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의 정확한 이름은 '미백신불패스'이지요.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이익을 주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적용하는 시설은 공평하지도 않지요. 권력을 가진 종교 시설 같은 곳은 빼고 아이들이나 필수생활시설 이용자 같은 약자만을 불이익의 대상으로 삼지요.
법원이 이에 대해 제동을 가했습니다만 그들의 변명이 희한합니다. 미접종자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랬다고 하지요. 여기서부터 신뢰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정치적 목적과 권력을 위해, KPI와 그들의 성과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빅브라더'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요.
'1984'에 보면 '텔레스크린'이라는 무지막지한 감시 도구가 등장합니다. 텔레비전 같은 것인데 수신과 송신이 되어 곳곳에 설치되어 감시와 세뇌를 하는 도구이지요. 1949년에 그런 장비를 상상해 내었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요즘 방역 패스 장비를 보면 이 '텔레스크린'이 현실화된 것 같아 또 한 번 깜짝 놀라곤 하지요.
'빅브라더'는 국가라는 권력뿐 아니라 사실 어디에나 잠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에도 있고 작은 조직에도 존재하지요. '빅브라더'가 된, 되어가는, 되고 싶어 하는 인간과 조직은 주위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권력은 '빅브라더'라는 궁극적 목표를 지향하니까요.
방역 패스에도 말이지요.
지금의 감시, 방역 패스 통제, 탄압, 검열, 통계적 조작을 가볍게 여긴다면 '빅브라더'라는 바이러스가 퍼져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