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바꿔먹던 강냉이

나무 책장

by Emile

지난 편에서 계속


책장이라는 열차 안이 좁아터지자 맨 먼저 생각한 방법은 책장의 문을 떼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책장 안을 아늑하고 고습스럽게 지켜주던 미닫이 문이 책장으로부터 이탈하자 좀 볼 품 없어 보이긴 했지만 책들에게는 좀 숨통이 트이는 듯했습니다. 창문이 놓였던 창틀의 자리에 좀 더 책을 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 이후로 그 책장의 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을 가득 실은 만원 열차에서 한번 손을 놓치면 다시 찾기 힘든 시절이었지요. 책장의 문은 그렇게 사라져 갔지만 뭐 한편으로는 책장이 한창 문을 달지 않고 나오던 때이기도 했을 것이라서 오히려 모던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늘어나는 책은 창문을 떼어낸 자리에 앉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생각해 낸 또 다른 방법은 그럼 열차의 "승객을 줄이자"였지요. 책이 아직 귀하게 취급받던 때라 웬만하면 책을 잘 버리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책을 이고 살 수는 없으니 나머지 책이 살기 위해서라도 일부 책은 열차에서 내리게 하는 것이 마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래전에 흥미를 전혀 가지지 못했고, 테이프 겉표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까지 했던 부상당한 책 들을 열차에서 먼저 내리게 하기로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아버지의 공학책이어서 함부로 내리게 하기 어려웠지요. 게다가 오랜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력으로 말미암아 저항도 거셌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기억하기로 절대로 책을 버리지 아니하던 시절, 일부의 백전노장들은 우수수 열차에서 내려야 하는 수모를 맞이하였습니다. 후배 책들을 위하여 스스로 자원하여 몸을 던진 장군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버지 모르게 쥐도 새도 모르게 책장을 등져야 했지요.


그렇게 책장은 가까스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집에 돈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책은 항상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학자도 아닌데 이상하게 쓸데없는 책만 늘어나서 그야말로 책장은 계속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요.


노장들의 희생에도 책장을 지켜내지 못하자 드디어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초유의 일이라 그동안 비밀에 부처 왔던 사실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제야 정보를 공개할 수 있게 된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책을 엿 바꾸어 먹기로 한 것입니다. 물건을 엿으로 바꾸어 먹은 것은 사실 아주 어릴 적의 일이었고, 그때는 정확히 말하면 책을 한 묶음 주면 옥수구 강냉이나 쌀튀밥으로 바꾸어 주었지요. 엿장수처럼 리어카를 끌고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분이 가끔 동네에 오곤 했는데, 그때만 해도 책은 폐지로 쓰이기보다는 헌책방으로 향하는지 인기가 좋았습니다.

강냉이.jpg 옥수수 강냉이

그래서 책 한 묶음과 강냉이 한 자루씩을 여러 번 바꾸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과 바꿔 먹는 강냉이는 특히 맛있었습니다. 이 작전은 책장의 책도 덜고, 강냉이도 먹고, 꿩 먹고 알 먹고, 일석이조였지요. 책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열차에서 노병들을 그냥 내리게 하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서 당장 필요 없는 책들을 강냉이와 바꾸어 먹었기 때문에 책이 확 줄지는 않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책장은 화수분 같아서 강냉이와 그렇게 바꾸어 먹었는데도 여전히 자꾸 더 생겨나더라고요.


덕분에 책장은 다시 어느 정도 숨통을 틔게 됩니다. 그때는 책장도 너무 꽉 들어차고, 집도 좁아서 책을 쌓아 놓는 것도 일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항변해 봅니다. 그러다 책장의 책도 휜 선반이 견딜 만큼 줄고, 더 이상 책도 강냉이와 바꾸어 주지도 않게 되자, 이제 더 이상 책과 바꿔 먹는 강냉이 맛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돈 주고 강냉이를 사 먹어 보았지만 책과 바꿔 먹는 강냉이만큼은 맛있지 않더라고요.

책과 바꿔서 감칠맛 나게 먹는 강냉이야 말로 비싼 책 값을 하는지, 정말 맛있는 먹물 맛 나는 강냉이라 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나무 책장은 여전히 책들과 함께 다시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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