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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Oct 23. 2021

E's 북 : 이토록 아름다운 물리학이라니

에펠탑부터 밀푀유까지, 당신이 몰랐던 과학의 아름다움 ($$$$)

한줄 서평 : 과학과 예술의 아름다운 밀회 

내맘 $점 : $$$$ (과학을 어렵게만 보지 말고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감상해 보고자 한다면)

에티엔 귀용, 호세비코, 에티앤 레이샷, 브누아 로만 지음 / 박인규, 박마래마리아 옮김 / 미래의 창 (2021.04)


$ '물리학'에 대한 세 사람


'물리학'은 '문과'생에게는 확실히 어려운 과목이었죠.

그나마 그때에는 '물리학' 과목이 필수여서 기초나마 이 학문을 접할 수는 있었습니다만 '이과'를 선택하지 않는 한 더 깊게 들어갈 과목은 아니었지요. 

다행히 시험은 어렵지 않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문과생을 위하여 시험문제를 거의 알려주다시피 했었거든요.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 내긴 했지만 '어려웠다'라는 기억 말고는 무엇을 배웠는지는 기억이 나지도, 커오면서 '물리학'의 지식을 쓸 일도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다만 담당 선생님은 기억나는데, 앞 두줄만 빼놓고는 수업시간에 자도 된다고 하셨던 일화 때문입니다. 다만 앞 두줄까지 바로 선생님 앞에서 자고 있다는 건 자존심의 문제였는지 눈을 뜨고 듣는 척이라도 해야 했나 봅니다.


그러다 '물리학'이란 이름을 다시 만난 것은 우연히 군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나 전혀 과학도 스럽지 않은 후임을 만난 것이었죠. 아직 그 물리학도가 기억에 남음은, 그 자신도 물리학에 관심이 없었는지 세 번째 학사경고란 제적의 위기를 피해 군대에 온 이유 때문이었죠. 대신 그는 아주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특히 Steelheart의 3옥타브 She's Gone을 끝내주게 불렀었죠.


그리고 다시 회사에서 그 드물다던 '물리학도'를 한 명 더 만나게 됩니다. 그가 하는 일은 '물리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사고방식은 약간 '물리학'에 가까운 정말 처음 '물리학' 인간을 만난 순간이었던 것이죠. 모르긴 몰라도 그는 저의 뇌와는 회로 구조가 조금 달라 보았습니다. 특히 Excel을 귀신처럼 구성해서 마구 돌리고 신기한 것들을 마치 과학 발명품 마냥 만들어 내곤 했었지요.


$ 생각보다 아름다운 물리학


물리학 하면 역시 '아인슈타인'이지요. 우유나 건강식품 아니고 콧수염에 머리 산발을 한 그 아저씨 맞습니다. 

'아인슈타인' 아저씨가 아무리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다 해도 '물리학' 책은 손이 가지 않지요. 그런데 이번에 이 뜻하지 않는 '물리학'의 선택에는 '아름다운'에 함정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문과생들은 이 '수학'과 친척일 것 같은 이 '물리학'과는 절대 다시 만날 일이 없었을 것 같은데 저자는 공교롭게도 여기 제가 좋아하지 마지않는 '아름다운'이란 수식어를 붙여 저를 꼬셨습니다. '물리학도'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짓이었지요.

  

그러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예술'과 '물리학'은 사귀는 게 어색한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결혼까지 갈 수 있지요. 어랏, 꼬심에 넘어간 게 분한 것 같은데 벌써 이 책이 맘에 들었나 봅니다.

에펠탑의 균형, 예술 작품의 균열들, 흙으로 만든 건축물, 석조 아치, 활과 현이 만드는 진동 등 '문과적' 또는 '예술적' 시각에서 보면 그냥 아름다움이고 당연한 균형인데 이 물리학도는 '물리학'적으로 보면 그 뒤에 세세한 과학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이 '균형'의 의미를 정교하게 계산해 낸 것이 분명합니다.

'아름다움'에 '계산'이라니요? 반발해 보지만 이 물리학도는 "그 뒤에 그 계산된 균형이 있어 우리가 만날 수 있던 거야"라고 합니다. 선수임이 분명합니다.


$ 세상의 두 종족


세상을 살다 보면 어느덧 문과족과 이과족으로 나뉘게 되지요. 분명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어느 순간 '문과족'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문과족은 한때 문자를 발명하며 세상을 지배한 듯했으나 너무 거짓말을 많이 쓴 나머지, 이과족에게 그 지배권이 많이 넘어간 듯합니다. 이른바 '과학'의 시대인 거지요.

어이없는 일은 경제학도가 투자를 제일 잘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점과, 문학도가 글을 제일 잘 쓸 거 같은데 상관이 없다는 점과, 과학도가 정확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데 이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순수 문학 작품보다는 과학에 과한 이야기가 더 임팩트가 크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래도 문과로 태어난 걸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도 쓰지요. 문자로 된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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