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바나나 우유
삿포로
여기는 홋카이도 삿포로 온천. 물방울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노곤노곤 사지가 녹아 지느러미 되어 언더더씨 인어공주왕자 되어 헤엄이라도 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온천은 혼탕이라고 하네요. 부끄러워 스르륵 눈을 감았습니다. 근육이라곤 하나 없는 갈치살은 햇빛을 받으면 반짝 은빛으로 빛나겠지만, 여기는 햇살이 비취는 바다는 아니니까요. 밖에는 허리만큼 눈이 내리고 있겠지요. 노천탕이었으면 눈을 입에 섹시하게 베어 물고 눈꽃 빙수를 즉석에서 만들어 먹으며, 유혹의 뇌쇄적 표정을 토할 것을 유도할 량 지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사우나
앗 그런데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립니다. 한둘도 아니고 여럿이 많이 들립니다. 탕 안에서의 특성상 메아리치며 선명하게 고막에 북을 두드립니다. 에이 모르겠다, 여기가 어디? 냅다 눈을 떠 보니 주위에 죄다 한국 아저씨들 뿐입니다. 아앗! '삿포로'가 아니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사우나'였습니다. 온천탕도 아니고요. 물론 혼탕일리 없습니다. 눈을 스르륵 반쯤 감고 있으니 사우나가 삿포로로 보인 것입니다. 거기에 가고 싶었을 머리통이 착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뭐 따뜻한 물 있고, 탕 있고, 설원은 펼쳐지지 않지만 어차피 실내라서 보이지 않으니 온천이 따로 없는 쎔쎔입니다. 혼탕의 유혹은 그렇게 눈꽃 빙수 대신 샴푸 거품을 눈 녹듯이 헹구고 꼭대기 빠알간 앵두알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 앵두가 아니라 샴푸 뚜껑이었네요.
혼탕
그래도 이렇게 추운 날 따뜻한 탕에 들어앉아 사우나에 다녀온 기분은 홋카이도 삿포로에 다녀온 것 못지않습니다. 어떻게 사우나를 삿포로로 구라 칠 수 있냐고 화가 나신다면 나가서 편의점에서 삿포로(SAPPORO) 맥주 한 캔 사서 드세요. 저는 대신 항아리 모양 노오란 개나리 꽃 기다리며 바나나 우유를 먹겠습니다. 사라진 혼탕은 어떻게 할 거냐고요? 라면에 계란을 혼탁하게 풀어서 혼자 탕처럼 자셔요. 라면 국물이 계란으로 노랗게 진하면 그것이 탕이지요. 사우나에서 삿포로를 느꼈으므로 비행기 값은 굳은 쎔쎔 입니다. 이제 탕 안에 눈꽃 대신 노오란 꽃을 띄울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