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도입한 열차는 최신식 KTX 같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완행 비둘기호 같은 옛 나무 책장에 비하면, 깨끗하고 날렵하게 보이는 것이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같았습니다.
실제 모습은 진짜 나무가 아니라 합판을 사용하여 그냥 칸만 나누어 놓은 가장 기본형 책장에 불과했지만, 처음으로 책이 아닌 책장이 늘어난 역사적 순간이었지요.
여전히 책 복은 계속되어 책은 넘쳐났기 때문에 책의 수송 업무를 옛 나무 책장과 분담하는 것이 절실한 때였습니다.
새 책장
옛 나무 책장에는 그야말로 책 들어갈 자리도 없어서 오직 책만으로 꽉꽉 채워졌다면, 새 책장이 생기면서 책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무려 두배로 늘었고, 처음으로 책장에 남는 공간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드디어 거기에는 책 대신 장식품 같은 것을 두었고, 책장 안에도 책만이 아닌 쾌적한 공간을남겨두었지요. 책 수송에 있어서 특별칸 혹은 일등석 같은 것이 도입된 것이었습니다.
새 책장이 생겼지만 옛 나무 책장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많은 책들을 수송을 감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옛 나무 책장은 점차 집안의 변두리에 놓여서, 이제 책장 지붕 위에는 다른 무거운 가구나 짐들이 쌓여 있기도 했고, 책장에는 못을 박아 물건을 걸어 놓기도 했었습니다. 마치 승객만 태운 열차에서 화물도 같이 실은 열차로 전락한 듯 보였지요. 여전히 책이라는 중요한 승객이 가득 타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이 옛 나무 책장은 안타깝게도 서재에 편하게 놓여서 우아하게 책들을 맞이하는 호사는 누리지 못할 듯 보였습니다. 새 책장처럼 장식품 놓인 특별칸과 일등석도 영영 만들지 못할 듯했지요. 한때 미닫이 유리문까지 있었던 책장으로서는 참 아쉬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이사를 하면서 이 책장과는 이제 정말 영영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낡기도 했고 무겁기도 했고 새 집이나 새 책과는 어울리지 않게 된 것이지요. 이 나무 책장과 헤어진 때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그 이별은 시원 섭섭했었던 것 같네요.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너무 책이 많아 이 책장에 어렵게 책을 꽂아 넣었던 힘든 기억 때문에 더 빨리 이 옛 나무 책장과 헤어지고 싶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해온 책장이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도 않았었지요.
나무는 제 몸을 온전히 내어주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쉼을 얻게 되지요. 그리고 다시 나무로 태어납니다. 이 옛 나무 책장도 언젠가는 다시 나무로 태어나, 이번에는 안락한 서재의 고급 책장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네요.
이 옛 나무 책장은 비록 그렇게 떠났지만, 이 옛 나무 책장만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어릴적 부터 바로 책이라는 물건과의 첫 만남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책을 기억하기 전에 먼저 책장이 기억날 정도로 이 옛 나무 책장과는 애증의 관계를 겪었지요.
그것은 너무 많은 책과, 그것을 수용하기 힘든 비좁은 책장이라는 공간, 그렇기 때문에 책을 책장에 어떻게 밀어 넣을까 고민하며 씨름했던 기억입니다. 한때 책을 강냉이 바꾸어 먹기도 했던 그 씨름이지요.
물론 그 옛 나무 책장에 책을 어떻게 밀어 넣을까 고민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사이 만나는 책들은은연중 읽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이제 흙으로 돌아 간 옛 나무 책장처럼, 자양분이 되어 저 자신이란 또 다른 나무를 키워낸 일일 것입니다.
옛 나무 책장의 기억은 이제 여기에 글을 쓰므로 보내 주어야 할 듯 하네요. 저 편에서는 잃었던 미닫이 유리문도 다시 찾았기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