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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Jan 12. 2023

무욕이라는 병에서 회복 중입니다

욕망하기

이상한 병에 걸린듯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몸이 좀 아팠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아무런 의욕이 없어지면서 산 상태도 아니고 죽은 상태도 아닌 좀비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지요. 좀비는 살아 있는 인간을 물어뜯으려는 강력한 욕망이라도 있지만, 이 병은 그 어떤 것에도 그럴만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였지만, 단순히 넘어진 정도가  아니라 흡사 마취총에 맞아 사냥을 당했거나, 몸이 곰으로 변해 마치 겨울잠을 자야 할 상태 같았지요. 이 병은 지금껏 지구에 있던 병은 아니고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새로 발명한 무욕이란 바이러스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병은 오욕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재, 성, 식, 명예, 수면의 다섯가지 욕구를 한꺼번에 바라지 않게 만들었지요. "드디어 이 병으로 말미암아 무욕의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 정도로 정말 아무 욕망도 일지 않았지요.

그러나 해탈도 그러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야 하는 법. 아예 해탈하고자 하는 욕구조차 없는데 무슨  해탈이겠어요? 이는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초자아의 상태일까요? 아니 자아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역자아의 상태일까요?욕망이라는 것이 이렇게 필요한 것이었을까요?


그러므로 연말의 마무리나 새해의 계획은 아무런 욕망이 없었습니다. 모든 모임과 행사는 취소하고 정말로 무욕의 크리스마스와 무사유의 연말, 무계획의 새해를 보냈습니다. 그런 날들은 무욕 앞에 똑같은 시간일 뿐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 것은 없었지요. 이렇게 무욕의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당연히 브런치 라이킷, 구독자, 글을 읽고 쓰는 것에도 아무런 집착이 없어졌습니다. 독자가 떨어져 나가고, 아무도 찾지 않는 브런치 상태가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았지요. 돌이켜 보면 그런 것들을 왜 욕망했었나 의문이었지요.


이런 상태에 이르자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무욕이라는 해탈의 경지가 이리 망한 것인지는 몰랐지요. 그러고 보면 어떠한 깨닫음의 경지도, 모든 종교 활동도, 무욕의 가르침도, 모두 욕망에서 비롯되어 행해지는 것이더군요.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그냥 무욕구가 아니라 물질 아닌 그 이상의 다른 것을 바라는 강력한 소유의 욕구에서 비롯된 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해탈은 필요없고, 이 무욕의 병에서 벋어나 다시 욕망하고 싶었지만  이 병은 어떠한 욕심도 생기지 않으며, 어떠한 음식도 먹고 싶지 않으며, 어떠한 아름다움도 추구하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아주 고약한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의외로 날씨의 변화를 따라서였습니다. 연말까지 극심한 한파가 계속되었고, 차가운 날씨는 더욱더 욕망을 얼어붙게 만들어 깨어나질 못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병은 외계인이 추위와 함께 퍼뜨린 욕망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병이라고 생각했지요. 무욕은 확실히 차가운 무언가가 분명했습니다.


런데 날이 풀려가자 병도 조금씩 낫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오늘 비로소 따사한 햇살을 볼에 맞으며 따사함을 욕망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봄을 욕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 무욕의 죽은 듯한 나무와 가지에서 따사함을 욕망하는 새싹이 피어날 것이라는 욕망이 꿈틀거림을 완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름 모를 무욕의 해탈의 병에 걸렸다가 죽은 것 같은 무에서 새싹을 다시 욕망하며 글을 돋아냅니다. 아직은 무욕의 병에서 완전히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욕망해야겠다는 불씨를 다시 피우면서 말이죠. 다시 욕망이라는 불씨를 찾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게 무욕이라는 병에서 회복 중입니다. 얼어 붙은 욕망을 깨고 나올 싱그러운 잎과 꽃, 그리고 따사한 봄햇살을 욕망하며 말이지요. 다시금 글도 욕망할 생각이 들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말이에요. 욕망이라는것이 이리 소중한지 몰랐지요. 라이킷 진심 욕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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