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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Oct 30. 2021

단테와 K지옥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관광

$ 핼러윈


오늘은 핼러윈(Halloween) 데이를 앞둔 주말이기도 하니, 그동안 아껴두었던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참고로 핼러윈은 올 핼러 우스 이브(All Hallows' Eve)가 줄어든 말이라고 하네요. 성인들의 날(All Hallows's e'en)인 11월 1일의 전날(eve)로 켈트족은 10월 31일이 한해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새해를 맞이하기 전 일종의 죽은 이들을 기리기 위한 한 해 마지막 날 축제 이자 제사가 바로 '핼러윈'이었던 셈이었죠.


$ 불타는 지옥 책?


불타는 듯한 붉은색!

신음하고 있는 인간들과 악마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탈리아 화가 조토의 '지옥도'였습니다)

표지를 보고 '도대체 이 책은 뭐지???'란 생각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제목은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이라니요!!!

'사이비 종교책인가?'

'지옥의 생생함으로 종교에 빠져들게 만들려는 상술일 수도 있어!'

하지만 강렬한 표지색과 어이없는 제목에 속는 셈 치고 책을 뽑아 들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이들에게 책을 보여주자 '아 네가 드디어 미쳐가는구나'라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지요.

과연 이 불타는 지옥 책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 지옥의 비전서


다행히 알맹이는 지옥을 빙자하여 겁주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고전 문학이며, 미술 작품이며, 신화 속에 드러난 '지옥'에 대하여 관광을 떠나듯 익살맞으면서도 심오하게 소개를 하고 있었는 데  있었는데 일종의 '지옥'의 인문판 집대성이었지요.

저자가 '지옥의 인문학' 이란 흔한 용어를 쓰지 아니하고 '지옥 여행'도 아닌 '지옥 관광'이라는 B급 제목을 붙인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살아생전' 떠나는' 이라니요?'헬조선'의 현실을 인식하고 있던 것이었을까요?


아마 지옥 대신 '죽어서 사후 떠나는 천국 관광'이라면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옥'의 반대편에는 '천국'이 있기 나름이긴 하지요. 그런데 왜 더 '지옥에 끌리는 걸까요. 위에서 말한 '핼러윈' 데이만 해도 그렇습니다. 성인들의 날에 '천사' 분장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재미가 없지요. '범생이'는 재미없고 '나쁜 남자'에 끌리는 것도 같은 것일까요?

 

오! 여하튼 우연치 않게 이런 비전서(秘傳書)를 만나다니요! 마치 '악마'로부터 몰래 건네받은 책인 것 같은 기분이었지요.


$ 지옥의 창조자들


지옥에 대한 '궁금증'은 인류의 오랜 과제였나 봅니다. 오디세우스가 아마도 작품을 통해 최초로 지옥 여행을 다녀온 듯하고요, 그리스 신화 같이 신과 인간이 공존했던 시대에는 지옥은 빠질 수 없는 공간이었죠. 중세에는 역시 시대가 시대인 만큼 지옥이 전성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개념이 모호했던 지옥을 심오하게 구현해 냈던 것은 '단테'의 '신곡'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싫어하던 사람들을 그의 작품을 통해 지옥을 창조함과 동시에 지옥에 보냄으로써 창작자의 자유를 마구 누렸지요. 얼마나 싫었으면 지옥을 만들어 그들을 지옥에 보내버렸을까요?

갑자기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께서 "이번에 지옥이 확장 공사를 해서 얼마든지 자리가 있다"라고 하시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수학을 못하면 '지옥불'에 떨어져야 하는 죄인이었던 것 같네요.

이렇게 지옥의 수요는 항상 많았었지요. 천국은 확장 공사가 필요 없었지만 지옥은 넘쳐나는 수요로 계속 확장이 필요했었습니다.

불교에서도 지장보살이라든지 사천황이라든지 지옥과 관련된 이들의 모습이 종종 보이곤 하지요.

이쯤이면 '지옥'은 시대와 종교를 망라한 거대 '관광' 사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 지옥의 최고봉


지옥도 다 같은 지옥이 아니라 단계가 있습니다. 내려갈수록 단계가 높아지는 시스템이었지요. 그렇다면 지옥의 밑바닥, 최고 단계에는 누가 있으며 어떠한 형벌을 받고 있을까요?

단테는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 카이사르를 배신한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를 지옥의 밑바닥, 머리 셋 달린 악마 루치페르의 세 입에 넣고 있지요. 그중에서도 브루투스가 가운데 입에서 피를 흘리며 루치페르의 반쯤 먹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다보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대역죄인으로 다룬 단테는 카이사를 더 흠모했던 것이었을까요? 아무튼 단테는 '배신'을 가장 큰 죄로 여겼던 것 같네요. "이건 배신이야 배신!"


그럼 지옥에서 어떤 종류의 벌을 받게 될까요? 단테는 이승에서 저지른 것과 정반대로 저승에서 벌 받는 것을 '콘트라파소'라고 했지요. 반대로 겪는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승에서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거지 철학자였던 디오게네스를 멸시했었지만, 이승과 반대로 저승에서는 거지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몽둥이로 때리면서 부려먹고 있지요. 팡타그뤼엘의 지옥 여행자가 이 모습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지옥 관광'은 아마 이 모습에서 따 온 듯하네요.

그래서 지옥에서는 당신을 괴롭혔던 직장 상사를 마구 부리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만약에 당신이 상사였다면 거꾸로 심하게 당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요. 이런 게 '지옥'의 맛이지요.


$ 헬조선과 오징어 게임, K지옥


우리나라에 유명한 지옥에 대한 문구가 있다면 바로 '불신지옥'이지요, 이 무시무시한 세뇌의 문구는 이 책을 처음 의심케 하고, 망설이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차량을 동원하여 확성기로 그 소리를 공중에 마구 뿌려대고 있지요. 그 모습은 흡사 독가스를 살포하고 있는듯 합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온 탈출 해서 온자들이 분명할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핼러윈 데이 하고는 썩 어울릴 것도 같군요.


현실은 어떤까요? 현실이 곧 지옥이지요. 그 중심인 '헬조선'과 '오징어 게임'인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따로 '지옥'에 갈 필요가 없는 '살아생전 지옥 관광'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른바 지옥도 K지옥이 최고 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자의 제목 선정은 탁월했었네요. 이 책은 지옥에 대해 지식을 넓히고 익숙하게 함으로써 헬조선에 적응을 용이케 하는 엄청난 인문서이지요.

지옥이 없다면 천국도 없는 것이라던데 천국은 어디 있는 것일까요?천국은 기대치도 않습니다. 다만 책을 쓴다면 저도 단테와 같이 몇 명은 꼭 지옥에 보내고싶습니다만...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관광 (고전문학, 회화, 신화로 만나는 리얼 지옥 가이드)

한줄 서평 : 지옥이 이리 흥미로울 수가! (2021.07)

내맘 $점 : $$$$ (지옥을 이해하고 상사를 지옥에 보내고 싶다면)

김태권 지음 / 한겨레 출판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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