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e Apr 25. 2023

머리 말리기의 귀찮음과 즐거움

머리를 감고 난 후 머리를 말리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아침시간, 정신없이 바쁠 때에는 머리 말리는 일은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 끝내야 할 사명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보통은 헤어드라이어 바람을 최고로 높여 일부러 일으킨 바람으로 머리의 기를 강제 증발 시키곤 합니다. 게다가 뜨거운 바람까지 일으키면 머리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거의 머리를 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하지요.


그런데 여유를 가지고 시원한 바람을 머리카락 사이사에 쐬여 머리를 말리는 일은 머리 말리기 사명과 달리 꽤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짧은 머리라면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굳이 머리를 말리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머리가 다 마르기도 하지만, 머리가 조금만 길어헤어드라이어의 바람을 일으켜 머리를 구석구석 말려야 하지요. 그런데 이왕 머리를 말리는 것, 푸른 바다 바람 앞에 선 것과 같은 즐거움과 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른 바다 바람에 머리 말리기는 무엇보다도 시간에 쫓기지만 않으면 우선 기분 좋은 느낌을 온몸 가득 불어넣을 수가 있는 요건이 됩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들어와 두피의 물기를 증발시키은 일은 꽤 감각적인 일이거든요. 거기에는 머리 속살이 깨끗함에서 느끼는 감각과, 머릿속까지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이완시키며 청량감을 전해주지요. 이것이 푸른 바다 바람이건 헤어드라이어 바람이건 머리에 닿을 때 즈음이면 그 상쾌함으로 인해 맑은 푸른 바다 앞에 선 느낌이 넙니다. 더군다나 찬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다 드라이어의 따뜻한 바람을 틀면 또 두피와 머리를 찜질하는 듯한 포근한 느낌으로 말미암아 몽롱해지기도 하지요. 분명 머리만 말리고 있을 뿐인데 푸른 바다 바람 한가운데 서서 머릿결이 날리는 태고의 자연풍을 맞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므로 이 머말리기의 즐거움의 핵심은 여유가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여유에 따라 지옥과 천국을 가르는 경계선에 이르고, 모래사막 앞에 서 있느냐 푸른 바다 앞에 서 있느냐가 갈리거든요. 오직 여유라는 바람에 머리를 말릴 때만 두피의 시원함도, 머릿결의 휘날리는 설렘도, 따사한 마사지의 감각도 느낄 수 때문입니다. 머리가 젖어 있을 때 그 원초적인 감각을 바람날려 보내는 일이야 말로 은근히 느껴지는 머리 말리기의 온전한 묘미라 할 수 있겠지요. 더불어 뽀송해진 머릿결의 살아있는 감각도 바로 그때만 잠깐 유지되는 것이고요.


그러나 머리가 다 마른 후에는 그 수분이 가지고 있는 마른 듯 마르지 않는 듯한 촉촉함은 이내 사라지게 되고 맙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의 모양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일그러지고 그 다음날 다시 머리 감기와 머리 말리기가 반복되지요. 푸른 바다 앞에 잠시 섰다가 눈떠보니 황량한 도시의 거리에 놓인 것과 같은 반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에 한 번 느낄 수 있는 이 푸른 바다 바람으로 머리 말리기의 즐거움이야 말로 놓치기 아까운 감각의 기회입니다. 여유가 있어야만 꽉 잡을 수 있는 초유의 쾌감이지요. 머리를 말리며 머릿속까지 시원하고 깨끗해진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낄 때 바로 머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니까요. 머리가 늘 푸른 바다 바람을 늘 그리워하고 있다는 깨닫는 순간이니까요. 머리는 원래 해초였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얼룩말은 달리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