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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Apr 29. 2022

잠든 때만 내리는 비

날마다 날씨

비가 딱 자정이 지나 잠든 시각부터 내리기 시작해 아침 눈 뜨기 직전에 그친 듯합니다. 그래서 아침에는 비를 볼 수 없었지요. 다만 깨끗해진 공기와 비에 젖은 거리를 통해 비가 밤 사이 깨끗이 시키지도 않은 청소를 하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잠든 때만 내리는 비라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얼굴도 마주치지 못하고 가버린 뒷모습에 여운이 느껴지기도 하는 아침이었네요.


실제로도 우리가 잠들었을 알게 모르게 막상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요. 아침을 이렇게 빗줄기를 피해 우산도 피지 않고 환하게 맞을 수 있는 것은  어두운 밤 사이 누군가 잠을 안 자고 비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잠든 때만 내리는 비처럼 말이죠.


아침에 비가 내리면 우산을 써야 하는 것처럼 잠든 밤 사이가 아니라 낮에 마주쳐 버리면 번거로운 것이 있습니다. 고장 난 곳을 고치거나 미리 정비해 두는 것도 그렇고, 사용해야 할 곳을 미리 청소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지요. 어머니는 아무도 아직 눈을 뜨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곤 했었지요. 요즈는 아무리 급식이 대신한다고는 하지만 그 준비도 모두가 눈뜨기 전 이른 아침부터 이루어지기는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것 같은데 작동이 잘 이루어지고 깨끗이 청소가 되어있고 미리 따뜻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다 마주치는 번거로움을 피해 잠든 사이 이루어진 일들이지요.


다만 그 사실은 화초만이 알고 있었나 보네요. 오늘따라 이파리들이 피부과에라도 다녀온 양, 아니면 마스크팩이라도 한양 깨끗하고 윤기 있게 빛나며 생기가 돌고 있었으니까요. 그들이 두 팔 벌려 환영했었다니 다행이지요. 잠들어서 만나지 못한 비였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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