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등에 문신을 하기 전까지는 깨끗한 등판이었다
책은 왜 항상 등을 돌리고 있을까요?
책을 책장에 똑바로 잘 꽂아 놓았을 때, 우리가 보고 있는 부분은 책의 등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책은 항상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지요.
무엇이 책을 등을 돌리게 하였을까요? 아니면 왜 하필이면 우리가 보고 있는 부분을 굳이 책등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책등이란 표현은 책의 그 부분이 둥글게 마치 등처럼 보여 자연스럽게 붙여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책의 다른 부분이 부르기에 따라 명칭이 다 다른 것과 달리, 이 책등은 그 부분을 등이라고 부르는데 크게 이견이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책등의 반대편 부분은 뭐라고 부를까요? 등의 반대편에 있으니 당연히 책배라고 해야겠지요. 다른 명칭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배가 등과 달리 하얗게 속살을 들어 내놓고 있는 것이 정말 배처럼 보였습니다. 날렵한 복근을 자랑하는 튀어나오지 않은 배입니다.
그밖에 책은 책앞표지, 책뒷표지, 책머리, 책발 등 각 부분의 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이 육면체를 띄고 있으므로 일단 외부의 명칭도 여섯 개가 되겠네요. 그런데 등, 배, 머리, 발이었으면 책의 표지는 이제 팔이 되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아주 정중하게도 '표지'라고 부릅니다. 책앞표지, 책뒷표지라고 부르는 부분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책은 머리와 발, 등과 배가 있는데 팔이 없는 불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껏 그렇게 시도된 적은 없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책앞표지는 책오른팔로, 책뒷표지는 책왼팔로 부르고 싶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책의 구성이 완성되기 때문이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책이 처음부터 항상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책을 책장에 꽂을 때, 원래는 우리가 책배를 볼 수 있게 꽂았다고 하지요.
책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그렇게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책등에는 당연히 그렇듯이 책의 제목과, 저자와, 그림과 같은 문신이 그려져 있을 것 같지만, 초기에 만든 책에는 책등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습니다. 등에 용문신을 하기 전 아주 깨끗하고 하얀 등판이었던 것이죠.
오히려 책의 제목을 표시하려면 책의 등이 아닌 책의 배면에 책의 이름을 표시하곤 하였습니다. 명찰을 등이 아닌 배 쪽 가슴에 다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래서 책은 배가 보이는 쪽으로 꽂아야 했던 것이지요.
또한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책에도 당연히 제목이 있어서, 책배에 명찰을 달아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또한 당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책의 등뿐만 아니라, 배면과 표지, 양팔에도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책들이 많았으며, 책의 제목도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무명의 책이 많아서, 책이 시작하는 첫 구절 같은 것을 적어 놓은 것이 책 제목이 되었다고 하네요.
얼핏 이름표를 달지 않은 무명의 책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책이 지금과 같이 기성복이나, 패스트패션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장식이 달린 비단옷이나 장정본 옷을 입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 이름표는 드레스에 어울리지 않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책은 원래 머리와 발과, 등과 배와 양팔이 훤히 노출된 나체의 모습에서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겨우 이름표 하나만 배에 조그맣게 달고 있다가, 점차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귀한 대접을 받아가며 귀족 생활을 하다가, 현대에 와서야 기성복이나 패스트패션을 입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의 오른팔을 들어 책의 배 속을 마음을 옅어 봅니다.
책의 배 속 마음은 수백 장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래서 책의 배속에는 그렇게 깊고 넓은 지혜가 가득 차 있나 봅니다.
결국 책이 저렇게 항상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는 마음속을 쉽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나 보네요.
책에 팔을 뻗어 악수하고 책의 속마음을 얻은 사람만이 불멸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