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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Sep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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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 book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어제 한 책 축제에서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는 강원국 작가님을 보게 되었더니 이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되지 않아 강연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강연의 내용은 책에서 읽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지요. 바로 '대통령의 글쓰기'와 '회장님의 글쓰기'입니다.

책축제 / 강원국 작가와의 만남

먼저 출간된 것은 '회장님의 글쓰기'였고, 나중에 나온 것이 '대통령의 글쓰기'였지만 저는 그 반대로 읽었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먼저 읽고 우연히 눈에 띈 '회장님의 글쓰기'도 읽게 된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은 후의 느낌이 괜찮았나 봅니다.


두 책의 내용은 '대통령'과 '회장님'의 무게만큼 다르면서도 '글쓰기'라는 공통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회장님의 글쓰기'는 그가 뭔가 마지못해서 했던 일이었다면 '대통령의 글쓰기'는 보다 '회장님의 글쓰기' 시절의 경험을 살려 소명을 가지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미 회장과 대통령의 글을 쓰는 '글쓰기'의 최고 반열에 오른 작가인데도 글을 쓰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두 책을 굳이 비교하라고 하면 '대통령의 글쓰기'가 훨씬 깊은 내면의 고민을 더 나태내고 있지요.

회장님의 글쓰기 / 강원국

우리에게 차이점은 대통령을 위해 글을 쓸 기회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회장님의 글 쓰기'가 더 공감이 갈 수 있는 점입니다. 부재로 '상사의 마음을 사로잡는 90가지 계책'이라고 표지에 노란 밑줄까지 그어 놓은 것을 보면 모든 직장인은 '회장', 적어도 '상사'를 위한 글쓰기로 날마다 씨름하고 있으니까요.


'대통령을 위한 글쓰기' 뿐만 아니라 '회장님 또는 상사를 위한 글쓰기'는 언제나 정체성의 혼란을 갖게 하는 문제입니다. 작가가 겪은 것도 그 '혼란'과 '갈등'이 가장 중심의 축이 아니었나 생각이 드네요. 그것은 글을 쓰고 기획한 이와, 그것을 말하거나 읽는 가 전혀 상이하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문제일 수밖에 없지요.


대통령, 회장님 또는 상사를 대신해서 문서를 작성하는 모든 것은 더하고 덜한 차이만 있지 그 자체가 직장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통령, 회장님 또는 상사의 머릿속에 빙의되어 들어가 봐야 하는데, 그것이 텔레파시처럼 "파바박"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알길 없는 사람 속을 재주껏 알아서 글로 까지 표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그 대통령, 회장님 또는 상사의 머릿속에 빙의되는 무속의 표현 대신 '철학을 공유한다'라는 멋진 표현을 작가라면 쓰게 됩니다. 글을 쓰는 자신이 대통령, 회장님, 또는 상사가 되어, 그의 입장과 그의 생각, 즉 철학을 가지고 글을 대신 써 내려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대통령, 회장님, 또는 상사의 머릿속에 정말로 빙의해서 들어가 본 결과는 겨우 가끔 대신 글을 쓸 만한 작은 '힌트' 같은 있기만 할 뿐 생각은 고사하고 '철학' 같은 것은 도무지 없을 때가 다반사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머릿속이 텅 비어있고 생각 자체라는 게 없는데 "왜 내 생각을  맞추지 못하냐"라고 나무르는 듯한 상사에 당황하기 일수지요.


그래서 대통령, 회장님, 또는 상사는 글 쓰는 대필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고, 생각과 철학도 없어서 글을 대신 써줄 자가 필요한 것이지요. 사실은 직접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자신이 없거나 생각과 철학이 없는 것이 들통나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오랜 기간 책을 읽어야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아마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쪽이었다면, 애초 대통령, 회장님, 또는 상사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는 작가가 써 준 대본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배우 같다는 생각도 들지요.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와 배우의 공통점은 직접 대본을 쓰지는 않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을 마치 자기가 쓴 대본인양 물 흐르듯 연기를 잘한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배우에게 작가의 자질을 기대했던 제가 무리였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이라도 크게 되려면 작가가 아니라 배우가 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요.


배우가 작가의 의도대로 찰떡같이 연기를 잘 해낼 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도 글을 써준 이의 의도대로 마치 자기가 글을 쓴 것처럼 콩떡같이 연설하거나, 읽어 내려가거나, 문서를 이해하고 싸인을 할 때, 글을 써서 올린이는 비로소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더 이상 작가나 글 쓴이의 작품이 아니라, 그것을 연기한 배우,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의 것이 되더라도 아무런 이의 없이 "네거 해"라고 물러서는 것이지요.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의 글쓰기처럼 남의 글쓰기가 아닌 나의 글쓰기는 비로소 퇴직 후에나 가능합니다.

이제는 내 몸을 내 맘대로 쓸 수 있게 된 것이고 내 생각을 내 맘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다만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 같은 유명 배우 없이 자신이 직접 배우까지 섭외하거나 겸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부담입니다.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 같은 유명 배우가 나오지 않으면 나의 작품을 잘 읽어주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므로 글을 쓰는 작가의 운명은 항상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와 같은 남을 위한 글쓰기와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 사이의 끝없는 방황이자 갈등이지요.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의 생각에 빙의하여 그들의 철학이 자신의 철학이 되어 나를 잃고 잘 사느냐와, 나의 생각을 갖고 나의 철학대로 말하면서, 보다 덜하게 사느냐의 갈등일 수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본 강원국 작가의 모습은 대통령과 회장님의 글쓰기를 할 때 보다 훨씬 평온해 보였습니다.

이제는 그가 대통령, 회장, 또는 상사의 글쓰기가 아닌 자기 자신의 글쓰기를 마음껏 하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저 만의 착각일까요? 이제는 대통령, 회장님의 글쓰기가 아닌 그 자신만의 글을 기대해 보는 것이지요.


ps : 요즈음 대통령의 구설로 말이 많지요. 가타부타를 떠나서 지금쯤 대통령의 글쓰기를 하는 담당자는 얼마나 힘들까요?



대통령의 글 쓰기

한줄 서평 : 대통령 생각에 빙의는 너무 힘들어

내맘 $점 : $$$$

강원국 저 / 메디치 미디어 (2017. 05)


회장님의 글 쓰기

한줄 서평 : 회장님 생각에  빙의는 너무 맘에 안들어

내맘 $점 : $$$

강원국 저 / 메디치 미디어 (201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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