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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계획

날마다 날씨

by Emile

늦은 새해 계획을 세워봐야겠습니다.

새해가 시작된지도 일주일이 지나고 있으니 이쯤이면 계획을 세워도 괜찮을 듯싶거든요.

왜냐하면 이쯤이면 이미 세운 계획도 작심삼일 도로아미타불이 되기도 했을 것이고, 거창했던 계획도 생각나지 않을 즈음이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판에 직면하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혼란과 방심한 틈을 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획을 세우는 거지요. 뒤에 달리다고 치고 나가는 전략입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계획의 핵심은 버리는 거지요.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것들을 버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어차피 처음 사는 해도 아니고 계획 아닌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을 거예요. 계획 없이도 어제도 오늘도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증명하지요. 계획이 없어서 어제와 오늘이 망가진 것도 아니었고 계획이 있다고 내일이 크게 나아질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머릿속에 계획할 수 있는 것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기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기 위해 머릿속을 비우는 것이지요. 그래야 있던 계획도 더 잘 작동할 수가 있거든요.

머릿속을 벋어 나는 계획은, 기억할 수 없는 계획은 그저 계획으로 인하여 안심하기 위한 무용지물에 불과하지요.


머릿속은 어차피 한 밤 자고 나면 기억하려 해도 깨끗이 비워지므로 그 대신 핸드폰을 비웁니다. 메시지를 지우고 쌓인 사진도 버리고, 그다음은 메일을 버리지요. 문서와 종이와 물건들을 싹 청소하기로 하지요.


때마침 하늘도 여기에 계획을 세우라는 둥 하늘을 파랗게 말끔히 치워놨네요.

햇살도 계획을 잘 세울 수 있게 금빛 조명을 비춰주지요.

바람은 버리느라 난 열을 식혀주는 선선함을 맡았네요.


이제 늦은 새해의 계획을 채워봐야겠습니다.

깨끗해진 파한 하늘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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