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사회
'오늘은 진짜 맛있는 게 먹고 싶네!'
아침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커피를 진하게 마셨는데도 이렇습니다.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데도 말이죠.
진짜 배가 고픈 걸까요? 아니면 정서적 결핍일까요?
재욕(財欲) ·성욕(性欲) ·식욕(食欲) ·명예욕(名譽欲) ·수면욕(睡眠欲)을 다섯 가지 욕구, 즉 오욕이라 하지요.
이 욕구 중 현대인이 가장 쉽게 해소할 수 있는 욕구가 바로 '식욕'이지요.
그런데 재욕은 현대인이 가장 바라는 욕망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가장 이루기가 어려운 욕망이 되었고요,
성욕은 개인적이기보다는 상호적이라는 면에서 쉽게 이루기에 불완전 하지요,
명예욕도 갑자기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려서 달성되는 욕구입니다.
수면욕, 요건 그나마 좀 쉬워 보이네요. 그래도 시간과 장소의 확보가 필요하지요. 더군다나 현대인은 수면 부족에 항상 시달리고 있지요. 다른 욕구를 조금 얻는 대신, 이 욕구는 내어놓기를 강요당하기 쉬운 욕구입니다. (오늘도 조금씩 삥 뜯기지 않았나요?)
그래서 비교적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욕구가 바로 이 '식욕'이지요.
현대인은 이 '쉬운 욕망'을 드디어 타깃으로 삼게 됩니다. 즉 배고프지 않아도 다른 욕구가 쉽게 채워지지 않음을 대신할 수 있는 '대리 만족' 욕구를 찾게 되지요.
정작 바라는 욕구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일시적인 결핍을 채우기 위한 '거짓 만족'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식량이 풍부하지 못했기에 이 '식욕' 또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욕구가 아니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욕망이었지요. 그런데 식량혁명으로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서 인간은 동물과 달리 드디어 '식욕'이라는 욕구를 비교적 쉽게 달성 가능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서 이 욕구를 내려놓기는커녕 더 갈구하게 된 것은 아니러니 이지요.
그러므로 이 욕구는 '현대병'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진짜 배고픔이 아닌 다른 욕구들의 결핍이 나은 욕구의 '대리 충족'이라는 점에서 '문명병' 이기도 하지요. '현대인의 문명병'입니다.
이렇게 욕구의 반대편에는 '욕구불만'이 잠재해 있지요. 한 가지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그 '보상 심리'로 다른 욕구로 그 욕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돈이 잘 벌리진 않는데 나가야 할 것은 많을 때, 관계 맺기가 어려울 때, 존중받기는 커녕 상처 받았을 때, 그리고 심지어 잠이 부족할 때도 먹을 것에 집착하게 되지요.
그래서 살이 찌게 되지요!
그런데 이 욕구는 현대에 와서 한 가지 욕구를 더 나았습니다. 바로 '날씬해지고 싶다'라는 욕구지요.
'먹고는 싶은데, 날씬해지고 싶어', 여섯 번째 욕구, 6욕의 탄생이지요. 현대에는 오욕칠정을 육욕칠정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이 욕구는 '다이어트'라는 거대 산업을 낳았지요, 그리고 '먹방'이라는 거대 프로그램도 낳게 됩니다. '눈으로 먹는다 '일까요? (저는 아직 까지 왜 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이 식욕은 이제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라는 욕망으로 진화하게 되지요.
그저 그런 것 말고 '진짜 맛있는 것을!'
그 바탕에는 진짜 무언가 심하게 부족한 것이겠지요. '항상 그랬듯이 오늘도 돈이 없다거나', '정말 외롭다거나', '완전 짜증 난다거나', '피곤해 죽겠다'라는 결핍의 끝판왕이 내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신으로라도 '진짜 맛있는 게' 먹고 싶은 것이겠지요.
한편으로는 욕구들은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이 항시 도사리고 있습니다. 재욕이 과하면 명예욕이 실추되기가 십상이고, 수면욕을 팔아야 재욕과 명예욕을 조금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과한 성욕과 식욕은 건강을 해치기 마련이지요.
맛있는걸 많이 먹으면 날씬해져야 하는 여섯 번째 욕구를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도 신의 공평함과 인색함이 드러나지요. "한 사람에게 한두 가지 욕구 충족은 허락하겠지만 여섯 가지 욕구를 모두 줄 수는 없노랏!" 인간사 진퇴양난입니다.
그렇다고 번민을 떠나 '무욕'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맛있는 게 먹고 싶다'라는 식욕마저 사라질 때 드디어 우리는 영원한 '수면욕'을 갈구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식욕'은 당신이 아직은 살아 있는 '신호'이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맛있는 게 먹고 싶다'는 내가 아직 살아야겠다는 강력한 신호이겠네요. '진짜 맛있는 게 먹고 싶다'는 진짜 우울하지만 그래도 그거 먹고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상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막 먹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잘못하면 글을 시작한 의도와 다르게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라고 '먹고 죽자'로 귀결 지을 뻔했습니다. 식욕의 유혹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식욕을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배고픔인지 다른 결핍으로 인한 배고픔인지요.
대게는 위와 같은 이유로 후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안 그래도 정서적으로 공격당함과 결핍이 많은 현대인 들은, 당장 살기 위해서 라도, 쉬운 만족감을 찾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매기가 쉽지요. 맛집 투어를 합니다.
그런데 그 만족의 시간을 엄청 짧지요. 먹을 때뿐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또 배가 고파 지지요.
오죽하면 히딩크 감독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I'm still hungry"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현대인은 확실히 과한 식욕 위주의 단기적 해결책을 줄이고, 다른 욕구들을 좀 재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잠을 좀 더 깊게 자고, 연애 세포도 좀 살리고, 주식과 코인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조금 덜 받고요, 이렇게 글을 쓰면서 결핍을 채우는 것도 하나의 방편 이겠네요. 제6욕인 다이어트도 계속되긴 해야 합니다만 과하지 않게.
그런데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글을 쓰며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겠네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쓰면 배고 고파 집니다'.
이것은 진짜 배고픔이지요. 뇌가 일을 하면서 배터리가 급속히 닳는데서 오는 배고픔입니다.
그래서 선순환이지요. 명예욕과 식욕의 선순환 인 셈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진짜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습니다'.
돈 벌어서 뭐하겠노? 소고기 사묵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