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 금지령 시절을 회상하며
믹스커피 혁명 기념일
에스프레소 애호가인 마리오 에스프레소 총리와 아메리카노 애호가인 존 아메리카노 대통령은 유사 테러 단체가 은신처에서 대량으로 믹스커피를 숨겨 놓고 태연히 마시고 있으며, 마약을 믹스커피와 섞어 유통할 경우 적발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쟁터에도 믹스커피가 쉽게 보급되고 있어 군인들의 살상률을 높인다는 이유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지금 까지 생산된 제품을 제외한 새로운 믹스커피의 생산, 소비, 유통을 전면 금지하며, 생산 시설은 폐쇄하고 이를 어길 시 강력한 제재를 기하기로 결의합니다.
문제는 믹스커피의 유력한 생산국이자 최대 소비국인 한국이 이를 순순히 따를 것이냐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정치권에서는 이를 순순히 수락한다는 발표를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국제 질서에 동조하고, 믹스커피에서 원두커피로의 '국민의 커피 소비의 질 향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와 최대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카페 업자의 관계를 고려한 조치였습니다.
왜냐하면 믹스 커피를 금지할 경우 포화에 달한 커피 시장에서 원두커피의 소비가 늘고, 커피 프랜차이즈 대기업에 이익을 가져오며, 수많이 늘어난 카페 업자의 표까지 얻을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믹스커피 금지령 발표와 동시에 믹스커피의 가격이 폭등 하기 시작합니다. 싸구려 커피로 여겨졌던 믹스커피에 고가의 믹스커피 한정판이 등장했고, 기존에 생산된 믹스커피를 영구 보존 처리하여 언제든 타 먹을 수 있는 유통기한 없는 스페셜 믹스커피 에디션이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다들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믹스 커피 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원두커피의 값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믹스 커피의 값이 뛰어오르게 됩니다.
한편 믹스커피를 집에서 제조하는 방법도 생겨났습니다. 커피 원두를 갈아서, 설탕과 프림을 섞는 식이었습니다. 예전 방식의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방식을 연상케 하는 수제 믹스 커피였지요. 프림도 믹스커피에 쓰인다는 이유 만으로 믹스커피와 함께 생산, 공급, 유통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분유를 프림 대신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침내 믹스 커피를 금지령에 대한 대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카페인 부족을 겪은 국민들이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원두커피를 먹으면 될 줄 여겼으나, 제때 쉽게 커피를 공급받지 못하자 여러 가지 불상사가 생겨나기에 이릅니다. 여기에는 믹스 커피에 들어있던 설탕도 영향을 미친것 같았는데, 당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화를 내고 불친절하게 굴었습니다.
과격한 시위대는 원두커피를 불태우고, 커피 안마시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지만 카페인 참기를 견디지 못한 몇몇 시위대들은 다시 원두커피의 불길로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뒤늦게 원두커피와 설탕 일정량을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카페인과 당을 잃은 국민들의 분노는 원두커피로는 잡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믹스 커피 금지령이 시행된 지 결국 몇 개월 만에 정부는 결국 한국에 한하여 믹스 커피를 허용해 달라고 마리오 에스프레소 총리와 존 아메리카노 대통령에게 특사를 파견하기에 이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믹스 커피 금지령 이후 산업의 생산성이 급격이 하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산업뿐 아니라, 발명과, 특허, 문학, 작곡 등 창작의 영역에서도 급격한 질적 하락을 보였습니다. 작가들은 글을 쓰지 못해 졸고 있었고, 이렇다 할 신곡이 없어 가수들은 파산하였습니다. 기업들은 특별 성명을 내고 정부에 믹스 커피 금지령을 철회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기 이릅니다.
믹스 커피 금지령으로 카페인과 당이 떨어진 국민은 극도로 예민해지거나 손을 놓고 있게 되자 정부는 드디어 항복 선언을 합니다. 국제 사회도 한국의 특별성을 인정하여 국외 반출을 제외한 한국 내에서의 믹스커피를 허용하는 특별 결의를 채택합니다. 이를 역사는 믹스 커피 혁명이라 기록하지요.
믹스커피 마지막 한 방울의 달콤함을 느끼며 그때의 믹스커피 금지령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