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가축과 야생
가축시험의 합격률은 9.4%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명저 '총, 균, 쇠'에 따르면, 148종에 달하는 전 세계의 대형 야생 초식성 육서 포유류(가축화 후보종) 중 겨우 14종만이 인간과 같이 살 수 있는 인간반려 가축시험을 통과하여 오늘날 가축화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나머지 134종은 시험에 탈락한 셈이었는데 가축시험 합격률은 9.4%에 불과했던 것이었지요. 이 정도면 꽤 난이도 높은 시험이었습니다. 가축 동물에게는 마땅히 가축으로서의 자격증이라도 주어야 할 이유이지요. 그 수치의 합격의 이유와 영광의 불합격의 사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가축시험의 난이도는 '효율'
그것은 사자 같은 육식동물처럼 먹이고 키우는데 효율이 부족하거나, 코끼리처럼 너무 느리게 성장하여 역시 효율이 떨어지거나, 치타처럼 감금 상태에서 번식이 어렵거나, 회색곰처럼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골치 아픈 성격이거나, 가젤처럼 신경이 예민해서 가둬놓으면 날뛰거나 죽어버리는 등이 탈락의 이유였습니다.
합격의 비결은 복종
반면에 가축화가 용이한 동물들은 무리를 이루어 살고, 무리 구성원들 사이에 우열 위계가 잘 발달되어 있는 말이나 양, 염소, 소와, 개의 조상인 이리였습니다. 이들은 목축에 적합하였고 서로 잘 싸우지 않기에 한꺼번에 많이 모아둘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세한 지도자를 본능적으로 따르며 비좁은 우리 속에 갇혀서도 지낼 수 있기 때문에 가축화에 유리하였지요.
저자는 이를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라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한 장의 시작과 끝을 맺습니다. 이 '부르심'은 마치 인간 세계의 면접과 채용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기업이라는 목축의 세계에서는 '부르심'을 입은 인간은 어떤 동물일까요?
인간도 한때 가축이었다
인간은 한때 저 동물들 뿐만 아니라 같은 인간 종족끼리도 가축화한 바 있는 놀라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예제가 바로 그것이지요. 지금은 그로부터 벋어 났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까지도 그 가축화의 성격은 기업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어 남아 있습니다.
우선 보호를 받으며 안정적인 먹을 것을 확보한다는데서 그렇습니다. 이런 전제하에 번식을 거듭하고 개체 수를 늘려 나갈 수가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급여와, 부양가족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축이 겪는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역시 보호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해서 생산물을 제공해야 합니다. 가축도 육류 형태뿐만 아니라, 양털이나 우유처럼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다 내어 놓고 있듯이, 인간도 무시무시한 성과를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몸을 갈아 넣어야 겨우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축과도 다르지 않다고 보지요.
인간가축 합격의 조건
이마저도 위와 같이 육식동물처럼 투입에 비하여 생산 효율이 부족하다거나, 생산물을 내놓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거나, 직장에 매여 있을 때는 현저하게 효율이 떨어진다거나, 상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골치 아픈 성격이라던가, 신경이 예민해서 사회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면 '부르심'을 받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모든 야생 동물은 한 번은 가축이 될 기회가 있었다"라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인간에게도 '부르심'의 기회는 한 번은 있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길들이기에 실패해 야생에 남게 될 수도 있지만요.
그렇다고 직장을 '우리 안'으로 당신을 '우리 속'의 가축으로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진화의 관점으로 볼 때 이는 자연선택의 산물이며 인간이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지요. 직장 밖 현실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인간은 최적의 직장인이 되기 위해 진화를 거듭해 왔으니까요.
고양이는 연예인일까?
재미있는 것은 각자 세력권을 갖고, 자기들끼리 싸우며, 본능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이 가축화되기 어려운 동물 중 거의 유일하게 길들여진 '고양이'에 대한 사실입니다.
고양이는 세력권을 갖고 혼자 살며(야생 생태에서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한 줄로 늘어서서 사람을 뒤따르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고양이가 개처럼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를 고양이의 '집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양이가 가축화한 동기는 식용으로 한꺼번에 집단을 기르면서 몰고 다니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혼자 다니면서 사냥을 하게 하거나 애완동물로 삼기 위해서였다지요. 뭐 쥐를 잡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지만, 그렇다고 고양이가 인간의 바람대로 항상 쥐만 잡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쥐를 가지고 노는 쪽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고양이는 어떻게 직장인이 아니라 연예인의 길을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직장인은 고양이 보다 개
그러므로 직장인의 경우는 고양이보다는 개에 가까워야 환영받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충성스럽고 기꺼이 양이나 소를 몰기도 하고 식량이 없을 경우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충성한 나머지 드디어 개는 인간 다음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노동견에서 애완견으로 승진하더니 드디어 가축 중 최고의 지위인 반려견이라는 1인자 다음 2인자의 지위에 올랐으니까요. 고양이는 잡아먹으려는 집사에게 절대 몸을 쉽게 내주지 않아서 3인자에 머물렀습니다. 소나, 돼지, 닭들은 비록 가장 많은 개체수를 늘리는 데 성공했지만 살아서 인간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지요.
말이 아니라 얼룩말
당신은 원래 가축화가 힘든 동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초원의 사냥꾼 사자였을 수도 있고, 거대한 힘을 뽐내던 코끼리였을 수도 있습니다. 꿀과 연어를 즐기는 곰이었을 수도 있고, 순식간에 달리던 치타였을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민감하기 그지없는 가젤이었을 수도 있지요.
그러니 오늘날의 울타리가 비좁고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겠군요. 아니면 이미 우리를 부수고 뛰쳐나와 초원을 자유롭게 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직장 밖 초원은 위험하다곤 하지만요.
어쩌면 개나, 소, 돼지, 양, 닭, 오리와 같은 온순한 동물이어서 '부르심'을 받아 지금 행복해 할 수도 있습니다. 생존에 절대 유리한 상태이니까요. 뭐 나중에 고기가 되든 우유가 되든 패딩이 되든 일단은 야생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니까요.
자유의 보헤미안 얼룩말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말과 달리 얼룩말이 가축화가 되지 못한 사실입니다. 얼핏 말과 비슷하게 생기고, 무늬도 눈에 띄어서 인간이라면 가축화를 한번 시켜보았을 법 한데, 이 얼룩말이 결코 등을 내어주지 않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얼룩말은 생김새와 달리 말보다 훨씬 성격이 거칠어서 인간의 가축시험을 보기도 전에 뒤엎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고기도 질기고 맛이 없고, 가죽도 쓰기 어려워 완전히 인간을 실망시킨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면 얼룩말이야 말로 진정한 보헤미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가축으로 취업하느니 차라리 저 푸른 초원에서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길을 택한 진정한 자유주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가축의 포지셔닝
어디에 포지셔닝을 하느냐는 진화의 자연선택에 따른 각자의 몫인 듯하네요. 당신은 오늘날 어떤 동물입니까? 인간의 2인자 개의 자리에 올랐나요? 아니면 3인자이지만 1인자 인간을 넘보는 고양이인가요? 아니 다 필요 없고 원래 얼룩말인 것 같다고요?
저는 왠지 고양이가 끌리네요. 개과보다는 고양이과입니다.
그때 왜 하필 가축시험을 봐가지고 합격한 것이었을까요? 야생은 정말 무섭고 위험한 곳일까요?
네 밖에는 갑자기 바람이 찬 날입니다. 그래도 초원을 마음껏 달리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니 이제 아늑한 우리가 그립습니다. 초원이 아니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