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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Apr 23. 2022

똥물에서 희망으로

날마다 날씨

초등학교 때 교장선생님께서는 훈화 말씀을 하시며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자살을 하더라도 한강에서 하지 마라. 한강은 똥물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찌 훈화도 아닌 망발을 했다고 사회의 지탄을 받을 일이지만 그때는 그런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던 시절이었지요. 초등생에게 자살을 이야기하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한강이 자살하기에도 부적합한 똥물이라는 사실은 더욱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그 이후로도 그 이야기가 계속 기억에 남아서 '한강=똥물' 이라니 공식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오늘은 온도가 이제 초봄인데 초여름만큼 올라가서 인지 한강에서 벌써 수상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보이네요. 물줄기를 가르는 모습이 시원해 보이면서도 문득 "아 저 똥물에서..."라는 탄식과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훈화 말씀만 기억나는 교장선생님의 가르침이 잊히지도 않고 떠오릅니다.


다행히 한강은 무척이나 맑아져서 그때보다 자살하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하는 사람은 줄고, 더 이상 똥물이 아니라 쾌적하기 그지없는 공간이 되었네요.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 속에 이제 그만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떠내려 보내고 한강이 이제 삶의 희망을 주는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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