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요? 저자는 "그렇다"라고 하며 세상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쁜 세상'은 오해라고 하면서 '팩트'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요. 그래서 부재도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입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비율은? ①20% ②40% ③60%,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①20% ②40% ③80%, 오늘 세계 1세 아동 중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①20% ②50% ③80%
의외로 저소득 국가라도 60% 이상이 초등학교를 나오고, 세계의 80% 이상이 전기를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으며, 예방 접종율도 80%에 이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하의 비율을 예상했다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세상이 그렇게 최악은 아닌 듯 하지요. 하기야 팩트가 아니라면 우리나라만 해도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던 그야말로 학교도, 전기도, 예방접종도 없을 것 같은 나라였지만 이렇게 바뀌었는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와서 보기 전까지는 믿으려 하지 않았고 한류가 세계에 상륙하기 전까지는 그 전쟁이 한창이었던 분단의 나라가 안전이나 할까?라고 생각했었을 것이지요.
우리는 '나쁜 뉴스'를 하도 접해서 그런지 세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고 저소득 국가에서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으며 날마다 생활이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지구 온난화와 넘처나는 쓰레기로 결국 멸망의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은 기근으로부터 대부분의 인류를,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해방시켜 주었고, 수명도 두세 배나 길어졌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전기나 수도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인식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기와 수도뿐 아니라 인터넷과 스마트폰도 사용하고 있지요.
이렇게 보면 세상이 좋아진 것은 분명 한 듯합니다. 물질적으로도 그렇고 신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더 잘 먹고 더 오래 살고 있으니까요. 그것은 인간이 신과 왕의 폭정에서 벋어나 국민과 시민으로 살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신의 뜻에 반했다고 몰살당하거나 재판에 쳐 해저 감옥에 가는 대신, 과학이 주는 예방 주사와 전기를 공급받고 자유롭게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팩트든 거짓이든 말이지요. 왕의 노예 이거나 귀족의 농노 이거나 양반의 노비가 아니어서 일하다 죽거나, 굶어 죽거나, 전쟁하다 죽거나, 때론 아무 잘못도 없이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 지도 않고 자유가 주어진 듯 보이니까요. 그것이 팩트든 환상이든 말이지요.
그런 세상에 비하면 세상은 정말 좋아졌지요. 고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종족 간 멸종의 전쟁을 치르지 않아서 다행이고, 중세에 태어나지 않아서 마음껏 생각을 펼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제국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생화학 무기와 원자탄을 날리며 전쟁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고, 근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보리고개를 넘기지 못해 기근으로 굶어 죽지 않아서 다행이고, 왕이나 독재자에 대항하다 죽을 일도 엄청 줄어들어서 다행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 그동안 사악한 존재여서 신이 한때 그렇게 가혹하게 인간을 다루었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물질적 신체적으로는 분명 나아졌지만 정신적인 공백기를 맞고 있지요. 공백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고, 꽉 찬 혼돈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듯싶네요. '팩트'는 사라지고 '거짓'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통계적 진실과 근거로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판단하라고 했지만 통계도 조작되고 작위적으로 꾸며지는 거짓 정보의 세상이 도래하였으니까요.
특히 그 역할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디어와 매스컴이라는 정보 전달의 과학과 국민의 매체가 앞장선 듯합니다. 과학과 시민의 권리를 통해 신과 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 먹고 살만 하게 해 주었으니 이제 대가를 내놓으라는 것일까요?
어릴 적 신문은 상당히 믿을 만한 매체였습니다. 여론을 선도하고 불의에 대항하는 진정한 목소리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여론을 선도하기는커녕 여론을 선동하고, 불의에 대항하기는커녕 불의에 앞장서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문은 이런 매체의 대표일 뿐이고 팩트가 아닌 거짓을 일삼는 것은 이제 대부분의 미디어와 매스컴의 일상이지요.
그러나 저자처럼 아주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좋게 바라보며 '팩트'를 알아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도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쓰레기 기사들만 부각되어서 그렇지 다수의 기사는 여전히 언론의 제 역할을 하고 있고 이제 기레기가 되어 버린 기자는 우리가 비난하는 것과 달리 대부분 기자 정신을 가지고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를 테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식으로던 미디어와 매스컴이 팩트를 보도하고 있을 비율은? ①20% ②50% ③80%, 답은 알 수 없으나 원래 생각은 20% 였는데 팩트는 80% 라면 과연 좋아진 세상일까요?
그러므로 이 물질적 신체적으로 좋아진 세상은 분명 정신적으로 어지러운 세상이면 분명합니다. 그래서 고대, 중세, 근대의 어떤 인류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 온다면 풍족하고 건강한 생활에 만족할 것이지만 정신병에 걸리거나 사기를 당해 죽기 딱 좋은 세상인 것이죠.
그렇다면 '팩트 혼란'의 세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미디어와 매스컴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죠. 자극적인 맛에 길들이 지면 건강에는 좋지 않은 것처럼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정보를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 간이 덜 된 집밥과 같은 순화된 정보로 섭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팩트와 통계에 따른 근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현재의 정보는 팩트도 통계도 다 집밥이 아니라 가공식품임을 주의해야 합니다.
저자의 바람대로 세상은 나아지고 있지만 세상은 나아지리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세상은 나아지기도 하지만 분명 후퇴도 하고 역주행도 하는 듯합니다. 부의 양극화로 남는 것과 기근이 동시에 일어나고, 인간이 나아지기 위해 지구는 썩어가고 있지요. 전쟁을 다시 일삼는가 하면, 신과 왕과 독재자의 통치로 돌아가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상이 나아진 것은 긍정적인 생각뿐 아니라 긍정적인 행동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하였겠지요. 세상을 낫게 하는 방법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죠. 신과 왕은 한때 훌륭한 체계였지만 낡고 쓰레기가 되자 치워야 했습니다. 인간이 추구한 무분별한 부와, 자연 정복과, 전쟁과, 체제와 규범도 쓰레기가 된다면 마찬가지겠죠.
정보도 과잉을 넘어 정보 쓰레기 사회입니다. 팩트를 알고 정보를 걸러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지요. 정보가 유산균처럼 이로운 세균이나 영양분처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처럼 전염병처럼 떠다니고 영양분이 되긴커녕 내장 지방처럼 쌓여 건강을 읽게 되게 하지요. 그것을 거르기 위해서는 정보 청정기, 정보 마스크, 정보 필터, 정보 감량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보 청정기, 정보 마스크, 정보 필터, 정보 감량 기는 도대체 어디서 사야 할까요? 파는 데가 없으니 직접 만들어 볼까요? 아니 뇌에 필터 같은 것을 딱 꽂으면 그런 역할을 하면 좋을 텐데요. 다 진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인간의 진화는 여전히 필요해 보이네요.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줄 서평 : 세상은 정말 괜찮은 것일까? (2022.01)
내맘 $점 :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0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