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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Nov 19. 2021

날씨의 어른 : 맑음 아재

날씨의 아이(Weathering with you, 2019)

날이 흐린 것도 아니라는데 어스름히 자욱하네요. 안개일까요?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 아닐 거예요. 그래야만 합니다. 쿨럭쿨럭. 맑은 '햇살'은 온데간데없고, 태양광 로봇도 아닌데 별로 힘이 없습니다. 기분은 '커피'를 먹어도 'RPM(revolution per minute)'에 오르지 않아요. '비타민(vitamin) C'를 추가로 투여하지만 나아지질 않지요.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합니다. 이게 다 '날씨' 탓이지요.


그러나 날씨가 맑던 흐리던, 비가 오던 눈이 내리던, 춥던 덥던, 하루는 시작되고, 날씨가 좋다고 혹은 나쁘다고 일을 멈추거나 미룰 수는 없지요. 분명 날씨 탓이 맞는데 인정해 주지 않으려 듭니다. 가령 날씨가 좋은 날에는 세배로 능률을 올리고, 흐린 날에는 쉬는 게 평균적으로는 더 생산성이 높겠지만 그러진 못하게 하지요. 맑은 날이든 비가 오는 날이든 '로봇'과 같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기를 원하지요. 사실 전 태양광 로봇 같은데 말이죠.


인정하든 하지 않든 날씨는 의외로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날씨가 이상하리만치 '기분'과 맞닿아 있거나, 날씨를 보고 하루를 출발해서 날씨를 보고 마무리를 하는 이유만이 아니에요.

아직도 농사는 날씨의 영역이에요. 인간의 생사는 날씨에 달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에 의해 날씨를 신과 '예언자'의 영역에서 예보와 '공공재'의 영역으로 옮겼다고는 하나 그 예측도 불과 며칠에 불과하지요. 그냥 컴도 아니고 슈퍼컴퓨터를 사 왔다는데 잘 맞지도 않아요. 구라청.

더군다나 그 변덕스러운 신의 '기분'과 같은 날씨는 인간의 힘이나 비위 맞추기에도 조금도 바꾸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지요. 다른 신들은 다 소멸되고 있는데 이 '날씨의 신'만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날씨의 아이(Weathering with you, 2019)'라는 영화에 보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날씨'의 신'인지도 모를 '맑음 소녀'라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연일 비가 계속되는 날씨라도 '맑음'을 불러올 수 있는 소녀이지요. 단 '맑음'만 불러올 수 있어요. '흐림'이나 '비옴'은 불러올 수 없음으로 볼 때 어딘가에 '흐림'소녀나 '비옴'소년은 따로 있을 수도 있지요. 농촌에서는 '비옴'소년이 더 필요로 할 수도 있어요. 다만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도시였기에 '맑음 소녀'가 더 인기가 있지요. 그리고 저에게도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맑음'소녀입니다. 태양광 로봇 같아서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더 이상 '날씨의 아이'는 아니지요 '날씨의 어른'입니다. 그러니까 '맑음 소녀' 대신에 '맑음 어른'도 어딘가 있을 거예요. 연일 비가 계속되는 것과 같이 이런 꿉꿉한 기분이라도 한순간 '맑은' 기분으로 되돌 릴 수 있는 어른 말이지요. '맑음 어른'은 분명 '날씨'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분'의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예요!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고 있노라니 날씨에 더 민감한 것은 인간보다는 식물들인 듯싶네요. 저렇게 기분이 나쁘다고 나뭇잎들을 바닥에 마구 집어던지고 있는 걸 보니 그들도 '날씨의 나무'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날씨에 따라 햇볕과 비를 받아 가며 생장하는 식물이야 말로 날씨에 따라 기분이 많이 달라지겠지요. 그러고 보면 저 태양광 로봇이 아니라 식물이었나 봐요! 정체성의 혼란입니다. 이게 다 '날씨' 탓이지요.


여하튼 요즈음은 심상치 않은 날씨의 변화 탓으로 인하여 '날씨의 어른'은 기분 또한 널뛰기를 뜁니다. 특히 지금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겨울의 길목에서 널이 푸른 하늘 높이 뚫고 오릅니다. 널이 아니라 그네를 뛰네요.

뜨겁기가 아프리카 보다 더 뜨겁다는 대프리카 여름도 그렇고 시베리아보다 더 춥다는 서베리아 겨울도 그렇고, 그것이 엘리뇨나 라니냐 같은 기후 변화 때문이라지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소년, 소녀의 이름이었네요. 어른말고 아이들은 정말 어떤 '날씨의 미래'를 맞게 될까요? 걱정이지요.


'맑음 어른'이여! 저 안개인지 미세먼지 인지 좀 걷어내고 햇살을 불러 주오. 이 '날씨의 어른'에게도 말이지요.


그리고 '날씨의 미래'에는 더 '맑은 환경'으로 '맑음 아이'가 살아갈 수 있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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