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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Jul 13. 2024

장군의 딸

feat 1974년 북극성

내가 군대에 직접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군인의 삶은 그러한 것 같다. 끝없이 진급을 향해 전진하는 긴 여정. 그것은 군인이 아니라도 마찬가지 일 수 있겠지만 군인은 그것이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그것 전진이 멈추는 순간 군인은 죽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제대가 무서운 것이다.


다행히 아빠와 나의 삶은 그 진급의 여정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아빠는 밤늦게 집에 들어올 때마다 나를 번쩍 들어 안아 주며 그 여정이 이상 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무궁화 꽃이 두 개가 예쁘게 달린 모자를 통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으며 꽃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일이 그리 바쁜지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날이 많았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여덟 살 무렵에는 베트남으로 출장을 한동안 떠나야 한다고 했는데, 이때 아빠가 잠시였지만 잘 보이지 않음으로 내 평화롭고 조용한 행복에 그림자가 비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엄마도 내색은 안 했지만 그 기운이 집안에 공유되고 있다는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군인의 삶이나 그 가족의 숙명일 수 있다. 아마 이때 아빠는 아주 잠시동안이었지만 진짜 군인이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내게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걱정은 길지 않았고 아빠는 다음 해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출장이 아니라 베트남전 파병을 다녀온 것이었다. 그 사이 무궁화 꽃도 한 송이 더 꽃을 피웠고 덤으로 훈장이라고 불리는 커다랗고 특별한 꽃이 집안에 한동안 전시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그냥 뽑기에서 뽑은 장난감 같이도 보여서 동생은 그것을 가지고 놀고 싶어 했지만 그랬다가는 아무리 동생이라도 사형이 확실해 보였기에 그냥 군침만 삼켰다. 그에 비해 나는 그것을 가지고 놀기보다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줄 북극성처럼 보였다. 아빠가 실제로 그러한 친목 모임인 북극성회의 한때 회장이었다는 것은 전혀 모른 체 말이다.


이번에는 쿠데타 같은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아빠는 이번에도 역시 큰 도박에서 승기를 잡은 것 같이 보였다. 군인이 실제 전쟁에 참전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큰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명령에 따르는 것이니 선택할 수 없는 도박일까? 아니면 아무리 전쟁이라도 힘에 의해 누구는 나가야 되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도박이라 할지라도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 계급이 낮을수록 더 큰 위험을 부담할 뿐, 아빠의 계급은 이미 그 위험은 최소화하고 공로는 최대화하기 최적인 계급에 달해 있었다. 그 증거가 우리 집에 동생이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장난감처럼 한동안 전시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 이후로 그 공로에 따라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아졌다. 가끔은 군인들이 가득한 부대에 놀러 가기도 했던 날이 생각나는데 그래서 모두 군복을 입은 모습들이 낯설지가 않았다. 이 나라는 뭐라 해도 군인의 나라였고 나는 그 군인의 딸, 그것도 이 부대의 가장 높은 지휘관의 딸이었으니 이 철조망 안 끝없이 펼쳐진 부대의 모든 것이 전부 내 것인 만 같았다. 물론 군복을 입고 계급을 가진 그들은 모두 내 명령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아빠 위에는 더 높은 사람들이 있고 아빠는 그들을 보좌해야 하는 일에 한동안 열중했다. 이 부대 내 철조망 안의 것은 다 내 것이었지만 그 밖의 것은 아직 내 것이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그러다 중학생이었던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집에서 큰 축하 파티가 열렸는데 아빠는 자랑스럽고 상기된 표정으로 별을 단 모자를 나에게 씌워 주며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그것은 아빠가 준장으로 진급한 해였다. 그것을 사람들은 "별을 달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리 많은 꽃이라도 별 하나는 그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별은 유달리 반짝여 보였고 내 삶도 그 별처럼 영원히 반짝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한 별처럼 빛나는 아빠가 있으니까. 드디어 길을 가르쳐 주던 북극성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빠에게 안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2년 뒤 아빠는 대통령 아저씨가 산다는 청와대라는 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부대에 늘 데려갔던 것처럼 아빠에게 나도 한번 구경 가보고 싶다고 했지만, 그곳의 소문은 꽤 살벌한 편이었고 이번에는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마도 아빠보다 더 높은 계급의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이 확실했고, 아빠가 더 높이 올라가 그런 곳이 내가 살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막연한 기대일 뿐 현실이 될지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북극성은 이미 별이 되어 내려와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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