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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Apr 02. 2022

도시의 미래 : 서울에서 광고가 사라진다면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지하시설물 표지, 보도 명판, 표지판 기둥, 신속진입상자, 하수로 배기구, 지하철 배기구, 수저터널 환기시스템, 변전소, 휴대전화 중계탑, 벽면 고정판, 통신중계설비, 사랑의 자물쇠, 지자체 깃발, 조각상들, 명판, 교통신호등, 도로표지, 인지 패턴, 위험 기호, 피난처 표지, 수작업 간판, 네온사인, 풍선 인형, 맨홀 뚜껑, 음수대, 하수처리시설, 지하 수조, 홍수 조절, 전봇대, 전력주파수, 가로등, 해저케이블, 중안선, 중앙분리대, 변형 교차로, 로터리, 과속방지턱, 도로변, 보행신호, 자전거 겸용 차도, 공유공간, 회전문, 비상구, 벽돌, 콘크리트, 건축제한선, 엘리베이터, 철골구조, 거리 협곡, 원점표지석, 도시 경계석, 철로 공원, 가로수, 잔디밭, 비둘기, 보도 스파이크, 벤치, 조명, 위장 시설물, 게릴라 표지판, 소화전, 경사로, 차없는 거리.


이처럼 도시라면 숨겨진 물건들과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일상 속에서, 흔히, 가끔 또는 우연히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모두 흥미가 가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이야기는 '광고판'이었습니다. 도시라면 응당 시선을 사로잡고 번쩍여야 할 광고판이 만약 사라진다면 이 도시는 어쩔까 하는 상상 말입니다. 놀랍게도 그것을 시도하여 현실화한 도시가 있었다고 하네요. 


'깨끗한 도시법'은 경쟁적으로 눈길을 끌기 위해 행인들의 머리 위로 뻗어 나오게 설치된 수만 개의 간판과 수십만 개의 화려한 광고판을 대상으로 금지를 명했습니다. 이 법은 뿐만 아니라 택시와 버스 광고를 금지했고 길거리에서 광고전단을 배포하는 것조차 불법으로 규정했지요. 당연히 광고 영역에서 수익을 보는 비즈니스들은 이 법을 극구 반대했고, 이들이 고용한 로비스트들은 광고판 설치를 금지하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부동산 가치가 하락할 것이란 주장을 펼쳤습니다. 또 광고판을 떼어내면 더 세금을 쓰게 될 것이라고도 읍소하기도 했고, 전광판 광고가 밤거리를 환하게 밝혀서 시민들이 안전하게 다니는데 도움을 준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지요. 세계 최대 옥외광고 제작사 중 한 곳은 시를 상대로 광고판 금지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법안이 발표되자 민간기업이 공공장소를 침범해 마구잡이로 광고판을 설치하는데 반대하는 시민들은 큰 지지를 보냈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이 법안은 결국 광고 옹호자들의 극열한 반대를 넘어서 통과되었습니다. 90일 이내에 광고판을 철거하지 않으면 막대한 벌금을 피할 수 없었기에 이 법안은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광고판이 사라지자 도시의 전체 모습은 아름다운 옛 건물과 건축물의 아름다운 장식물이 드러났습니다. 고객을 끌어들여야 했던 상점 주인들은 대신 건물을 밝은 색으로 칠해서 빛바랜 건물 외벽에 돌출 간판이 가득 붙어 있었던 거리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지요. 시간이 흘러서 다시 부분적으로 광고가 도입되었긴 했지만 시 당국은 매우 신중하고 느리게 광고판 부활을 진행했고, 광고 게시자는 유용한 공익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야 해서, 버스정류장에 대화형 검색엔진 광고를 도입하여 목적지 일기예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도 했고. LED 광고판 설치를 허가하는 대신 광고판이 걸린 주요 교량을 보수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위의 사건은 상파울루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서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서울에서 광고판을 없애겠다고 공약한 어느 후보가 마침내 서울시장에 당선이라도 되는 것이지요. 뭐 보나 마나 마찬가지로 더 난리가 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거의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처럼도 보이지요.


그러나 광고판 없는 서울을 생각하는 것은 상상만으로 기분이 무척 좋아지는 일입니다. 광고가 사라진 서울이라니요. 그동안 광고를 너무 당연히 여기고 그에 길들여져서 그렇지 광고판이 사라진 서울의 모습은 뭔가 근사할 것 같지 않나요? 이는 도시의 명소라는 곳에서  사진만 찍어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멋진 풍경을 찍었는데 한편에서 거대한 광고판이 풍경을 해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광고가 절대 그런 명소를 놓칠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명소를 과연 광고가 차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각종 광고를 유치하여 그것으로 비용을 충당하고는 있다지만 그게 시민들에게 과연 얼마나 돌아가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아마도 돌려주고 있는 것보다는 광고가 돌려받고 있는 것이 훨씬 클 것입니다. 편익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대부분의 편익은 아무 대가 없이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광고 플랫폼의 차지 아닐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광고 노출 대상자들은 그 내키지 않는, 필요 없는 광고에 언제 어디서나 종일 노출돼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중교통에서부터 시작하여 인터넷 광고까지 이 도시의 삶은 가히 광고에서 벋어 날 수 없는 족쇄에 매여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 노출된 광고에 이끌려 물건까지 사게 된 다면 고스란히 광고 비용까지 지불하고 있는 아이러니의 삶이 아닐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광고를 모두 없앤다는 것은 적막한 디스토피아적 공산사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대 광고와 광고 홍수도 문제지만 아무런 광고도 없이 적막한 도시라면 그것 또한 너무 삭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가까울 듯합니다. 광고판을 제한하고 없앤다고 한들 광고를 절대 포기할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가까이는 광고를 함부로 붙이지 말라고 하는 엘리베이터의 벽에 낙서 같은 전화번호를 적어서 광고라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이 광고가 자본주의의 총아 인지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광고판이 없어진 도시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멀지 않게 가끔 시골에 가면 그런 광경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온통 푸른 산이고 온통 노란 들인 그런 목가적 모습이지요. 광고를 볼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 곳에는 광고판이 없는 것일까요?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가끔 그 가운데 등장한 광고판은 확실히 거기와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거든요. 광고판은 보라고 하는 것이지만 조금 숨길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광고판이 원 그림의 배경이 되어버려서는 안되잖아요.


그렇다면 도시의 광고판이란 그 어디 중간 지점이어야 하겠네요. 광고가 넘쳐나는 도시는 너무 오염된 것 같지만, 그렇다고 광고가 모두 사라진 도시도 살아있는 도시 같지 않게 보일 테니까요. 그러나 도시에는 이미 광고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지요, 적어서 문제 될 것은 아닙니다. 외국을 나가면 공항에서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그 나라 도시의 광고판입니다. 광고가 외국 광고판인 것을 보고 이제 여기가 외국이구나 느끼게 되지요. 예전에는 버스에도 택시에도 광고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광고판으로 쓰이게 된 것은 훌륭한 아이디어긴 했지만 정작 광고를 보게 되는 사람들의 의견 따윈 전혀 묻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었지요. 프로그램에서도 중간광고가 툭툭 튀어나와 흐름을 끊고 음악을 하나 들으려 해도 광고가 중간에 방해를 하지만 보는 듣는 이의 의견 따위는 안중에 없습니다. 오히려 물에 빠진 것을 구해주었더니 이제 옷을 내놓으라고 한다고, 광고를 보기 싫으면 돈을 내라고 하는 세상이니까요.


이런 식이라면 아직은 아니지만 도로며 하늘이며 산이며 강이 광고판으로 도배될 날이 올 태세입니다. 그때는 광고판이 아니라 홀로그램 같은 것이나 3차원 빔을 이용해서 거대한 광고를 만들어 막 쏘겠지요. 낮에 산책을 나가 하늘을 좀 올려다보려고 하니 하늘에 태양 마냥 광고가 떠 있고, 강을 내려다보면 시원함을 느끼려고 하니 거기 거대한 다리 모양의 광고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고, 밤에 달과 별을 올려다보려 했더니 하늘에 거대 광고가 펼쳐져서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모습입니다만 그리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는 물론 이러한 광고 비용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편익은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지금은 너무 쉽게 그 광고를 내 보내는 미디어가, 플랫폼이, 기업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독점하고 있지요. 사실 그 광고라는 무단 노출에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시청을 하고 있는 개개인은 꼼짝없이 그 광고를 보고도 혜택은 말할 것도 없고, 마땅히 누려야 할 시청료도 어이없이 빼앗겨 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광고를 싹 지우고 도시의 풍경을 리셋하는 생각은 상상만으로 아름다운 것이지요. 광고판의 공해로부터 한번 대기를 싹 청소하여 청정 도시로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낌이거든요.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런 후보가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서울에서 광고판을 사라지게 하겠다!',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를 찾겠다!'는 상상은 물론 반대론자들로 인하여 난리가 나겠지만 한번 상상해 봄 직한 싱싱한 것 아닐까요?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한줄 서평 : 도시의 사물들의 낭만 (2022.03)

내만 $점 : $$$

로먼 마스, 커트 콜스테트 지음 /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202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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