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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Oct 18. 2022

소주는 맛없지만 와인은 맛있어

feat book 와인 폴리

소주를 처음 맛보았을 때 도대체 이걸 왜 먹나 했습니다. 쓰디쓴 게 무슨 약 같았지요. 이것은 맛으로가 아니라 그냥 다 같이 먹으니까 먹는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안주랑 같이 먹는 맛에 먹는 것이었지요.


그에 비하면 와인을 처음 맛보았을 때 이것은 나와 맞는 술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소주파들은 와인을 마시고는 입맛 버렸다는 둥 다시 소주를 먹으러 발길을 돌렸지만, 이렇게 와인을 멋지게 마시고 그 위에 소주를 들이붓는다는 것은 정의롭지 않아 보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와인은 맛이 없다는 듯이 소주와 와인을 섞어 드라큘라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와인을 단지 소주에 색깔을 내는 데 사용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지금은 와인이 일반화되어서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술이지만 한때는 허영심이 가득한 술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소주가 순수한 100% 알코올에 푹 빠져 취하기 위한 술이었다면, 와인은 알코올은 30% 나머지 허영심이 70%쯤 되어 보였지요. 그럼에도 와인은 맛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와인 잔 속 그 붉은빛 너머로 '낭만'이라는 것이 보였거든요.  


그렇다고 소주에 낭만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주에도 낭만은 있지요. 다만 빛깔이 나지 않은 낭만일 뿐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의 취향입니다. 무색의 알코올향 낭만이냐, 붉은색 과일향의 낭만이냐, 저는 다만 붉은색의 과일향 낭만이 더 좋았을 뿐입니다. 익히 소주파가 아니라 낭만파였던 것이지요.

와인 하면 역시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는 읽지 못해서 결론은 생각나지 않지만 만화책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집중하여 읽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황홀경에 가까운 와인의 맛에 대한 묘사가 매번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것 마저도 꽤 낭만적인 시구 같았지요.


그 이후로는 와인은 그냥 평범한 술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소주 대신 먹는 술이 되었고, 와인잔 속 불은 빛 낭만은 오래된 와인처럼 바래가는 듯싶었지요. '신의 물방울' 속 와인 맛에 대한 묘사도 다소 과장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와인으로부터 느꼈던 그 허영심, 그리고 낭만이 증발되어 다 날아갔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궁금치도 않았고 낭만적이지도 않게 되었던, 와인의 세계를 정리한 책 한 권 뽑아 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금 주저하면서 집어 들었지요.

이제 '신의 물방울'처럼 근사한 와인 전문가가 아니라 소주처럼 와인을 먹는 세상에 와인은 알아봐야 너무 복잡해서 알기를 포기할 즈음이었는데 조금 흥미가 당기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도 그러했는지 와인의 모든 것을 아예 책 한 권에 갈아 넣겠다고 작정을 한 듯합니다. 와인, 포도 품종에 대한 분류와, 특히 그래픽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쓱쓱 읽기에 좋은 책이었네요. 와인잔처럼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쓴 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남미 칠레 어디 와이너리도 한번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와이너리는 시음을 하고 와인잔을 기념으로 주는데 집에서 소주처럼 와인을 마시다 잔을 깨 먹어서 지금은 그때를 떠오르게 할 물건이 없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와인은 와인잔에 조금씩만 따라 빙그르 돌려서 잔 끝에 입술을 살짝 대고 허영심으로 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와인을 먹는 것만큼 낭만을 그득 채워 먹는 것이지요. 지인이 와인을 밥그릇에 먹는다 해서 깜짝 놀란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와인은 정말 소주가 되어 버리거든요.


요즈음은 건강상 문제로 와인을 먹은 지 꽤 오래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책으로나마 와인을 살짝 맛보는 것이지요. 더불어 허영심과 낭만까지도 마신지 오래 되었네요. 다시 붉은색 낭만에 젖을 그날을 기대합니다.

지금은 와인은 됐으니 치즈나 한 장 먹어야겠습니다.


와인폴리 매그넘 에디션 (당신이 궁금한 와인의 모든 것)

한줄 서평 : 당신의 낭만에 건배 (2022.10)

내만 $점 : $$$

Madeline Puckette, Justine Hammack 저 / 차승은 번역 / 영진 닷컴 (2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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