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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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분할 1조 3,808억 원을 파기환송한다
"재산분할 1조 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다." 귓가에 맴돌아 울리는 이 소리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순간 허무하게 1조 3,808억 원이 사라져 버린다고?! 그들은 겨우 위자료 20억 원은 받을 수 있다고 놀리듯이 판결하였다. 1조 4천억 원이 날아가 버린 마당에 20억 원이 대수인가? 변호사비도 나오지 않을 금액이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았다. 총이 있었다면 총을 들고 아빠처럼 쿠데타라도 벌이고 싶었다. 그러나 총알은 결국 돈이었고, 방금 이 순간 저 알량한 세치 혀는 1조 3,808억 개의 총알이 고스란히 적에게 넘어간 꼴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총알이 없으면 물론 쿠데타는 불가능했다. 야릇한 바웃음을 지을 상간녀와 그 옆에서 함박웃음을 터뜨릴 그를 떠올리니 1조 3,808억 원어치 비참하고 우울해졌다.
웃기는 작자, 아니 작가
누군가 내 이야기, 태어나서부터 이 이혼 소송까지를 쓰고 있다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현재 무려 1조 3,808억 원의 소송을 벌이고 있는 세기의 결혼과 말세의 이혼을 모두 겪은 셀럽의 이야기를 누군가 긁적인다는 게 무슨 큰일도 아니었고, 게다가 그것을 쓴다는 작가는 진짜 작가인지도 모르는 이름 없는 작가인 데다가, 그것을 연재하고 있는 곳은 뭐라더라? '브런치?' 무슨 조식카페에서 떠드는 가십 같은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것을 알려준 지인은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고 했다.
특히 "그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준 대가로, 아니 그것보다는 지금껏 세상이 이토록 난리일 때 너무나 평온하고 고요하게 살아온 지난날의 세상에 대한 반성"으로 1조 3,808억 원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결론으로 끝난다는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어쭈 1조 3,808억 원을 모두 반성과 사과의 의미로 기부한다고? 지가 뭔데 내 돈을 마음대로 쓰고 말고 해!' 정말 웃기는 작자, 아니 작작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려니 했다. 이 정도 큰 소송을 하는데 그 정도의 상상도 없는 것이 오히려 섭섭하지 아니한가?
세기의 전략
그런데 지인은 바로 '기부'에 주목했다. 이 '기부' 전략이 소송에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작가는 더군다나 "이러한 선택이 최종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라 진심은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라고 까지 썼다. 지인은 이 대목이 작가가 마치 변호사인 것처럼 세기의 전략을 알려주고 있다며 오히려 칭찬까지 했다. 지금 소송의 결론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고 '반란군의 우두머리이자 최고통치자였던' 아버지의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 증식된 그 큰돈이 고스란히 딸에게 이전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기부'의 아이디어는 지금 생각해 보면 기막힌 전략이었다. 더군다나 작가는 "만에 하나 패소해서 그 돈을 얻지 못한다 해도 나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무려 1조 3,808억 원짜리 반성문을 제출한 결과를 얻었으며, 결국 승소하겠지만 이 돈을 돌려받음으로써 그의 태생 상 가장 치명적인 돈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선사하는 복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도 썼다. 돌이켜 보면 완벽한 출구전략까지 짜 놓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듣고도 알아보지 못했을까?
1조 3,808억 원의 눈뜬장님
그러나 나는 그때 1조 3,808억 원이란 돈에 눈이 멀어있었다. 그러니 무명작가의 글 따위에 흔들릴 리 만무했다. 어차피 다 따놓은 당상인데, 뭐 하러 '기부'라는 말을 꺼내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때는 '반란군의 우두머리이자 최고통치자였던'의 상황이 반복되어 불리하게 작용할지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나 이 무명의 작가는 놀랍게도 그러한 상황을 미리 예지하고라도 있는 듯, '진심'이라든지, '사과', '화해', '반성'과 같은 대중과 재판부가 좋아할 만한 말을 죄다 써 놓았던 것이었다. 이러한 하늘이 준 기회를, 지인이 뻔히 알려주었는데도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말마따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세기의 복수도 하고 세기의 사과도 하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될 방법"을 스스로 걷어찬 것이었다. "세기의 결혼과 세기의 이혼에 이어 세기의 기부와 세기의 사과라면 얼마나 멋진 삶이지 아니한가?"라고 할 뻔 한 삶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세기의 패배'로 보도되고 있었다.
고백, 그 후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까? 소송이 끝이 난 게 아니므로 다시 기나긴 시간을 거쳐 얼마의 돈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쎄 잘해야 1조 3,808억 원의 십 분의 일, 아니 그보다도 못하게 1심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1척 억 원이 채 안 되는 돈일 것이다. 그것도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없지만 1조 원이 넘는 돈에서 몇백억 원은 하나도 성에 차지 않는 금액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대신 차지한 그와 그의 상간녀를 생각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싶을 정도의 금액이다. 봉황의 마음을 어찌 꿩과 닭들이 알겠는가?
듣는 바에 따르면 이 1조 3,808억 원의 돈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 증식된 돈인 만큼, 나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지만, 그가 차지할 몫도 아니다는 여론이다. 그도 나와 똑같이 눈이 멀어 이 1조 3,808억 원을 절대 사회에 다시 내놓을 생각은 없겠지만, 후회하고 있는 입장에서 진심 어린 충고를 하나 하자면, 다시 잘 생각해 보기를 바바란고 하고 싶다.
놀랍게도 이런 상황을 예지하고 '기부'의 전략을 글로 썼던 작가는 한번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다. 세기의 패배로 분노와 우우울이 폭발할 것 같은 기분에 이 웃기는 작자, 아니 작가는 어떠한 조언을 다시 해 줄지 궁금하긴 하다. 이 웃기는 작가가 '진심'이라든지, '사과', '화해', '반성'의 단어를 다시 언급하며 남은 몇백억이라도 '기부'하라고 다시 기회를 준다면 뭐라고 대답하지? 1조 3,808억 원도 날렸는데 까지껏 그러자고 할까? 아님 겨우 몇백억 밖에 안 남았으니 안된다고 말할까? 예지력 깊은 작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을까?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