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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날씨

날마다 날씨

by Emile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날씨는 머리나 손이 아니라 실은 발로 쓰고 있었습니다.

앉아서 열심히 생각을 한다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손을 열심히 놀린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두발로 걷고 있을 대 훨씬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날씨는 밖에 나가서 햇볕을 쐬고, 바람을 맞고, 온도를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어야 진짜 느낌이 나거든요.

그런데 오늘 같이 추운 날에는 머리는 찬 공기가 싫다고 하고, 손은 손이 시리다며 나가기를 거부하지요. 그래서 겨우 발의 힘을 빌려 나가서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어붙은 머리와 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손이 아니라, 주로 생각은 걸으면서 발이 합니다. 머리는 그렇게 발이 애써 떠올린 좋은 생각들을 나중에 온전히 기억해내지도 못해 매번 애를 먹고, 손은 또 머리가 그렇게 기억해둔 생각을 옮기고자 할 때마다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며 손 마음대로 고쳐 쓰지요.

인간이 직립보행을 통해 머리가 발달했다는 설은 사실일 듯싶습니다. 발이 머리를 생각하게 하고, 손에게는 쓸 수 있는 자유를 주었으니까요.


어색하고 설익은 연기를 발연기를 하지요. 글이 가끔 어색하고 설익은 것은 다 발이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발은 머리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손은 시키는 대로 쓰지 않아서라지만, 대부분 발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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