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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Mar 12. 2022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인가?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당연히 우리는 "부채는 갚아야 할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빚을 떼먹는 것은 죄악이며 심판받아야 할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데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지요.


세상에 돈이 있기 전에 먼저 부채가 있었다


전통적으로는 아직 화폐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하기 시작했고 물건으로 교환하는 것이 번거로워지자 화폐, 즉 돈을 만들어 냈던 것이 우리가 지금껏 배운 정설이었지요. 그런데 이러한 '물물교환의 신화'는 경제학자들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였고 그 이전에 부채, 즉 빚이 먼저였다는 주장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주장은 사뭇 그럴싸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집트의 상형문자 같은 것을 해독했더니 그 내용은 대부분 왕이나  역사의 위대한 기록이었을 것이란 기대를 깨고 실제로는 누가 얼마를 빚졌고 누가 얼마를 갚아야 하는 등 부채나 회계에 관한 단순하고도 재미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때는 화폐나 돈이란 것이 아직 존재하기 훨씬 이전이었지요.


인간은 실재로도 원래 부채를 타고나는 존재였습니다. 단지 태어나기만 했는데 벌써 빚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아무 뜻도 모르고 한때 따라 읊조렸던 이 문구에는 우리가 생명을 받은 만큼 이 땅에서 끊임없이 빚의 이자를 갚아 나가야 하고, 우리에게 빚진 자들에게는 빚을 탕감시켜 주어서, 결국 신에 의해 도덕적 부채와 채권이 최종적으로 상계된다는 이야기였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란 처음부터 생명으로 주어진 부채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지요.


그러나 처음의 부채 개념은 지금 생각되는 부채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인간의 사회는 처음부터 현금이 아닌 신용사회, 즉 신용카드를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인간의 관계란 도덕적 관계들이 부채로 인식되며 형성되는 관계였고 상호 부조 속에 도움을 주고받으며 명예와 체면을 위해 받은 것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신용의 개념이 앞섰습니다. 그러한 관계는 절대 돈이라는 현금으로 청산되는 관계는 아니었지요. 그 부채에 대한 보답은 적어도 그 보다 나은 것으로 보상할 때 분쟁이 없었고 명예로왔으며 끊임없이 반복의 순환 고리를 가지고 계속되는 신용의 사회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극단적인 예로 사람을 죽이면 그에 상응하여 사람의 목숨으로 되갚는 것만이 가능했고 명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는 절대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으로 절대 보상을 할 수도 없었고 아무리 보상을 한다 한다해도 그 빚은 절대 없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다른 목숨을 대신하여 돈이 건너질 때에는 집안간 반복되는 피의 복수를 막기 위해 공동체가 나서서 보상을 수용하도록 설득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 부채가 절대 청산되었다고 여겨질 일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노예 제도도 이러한 부채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처음에 노예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패했을 때나 다른 부족을 대상으로 노예로 삼을 수가 있었습니다. 노예는 완전히 그동안의 모든 관계의 자유가 단절된다는데 이미 사람이 아닌 존재였으므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었고 거래도 가능했지만, 전쟁이 아닌 이상 동족 간에는 빚을 지고 갚지 못한다고 해서, 즉 부채를 빌미로 노예로 삼거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도덕적 개념이었던 부채가 이익 개념의 부채로 인식되면서 혼돈이 발생하게 됩니다.

처음에 인간의 부채 관계는 상호 부조적인 명예와 체면이어서 더 이상의 것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고,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신용의 관계였었지만 종교의 언어가 과학의 언어로 대체되고 인간의 신용이 돈으로 대체되면서 이제 인간은 오로지 이기심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로 간주됩니다. 즉 돈을 만들어낸 오늘날의 인류라 할 수 있는 경제학의 '경제적 인간'이 탄생하는 순간이지요.


이제부터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익을 위해 행해집니다. 그래서 부채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과 같이" 탕감이 가능하고 탕감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 이제 반드시 갚아야 하는 무엇이 되지요.  실제로도 이전 부채는 사회변혁을 막기 위해서라도 갚지 못할 부채를 계속 탕감해 줄 필요와 실행이 반복되었습니다. 더불어 전쟁으로 노예가 된 이들도 얼마든지 주인은 노예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 가능했고 실제로도 해방이 거듭되었지요. 그러나 이제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할, 즉 가족을 팔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전쟁 노예만이 가능했던 노예는 이제 부채 노예를 통해서도 가능해 지지요. 그리고 그 부채와 노예는 사회의 변혁이 아니고는 탕감이 되거나 해방될 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람의 목숨으로만 갚을 수 있었던 사람의 생명도 이제 돈으로 갚을 수 있는 부채로 여겨지고요. 인간과 인간의 생명의 처지가 명예롭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 이제 돈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부채의 상환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은 아니러니 하게도 국가와 무기였습니다. 즉 국가의 존재란 부채를 갚기 위해 강제하는 수단이었고 이를 왕에게 위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의 집행에는 무기를 가진 폭력이 뒷받침되었습니다. 즉 강제력 말이지요.

이러한 주장은 마치 안전을 위하여 폭력배들에게 의탁한 상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입니다.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왕의 절대 권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명예와 체면을 버리고 이익을 쫓아 이것을 가능하게 하였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부채는 반드시 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가족을 팔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팔아서라도 말입니다. 여기에 모순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거대한 시스템은 태어날 때부터 헤어 나올 수 없는 부채로 인하여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덪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돈이 있기 전에 부채가 있었다"라는 말은 의미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거대한 부채의 짐 위에  생을 살아가니까요. 학자금을 대출받고 그것을 갚을 때쯤 주택 대출을 갚아 나가고 그것을 다 갚을 즈음 드디어 세상을 벋어나게 되지요. 이 땅에서 부채를 탕감받을 일도 탕감하여 줄 일도 없으므로 신에게  최종 부채를 상계할 일도 없어집니다.

당연히 부채는 갚아야 할 무엇이고 빚을 떼먹는 것은 죄악일 것 같지만 태어나면서 부채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면 말입니다.



난해한 책이면서도 흥미가 가는 내용이었네요. 당연히 갚아야 될 것이라고 여겼던 부채의 늪에 대해새도 생각해 볼 기회였고요. 그런 반면 부채의 역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난해한 번역도 방향을 잡는 게 쉽지 않았지요. 흔히들 말하는 "이 집은 사실 은행 꺼야"라는 말은 무서운 세상입니다. 은행과 국가는 만약 그 빚을 갚지 못하면 가혹하게 채찍을 휘둘러 우리를 언제든 노예로 전락시킬 것이니까요. 이미 빚을 갚기 위해 이미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것은 쉽사리 명예를 돈으로 바꾸길 원한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것을 노리고 접근한 왕 때문이었을까요? 그 왕과 국가도 사실은 은행과 채권자로부터 부채 상환을 독촉받는 존재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것은 아이러니 입니다. 그리고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예외가 단 하나 있는데 미국은 전 세계에 미국 국채라는 빚을 엄청나게 지고 있지만 무제한 달러 발행을 통해 그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최강국이며 국채 매입은 일종의 우방국의 조공이라고도 하네요. 여하튼 언제 이 빚을 다 갚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으려나요?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한줄 서평 : 빚의 무서움 (2022.03)

내맘 $점 : $$$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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