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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Jul 27. 2024

장관의 딸

feat 1980년 5.18

막상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 생활은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다. 대학은 이제 계급은 없는 곳이라는 듯, 마치 말년 병장이거나, 또는 군대에서 갓 제대한 겁 없는 민간인처럼 모두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애써 쌓아 온 계급의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힘쓰는 망나니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모두가 더 높은 계급을 위해서 이 최고 계급의 대학에 온 것이 아니었던가? 이율배반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직 저들이 계급의 진정한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달리 군인의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으니 충분히 그럴만할 수도 있다.


나는 처음으로 아빠의 힘이 아닌 내 힘으로 따낸 것 같은 이 대학이라는 계급이 좋았다. 하지만 대학은 지금껏 그 어느 때 보다도 세상의 혼란의 중심이었고 이것이 자칫 평온하고 조용한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도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 계급을 지키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삶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고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건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바로 그해 5월 광주에서 큰 난리가 일어났다고 들었고, 이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빠가 미리 당분간 학교에 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 주어서 한동안 쉬기도 했는데, 그동안 아빠의 얼굴을 보기가 더욱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항상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건의 중심에는 거짓말처럼 아빠가 있는 것도 같았는데 그것은 군인이기 때문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이 땅을 혼란으로부터 지킬 수 있은 것은 군인 말고 또 누가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아빠는 적들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살아남을 것을 확신했기에 그리 걱정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 후 학교로 다시 돌아갔을 때에는 나를 가리켜 '쿠데타의 주역 괴수의 딸'이라고 하는 플래카드가 크게 붙어있었다. 게다가 지난 5월의 처참했던 사건에 대해 수군대는 것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것은 좀 피곤하게 느껴졌지만 다행히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못되었다. 아빠는 그런 놈들 싹 다 잡아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주겠다고 말했지만, 학교는 아빠가 명령을 내리는 군대가 아니었고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돌아가지 있었다. 한가로이 공부나 하고 있을 여건이 못되었고 그렇다고 가끔 힐끔 거리는 남학생과 연애를 할 상황도 아니긴 마찬가지였는데, 무엇보다도 철부지 같은 대학생이 아빠의 마음을 쉽게 만족시키기에 힘들어 보였다. 아빠는 대학생이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볼 터였고 얼차려를 줄게 분명했다. 게다가 대학생들을 무슨 군대의 가장 큰 주적으로 생각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들을 섬멸하기 위해서라면 당장 탱크를 동원하거나 학교에 폭탄과 총알이라도 퍼부을 기세로 힐난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아빠는 승승장구해서 드디어 군 최고의 계급에 올랐다. 이상하게 전쟁은 북한과 같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같은 군인이나, 난리를 일으키는 시민들, 그리고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누구와 전쟁을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적이 누구이든 간에 이기는 것이 중요했고 이기는 것은 더 빠른 계급의 상승을 보장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군 최고의 계급에 오른 지 불과 며칠 만에 이제 군대를 나오게 되었다며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해도 미동도 없던 아빠가 눈물을 보였다는 것이 좀 의아하긴 했지만 군인에게 전역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동안 일생을 그 계급을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었던가? 한편으로는 계급이란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가 명령하면 옳고 그름을 떠나, 아니 싫고 좋음을 떠나 따라야 하는 것이었고, 아빠에게는 아직 싫은 것을 시키는 더 높은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싫었다.


아빠의 직업은 이번에는 공무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냥 말단 공무원 같은 것은 아니고 장관이었다. 최고의 군 계급을 떠나는 것이 나도 아쉬웠지만 민간에서는 대통령 말고 가장 높은 계급에 속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시키는 마지막 계급은 역시 대통령 밖에 없었다. 아빠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더 높은 그 계급을 향하여 눈물을 닦고 경주를 다짐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빠가 이번에 목표로 삼은 것은 계급 말고 하나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그동안 계급에서는 어느 정도 밀리지는 않았지만 경제적인 문제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확실히 군인의 계급은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것은 아니어서 돈의 문제가 개입되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내 과외 비용을 대는 것부터 시작하여 아빠가 계급에도 돈의 힘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빠의 목표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하나가 더 늘게 되자 나의 삶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아빠는 해외 출장이 잦아졌고 한 번은 바티칸에 가서 교황을 만나고 왔다며 흥분하며 엄마에게 자랑을 한참 동안 늘어놓기도 했다. 출장 때마다 처음 보는 값비싼 선물을 잔뜩 사 왔고 새로운 목표에 따른 행복한 날이 계속되었다. 계급 말고 더 좋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국 말고 더 큰 세상이 존재한 다는 것도 그때 덤으로 알게 었다.


아빠가 군 생활이 이제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나도 이제 대학 생활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에는 돈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고 심지어는 그런 돈을 주무를 수 있는 더 높은 계급과 세상이 존재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아빠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 비로소 계급 말고도 이 평온하고 조용한 삶을 더 크게 계속 보장하여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가 가장 높은 계급에서 며칠 만에 내려온 것처럼 계급은 확실히 올라가 봤자 한계가 있고 유한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돈은 가지는데 한계가 없고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는데 계급을 충분히 대체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이 나중에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누구나 이 돈에 대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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