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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Mar 28. 2022

나에게 따사로운 햇살 우표를 붙여줄래?

날마다 날씨

오랜만에 우체국에 갔습니다. 입구에서 약간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더라고요. 우체국을 가 본지가 한참 오래다 보니 요즘 편지를 보내는데 우표값이 얼마인지도 모르겠고, 버벅거리지 않고 잘 우편물을 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스템이 확 바뀌어서 최신 우편물 배송 시스템에 허우적거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우체국은 별로 달라질 것 없이 정겨운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먼저 조심스레 봉투에 우편물을 넣고 풀을 발라 입구를 습니다. 딱풀이 있을까 했는데 신기하게도 물풀이 아직 있네요. 특이한 것은 물풀과 더불어 테이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습관대로 테이프를 붙일까 하다가 역시 정겹게 물풀을 오랜만에 발라 봅니다. 역시 잘 붙네!


그리고 빠른 등기로 보내기 위해 무게를 잽니다. 우편물의 무게를 재는 것뿐인데 마치 자신의 몸무게를 재는 양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빠른 배송이라 그런지, 오랜만이란 우편요금이 올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요금이 꽤 나왔습니다.


금액이면 우표를 다닥다닥 몇 장이나 붙여야 할 것 같지만 요즘은 우표 대신 바코드를 달랑 한 장 붙이더라고요. 살짝 실망입니다.


"에이 낭만적이지 않아요!",

"편물의 낭만은 우표쟎아욧!"


라고 차마 말하지 못합니다. 그냥 표정만 그렇게 짓습니다. 메일도 아니고 카톡이 편지처럼 쓰이는 시대에 우표를 붙여주지 않았다고 해서 우체국의 낭만이 사라졌다고 난동을 피울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연애편지도 아닌 고작 무심한 서류들을 부치는데 말이지요.


우체국을 나서니 따사로운 햇살이 비춥니다. 물풀로 우표를 꾸욱 눌러 부친듯한, 온몸에 달라붙는 봄햇살의 따사로움이지요.

오랜만의 우체국우표를 붙이지 못해 낭만이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도 틀릴세라 글자들을 조심조심 한자한자 눌러쓰고 누가 볼까 물풀을 한가득 칠해 입구를 막던 편지를 잠시나마 떠올리게 했지요.

 낭만을 햇살만이 아는 듯, 나에게 따사로운 햇살 우표를 붙여 바람에 실어 멀리멀리 부쳐줄 것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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