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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Apr 03. 2022

그림에 대한 책은 왜 자꾸 읽을까?

널 위한 - 문화예술 (미술관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가장 친절한

지난번에는 '부에 대한 책은 왜 자꾸 읽을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그림에 대한 책은 왜 자꾸 읽을까?'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질문이 떠오릅니다. 부에 대한 책을 자꾸 읽었던 이유는 부에 대한 지식의 업데이트와 부에 대하여 잘 모르면 부에서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 등에 있었다면, 그림에 대한 책을 읽는 이유는 전혀 다른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에 대한 책을 있노라면 부에 대한 책을 읽을 때와 전혀 다르게 우선 심적으로 엄청나게 편안할뿐더러 즐겁기까지 하니까요. 부에 대한 책은 뭔가 그 책 안에서 숨겨진 것을 찾거나 혹 사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강박도 없지 않은 반면, 그림에 대한 책은 전혀 그런 것 없이 오롯이 그림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림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책에서 보았던 그림을 어디서 보아도 이건 누구의 작품이고 언제 그려졌고 어떤 기막힌 요소가 숨겨져 있고 비하인드 스토리는 어떻고 왜 이 작품이 비싼지를 줄줄 꿰고 읊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좋겠습니다만, 그 많은 것을 익혀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을뿐더러, 어차피 전공자나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 그림은 의외로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전혀 관심도 없는 이들도 많아서 그리 지적 허영심을 과시하기에 수지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술의 세계가 그렇듯이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안목이 있어야 말이 통하거든요. 실컷 그림에 대하여 지식의 자랑질을 해봤자 그림 한점 사기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부에 관한 것은 누구나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 이미 억만장자라도 끝없는 욕심에 더 관심을 갖는 장르지요. 부는 그림도 그저 가치로 평가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림을 확 사버리겠지요. 이쪽은 한편으로는 전공이나 전문가에 가깝고,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기에, 그래서 뭔가 더 알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습니다. 아마 그림도 전공이나 전문가였다면 그리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네요. 취미가 직업이 되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지거든요.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 대한 장르는 그냥 좋아하는 것이기에 마음이 편히 읽는 것입니다.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애초에 절대 손을 대지 않을 장르지요. 그림에 관한 책을 보고 그 그림을 사겠다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욕망이나, 그림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다행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그림에 대한 책은 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일부러 기억하려고 들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냥 그 그림을 보고 있는 순간의 기쁨에 그 설명과 스토리까지 곁들여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 그 순간 그냥 맛있게 그림에 관한 책을 먹으면 그만이어서 그랬을까요?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그것을 억지로 기억하려는 의지도 없을뿐더러, 그림에 관한 책의 저자나, 그림의 원작자보다 뭔가 더 아는 체를 할 이유도 없고, 그 흔하게 언급되고 있는 특정 화파나 장르도 나누어서 선호조차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림에 관한 책의 내용은 다른 책들보다 특히 더 기억을 못 하고 까먹기 일수입니다. 그래서 책에서 봤던 그림이 현실에서 나타나도 긴가 민가 하고, 다른 책에서 똑같은 그림을 다시 보아도 또다시 즐겁습니다. 물론 기억이 난다면 TV에서 봤던 연예인을 현실에서 만난 것보다 더 반가울 듯합니다. 그러나 흔히 연예인에게 그렇듯이 잘해야 싸인 하나를 받거나 사진 한 장을 같이 찍을 뿐 그 그림을 사겠다고 덤벼들거나 너무 좋아서 그림의 작가를 숭상하는 정도는 아니지요. 사생팬은 되기 글렀고 딱 거기까지 이지요. 


이내 까먹고 말 것이니 이번 책에서는 굳이 이야기를 하나 남기자면 '수잔 발라동'이라는 화가가 눈에 특히 들어옵니다. 그림보다는 그녀의 스토리에 관한 것인데요. 그녀는 화가로서가 아니라 먼저 수많은 화가들의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부지발에서의 춤'에서 미소를 띠고 춤을 추고 있는 빨간 볼의 소녀가 바로 발라동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툴루즈 로트레크'의 '숙취'를 비롯하여 그 당시 여러 모델이 거의 발라동이었답니다. 그래서 발라동은 "나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그림 속 거의 모든 인물이 나의 신체를 빌렸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지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심지어는 소년의 모습으로도 여기저기에 발라동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네요. '발라동'찾기 라도 한번 해 봐야 할 듯합니다. 그랬던 발라동은 모델로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여성으로서도 주체성 있는 화가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부지발에서의 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마저도 그림을 그려본 일은 고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림은 그리기보다는 보기만 하거나 그 대신 이렇게 책으로 만나는 정도가 되었지요. 그래도 그림에 대한 안목이라는 것과, 색감에 관한 것, 그림에서 느껴지는 울림들은 일상의 환경 속에서도 많이 묻어나는 현실적인 영역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그림에 관한 책을 자꾸 읽는 이유가 될 것 같네요. 무엇보다도 기쁨과 더불어 마음에 평안함을 준다는 점에서 그림에 관한 책은 기쁨과 더불어 힐링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을 직접 그려보고도 싶지만 여유가 허락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좋은 그림은 너무 희귀하고 비싸서 직접 걸어둘 수 없어 책으로 작품을 만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림은 전공자나 전문가나 혹은 부의 소유물이나, 과시하기 위하여 만나는 것보다 이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만난다는 것이 더 즐겁고 기쁨이 된다는 것은 역시 아이러니이겠습니다. 



널 위한 - 문화예술 (미술관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가장 친절한 예술 가이드)

한줄 서평 : 날 위한 문화예술 (2022.04)

내맘 $점 : $$$

오대우, 이지현, 이정우 지음 / 웨일북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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