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e Feb 18. 2022

가상의 실재와 인간의 미래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유발 하라리'는 '찰스 다윈'과 더불어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하라리가 이 '사피엔스'를 중세 시대에 썼다면 말이죠. 죄명은 진화론을 너무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창조론을 온전히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연장 선처럼 보이네요. 그러므로 '찰스 다윈'도 예외 없이 같이 잡혀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뻔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운이 나쁘게 지동설을 주장하여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달리, '다윈'이 살던 시대는 다행히 중세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꽤나 진화론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았습니다만은. 운 좋게도 '유발 하라리'의 시대는 지금이기에 이런 발직한 책을 썼음에도 종교재판에 회부되지도 화형에 처해지지도 않지요.

그래서 우리도 이 '사피엔스'를 거리낌 없이 읽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겠고요.


창조론과 진화론은 여전히 공존하는 논란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명쾌하게 이것이다라고 가르쳐주진 않았습니다. 역사 시간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미션스쿨이라는 이유로 창조론이 맞다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머릿속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뒤엉켜 인간은 신이 창조했는데 진화도 했다는 새로운 학설로 남아있었죠.


사실 모든 이유를 신에게 떠 넘겨 버리면 모든 것이 간단해지긴 합니다. 수천수만 년 전도 더 된 시대에 사라지 화석과 뼈 조각을 일일이 발견하며 진화를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가끔 '갈릴레오' 같은 천재들이 나타나 지구가 돌고 있는 것과 같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주장을 하고 나오면 골치 아파지는 것이죠. 그럴 경우 대게는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믿음'이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보통은 종교 재판에 넘겨 입을 다물게 하거나, 아니면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하도록 화형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진실의 유일한 증인이었지만 절대 증인으로 나서지 않을 테니까요.


이 '믿음'을 탄생시킨 '인지 혁명'의 이론은 그래서 엄청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 '인지 혁명'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도 만들어 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유일하게 상상력을 가진 동물이었죠. 즉 물리적 실체가 없는 것을 상상을 통해서 창조해 내고, 이 창조된 '가상의 실재'를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서 실제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하는 마법의 법칙을 알아냈으니까요.


이 '가상의 실재'가 처음으로 힘을 발휘한 것이 바로 '신'의 등장입니다. 인간은 상상력과 더불어 종교성이 있는 존재였지요. 사피엔스는 이 거대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에는 너무나 약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더 강하고 거대한 의지할 존재가 필요했겠지요. 그래서 '신'이라는 '가상의 실재'를 창조해 내었고 이를 여러 인간이 '믿음'으로 드디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상력'과 '종교성'과 '신'과 '믿음'과 '가상의 실재'는 쭉 맥락을 같이 하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인간은 '국가'라는 또 하나의 '가상의 실재'를 만들어 냅니다. 국가는 땅 위에 세워진, 본래는 땅의 경계도 없었을 것이지만, 인간들의 믿음체 일뿐 어디에도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지요. 이 '국가'는 그때그때마다 대답도 행동도 없는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었기에 '신'의 대리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 '국가'에는 대표 대리자인 '왕'이 필요했고요. 드디어 국가의 왕은 신의 대리인이라는 멋진 네트워크를 형성해 냅니다. 그 '믿음'이 더 강력한 국가와 왕을 만들었음은 물론이고요.


신과 국가와 왕이라는 '가상의 실재'의 창조 세계가 다소 허무맹랑해 보인다면 오늘날 '가상의 실재'가 가장 현실화된 경우로 바로 '법인'을 보면 됩니다. '법인'은 '신'과 '국가'에 이어 오늘날 가장 강력한 믿음의 집합체지요. '신'과 '왕'은 멋진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나 강력해진 힘을 가진 '왕'은 이제 신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고 '국가'또한 '왕'의 것이라는 주장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되자 드디어 그 자리를 '법인'들이 대신하게 됩니다.


'법인'은 오늘날 가장 강력한 '가상의 실재'입니다. 경영자가 해고되거나 죽어도, 임직원이 다 해고된다 하여도, 생산 라인과 사무실이 다 불탄다 하여도, 주식이 모두 팔린다 하여도, '법인'인 회사는 여전히 실재하지요. 경영자와 임직원은 새로 임명하고 뽑으면 되고 생산 라인과 사무실은 새로 얻으면 되고 주식도 주주가 바뀔 뿐 사라지지도 않지요. '법인'은 파산하지 않는 한 인간보다 오래 살고 영구히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 실재한다는 '믿음'만 있으면 말이지요. 그래서 '법인'의 설립자는 예전의 '왕'처럼 지위를 누리고 마치 때로는 '신'의 대리자 같이 행동하기도 하는 것일까요?


이제 '가상의 실재'였던 이 '신', '국가', '법인'은 현상의 실재인 '인간'과 '자연'을 좌지우지하는 위치를 획득하게 됩니다. 실재하지도 않는 '신'의 심판에 실재하는 인간이 죽임을 당하고, 실재하지 않는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요. 실재가 없는 '법인'인 회사가 실재하는 인간을 고용하기도 하고 해고하기도 하며, 인간의 삶을 결정합니다. 실재하지 않는 '국가나 '법인'의 자비에 의해서 실재하는 바다도, 강도, 산도, 나무도, 동식물도 겨우 보호를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가상의 실재'로 가장 강력한 믿음을 가진 것은 돈이라는 '화폐'입니다. 이 역시 '인지 혁명'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돈은 '화폐'라는 '가상의 실재'를 가지고 거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거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폐가 '가상의 실재'라는 의미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면, 코인과 같은 '가상 화폐'를 보면 그 '가상의 실재'의 발전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가 무슨 가치가 있냐는 논쟁이 여전히 한창이긴 하지만, 결국은 '믿음'이라는 네트워크가 활성화될 경우 그것은 이제 더 이상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니까요. '믿음'이 강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인지 혁명'의 산물이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것은 이 '가상의 실재'들이 경쟁과 협력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것들이 이제 마음대로 짝을 이루고 인간을 지배하기에 이르지요. 신과 국가는 한때 가장 강력한 동맹을 맺고 인간을 통치하였습니다. 중세시대와 왕권신수설이 그것이었죠. 그리고 법인은 국가의 통제에 놓임으로써 사라진 왕을 대신하여 제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다국적 기업은 국가를 초월하여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가장 강력한 가상의 실재인 '돈'의 경우에는 '자본주의'의 승리 이후 '신'도 '국가'도 '법인'의 통제도 뛰어넘는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바탕은 물론 강력한 '믿음'이고요. 그래서 '돈'이면 신도 국가도 회사도 팔 수 있는 것인가 봅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지요. '가상 화폐'는 신과 국가와 법인의 통제에 따르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만 기존의 '가상의 실재'의 인정이 없다면 결국 사이비 종교로 몰려 몰락할 것이므로 협조할 듯합니다.


이제 '신'은 어느 정도 고착화되어 이전만큼 큰 종교는 새로 생겨나지는 않는 듯합니다. 이상하게도 '신'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너무 잘해서 이제 신이 필요 없어진 것일까요? 인간의 혼란스러운 세계를 보면 한두 명쯤 더 새로운 신의 아들이나 조카를 세상에 이사로 파견할 법도 한데 '신'은 더 이상 인간을 구원할 뜻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과 믿음이 '신'으로부터 멀어져서 일 수도 있고요.


'신'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사이비 종교라고 불리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상상력의 활동은 계속되는 듯합니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와 셀러브리티가 한편으로는 그 믿음의 자리를 꿰차기도 했고요. 작가라고 해서 그 자리에 예외일까요?

 이제 인간의 상상력과 믿음이 '신'과 '국가'로부터 '법인'을 거쳐 '화폐'와 '가상의 세계'계로 옮겨지고 있을 뿐일 것입니다. '가상 화폐'를 들고 나오더니 이제 '메타버스'를 만들어 낼 모양입니다. 드디어 '가상의 실재'는 그 의미 그대로 ''메타버스'의 시대로 가고 있나 보네요.


이렇게 인간은 분명 이 '인지 혁명'을 통하여 진정한 이 지구의 정복자 사피엔스로 거듭났지만 또 이 인지 혁명이 만든 '가상의 실재'에 내어 준 것도 많습니다. '가상의 실재'에 의존하고자 했던 바람은 '가상의 실재'의 지배를 스스로 인정하고, '가상의 실재'를 위하여 존재하고, '가상의 실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가상의 실재'를 위하여 전쟁도 하도 있으니까요. '가상의 존재'는 단순히 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가상의 존재'를 숭배하고 예속되고자 하는 종교성을 불러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의 '인지 혁명'은 '메타 버스'의 세계 속에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가상의 실재'를 새로운 '신'으로 섬길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인지 혁명은 사피엔스를 낳았지만 오늘날 인간을 스스로 만든 '가상의 실재'에 예속시켰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네요. 인지 혁명의 빛과 그림자입니다.

과연 인간은 다시 한번 인지 혁명을 통해 '가상의 실재'를 이기고 그것의 지배자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스스로에 만든 덫에 빠져 그에 지배당하고 결국 멸망하여 '가상의 실재'만 남게 될까요?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한줄 서평 : 인지 혁명의 빛과 그림자

내맘 $점 : $$$$$

유발 하라리 지음 / 조현욱 옮김 / 이태수 감수 / 김영사 (2015.11)



매거진의 이전글 따라갈 것인가 극복할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