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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Jul 06. 2024

쿠데타를 타고난 아이

feat 1961년 5.16

내가 태어나던 해는 국가에 큰 정변이 있던 해였다. 그것을 사람들은 5.16 군사정변, 혹은 그냥 줄여서 '쿠데타'라고 불렀다. 이러한 이야기는 나와 같이 그러한 일을 직접 겪은 세대들이 여전히 이 나라의 주축으로 있지만 먼 옛날의 이야기나 아직도 남의 나라 변방 후진국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고위 장성들의 부패와 승진의 부조리가 만연했는지 한 육군 소장과 그의 육사 동기 생들은 장교 250여 명 및 이를 따르는 사병 3,500여 명을 모아 한강을 건너 국무총리 집무실, 중앙청, 육군본부 등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하게 된다. 신기한 것은 한강 인도교에서 헌병대 약 50여 명과의 교전 외에는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쿠데타는 쿠데타고 나는 나일뿐인데 내가 그 사건과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빠가 바로 군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규합하여 이 군사정변을 지지하는 가두행진을 주도한 군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적극적으로 동참한 군인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이 쿠데타는 자칫 무모해 보일 수도 있었으나, 모든 쿠데타가 완벽함에서 시작해 우발적 우연의 실패로 끝나고, 무모함에서 시작해 고의적 필연의 성공으로 끝 마치듯이, 쿠바 문제를 겪고 있는 미국이 이 쿠데타를 너무나 쉽게 인정함으로 인해 성공하였다. 그렇게 나는 쿠데타가 일어난 해에 쿠데타를 타고난 아이가 되었고 성공한 쿠데타였기에 내 출생도 꽤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설치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군인에 의해서 조직된 세력이었던 만큼 반혁명, 반국가행위 처벌법’, ‘정치활동정화법’ 등, 법의 이름을 가장한 무시무시한 총칼을 앞세워 정치적 반대세력뿐만 아니라 군부 내의 반대파까지 제거하였다. 주먹과 칼 좀 쓴다는 아무리 무도한 조직폭력배라도 꼼짝할 수 없었으며, 그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는 그 당시 창설된 중앙정보부에게 양보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하고 시끄러운 것과 달리 나의 탄생은 평화롭고 조용하고 오히려 축복이 가득하였다. 군사 쿠데타였지만 성공의 편에선 아빠의 탁월한 선택으로 오히려 군인의 딸 이어서 더 안전하고 행복한 시작을 보장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쿠데타에 지지를 보낸 아빠는 대위로 진급 후 대학에 새로 생기는 군사 과정에서 곧 교관을 맡을 예정이었고. 대학을 중퇴하고 결혼 후 살림에 전념하기로 한 엄마도 그러한 결정을 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딸이 태어나자 이 아이를 키우는데 전념하고 아빠가 더 높은 계급에 오르는데 일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아빠가 군인이라는 것은 나쁘기는커녕 정말 좋았다. 아주 부유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당할 것도 전혀 아니었다. 사회가 혼란한 시기였던 만큼 군인만큼 확실히 가족을 지켜줄 수 있는 업은 없는 듯 보였다. 게다가 아빠는 촉망받는 군인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꽤 힘이 있어 보였다. 내가 계급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나이에 아빠는 벌써 중령이었고 어딜 가나 그만큼의 대우를 해줬다. 세상은 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라는 걸 그때부터 벌써 알았다고나 할까? 아주 소수였지만 더 높은 계급을 아빠로 둔 아이인 경우 확실히 항상 더 으스대며 마음대로 행동하기가 일쑤였다. 거꾸로 대부분의 낮은 계급 집안의 아이인 경우 꼬리를 내리고 고분고분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깨닫고 있음에 분명했다. 이 계급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아빠의 것이나 나의 것이나 같은 것이어서 심지어 아빠보다 계급이 낮으면 어른들도 나에게 마치 상관을 대하듯 매우 살갑게 대해주었다.


나의 평화롭고 조용한 행복은 계급에서 나왔고 그 계급은 다시 아빠에게서, 그리고 아빠의 계급은 쿠데타에서 나왔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 계급은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백지수표가 될 것이다. 가령 1조 3808억 원이라던지. 그러기 위해서는 더 높이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쿠데타는 충분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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