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e Apr 30. 2022

신령한 아침의 세계

날마다 날씨

토요일인데도 아침 일찍 눈을 떴습니다. 원인은 배송 소리 때문이었는데 새벽 배송도 아닌 것이 새벽에 배송이 온 것 같더라고요. 잠귀가 밝은 건지, 벽이 얇은 건지, 문 밖에 물건 두는 소리가 방안에서도 자다가 천리귀로 다 다 들리지 뭐예요.


이왕지사 귀가 눈을 뜬 김에 눈도 몸도 깨워 봅니다. 일어난 김에 물건도 들여놓고 뭘 해야 가장 좋을까 하다가 계획에도 없었던 아침 산책을 나가기로 하지요. 아침이니 서늘할 것도 같아 이제 봄에는 다시 입지 않을 것 같았던 따뜻한 옷으로 나름 무장을 합니다. 날은 조금 흐렸지만 역시 이른 아침 봄날이라 상쾌하기 그지없습니다. 거리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세상이 멸망하였는데 나만 홀로 살아남았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합니다.


그러나 이른 아침이라 해도 세상이 멸망해서 홀로 살았다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아침 운동에 매진하고 있을 어르신이 가끔 눈에 띄겠지'라는 생각과 달리 낯선 풍경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하였으니까요. 저 멀리 한편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무를 돌고 있습니다. 마치 탑돌이를 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한데 다만 그 가운데 나무가 탑을 대신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만히 보니 위에 입은 옷도 같은 듯하고 한 손은 들고 춤을 추듯 나무를 돌고 있지요. 원시 토템 부족의 주술 의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냥 건강을 위한 모임일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가니 이제 부채춤을 추는 선녀들이 보입니다. 순간 웃음을 뿜을 뻔했지요. 나무 돌이도 의외였는데 이 아침에 선녀 옷을 입고 부채춤이라니요. 어떤 행사를 위한 연습일까요? 아니면 여기도 다른 토템 부족의 하늘에 올리는 기원제일까요? 선녀 옷을 입은 옛날 부채춤이었지만 배경은 요즘 음악도 같고 그렇다고 가요도 아니고 뭔가 뮤직 비디오를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나선 아침의 세계는 의외로 신령한 모습들이 눈에 띄어서 놀랐지요. 하기야 이 아침 산책도 신령한 이른 아침의 기운을 느끼며 날씨를 보러 나선 것이니 매한가지 신령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신령한 것을 찾았냐고요? 네 아침의 세계 덕분에 좀 더 글을 더 써 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령한 소재들이 많이 생각났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잠든 때만 내리는 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