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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Oct 04. 2022

두괄식 사회에서 미괄식으로 살아가기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괄식과 미괄식이 있다고 배운 기억이 납니다.

알다시피 두괄식은 문장의 첫머리에 글의 중심 내용이 오는 구성 방식인 반면,

미괄식은 문장의 끝부분에 글의 중심 내용이 오는 방식이지요.


두 문장 구성의 방식에 우위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문장 구성에 따라 두괄식을 쓸 때와 미괄식을 쓸 때 더 효과적인 방식을 선택하면 되는 것일 뿐이었지요.


그런데 사회가 빠르게 흘러가다 보니 모든 문장 구성은 두괄식으로 집중되는 듯합니다.

급기야는 두괄식은 좋은 문장 구성이고, 미괄식은 그렇지 않은 문장 구성이라고 까지 하는 이분법까지 등장하게 되었지요.


드라마에서도 이런 경향이 잘 드러납니다.

첫회에 두괄식으로 강렬한 인상을 때려 주어야 시청률이 어느 정도 확보됩니다.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 했다가는 채널을 돌리고 혹평에 시달리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기대했는데 회차가 거듭할수록 김이 빠지는 드라마들도 많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마지막 회에서는 바닥인 결말입니다.


취업 필수 성공 공식은 두괄식입니다.

자기소개서의 비법은 두괄식에 있다고 하지요.

면접관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을 한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면접에 실패하는 경우가 높아진 듯합니다.

시간이 지나고서는 "속았다"라고 하는 것이지요.


소셜 네트워크는 두괄식의 대표적인 주자입니다.

트위터는 140자로 글자 수를 한정하여 두괄식으로만 써야 합니다. 미괄식으로 쓰다가는 결론을 못 쓸 수도 있거든요. 심지어 인스타그램에서도 맨 앞 첫 장의 사진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틱톡은 더하지요. 몇 초의 두괄식 영상에 순간의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유튜브는 두괄식이 아니면 접속자를 묶어 둘 수 없지요.


요즈음은 사랑도 두괄식입니다. 일단 사랑부터 시작하고 알아가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지요. 그러나 상대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시작하는 두괄식 사랑은 미괄식 상처만 남기지요. 사랑을 위해서는 참 많은 것을 알아가야 했는데 요즈음은 그럴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안 좋은 결과가 많이 보이는 듯하네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욕이 앞서면서 첫머리에서 잔뜩 풀어놓은 것 같은데, 나중에 수습이 되지 않는 글들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처음에 이야기하려는 것들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있는 경우도 많지요. 갑자기 글이 끝부분 즈음에 뚝 끝나버리는 글을 읽으면 "이게 뭐야?"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두괄식 글쓰기는 위의 미디어의 영향처럼, 긴 글을 읽는 능력의 현저한 퇴화에서 기인했다는 생각입니다. 길이 길어질 경우 끝까지 끌고 나갈 인내와 능력이 부족해진 것이지요. 저라고 예외가 아니라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긴 글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듯 하지요.

결국은 책 한 권을 다 읽지 못하는 인류가 출현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때 되면 긴 문장을 읽고 쓸 수 있는 것이 AI(인공지능)가 인정하는 능력이 되겠네요.


그런데 두괄식이 아직 적용되지 않은 세계가 있습니다.

다만 도박의 세계에서는 이 두괄식 삶을 경계하는 전설의 문구가 있으니 바로,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라는 말입니다.

도박에서는 두괄식으로 따는 넘이 아니라 미괄식으로 따는 넘이 곧 승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두괄식에는 일부러 돈을 일어 주어 도박에 끌어들이고 미괄식으로 홀라당 다 털어 가지요.


어릴 적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운동장 열 바퀴를 뛰는 1000미터 달리기를 하면 항상 두괄식으로 달렸었습니다. 그래서 세 바퀴 정도까지는 항상 일등으로 달렸지요.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고 점점 뒤처져서 결승점에 들어올 때는 겨우 중간이나 갔으려나요.


두괄식으로 무리해서 뛰면 지치게 마련입니다. 두괄식은 1000미터의 인생에서 마치 100미터만 살 것처럼 100미터로 전력 질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잘해야 세 바퀴 정도까지는 일등을 할 수 있겠지만 점차 뒤처져서 나중에는 겨우 중간도 하기 힘들다니까요.


운세의 세계에서도 두괄식 운세는 별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운세를 볼 때 "두괄식 삶이 복 받은 것이냐? 미괄식 삶이 복 받은 삶이냐?"라고 물으면 열이면 열 다 미괄식 삶이 복 받은 것이라고 하지요. 초년에는 좀 고생을 하더라도 여유 있는 말년을 맞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지, 초년에는 부유했는데 늙어서 다 읽고 고생하는 것을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드라마도, 직장도, 소셜 네트워크도, 사랑도, 글도 두괄식을 원하는 사회이지만, 어디까지나 두괄식과 미괄식은 삶의 구성 방식에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 하는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모두 다 두괄식만을 원하는 세상에서는 오히려 미괄식 삶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미괄식에는 반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행하는 말로는 역주행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요. 두괄식은 산 꼭대기에서 이제 내려올 일만 남은 것이지만, 미괄식은 바닥이라도 이제 산 꼭대기에 오를 일만 남은 것이지요. 스포츠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천천히 힘을 아끼고 있다가 마지막 바뀌에 역전하는 순간입니다.


글쓰기에 고민이 많은 분들이 있지만, 글쓰기도 두괄식 단기 승부는 아닌 듯 하지요.

왜 글을 인생의 초반에 두괄식이 아닌, 그래도 좀 많이 살아보고 아니면 좀 많이 읽어 보고, 인생의 초중반이 지나 미괄식으로 쓰는지는, 이제 두괄식이 아닌, 미괄식 삶을 살아보아야 알 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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