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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May 31. 2023

전쟁이 났다

feat 늑대가 나타났다

잠결인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끌시끌합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것도 같고 확성기에서 뭐라 뭐라 떠드는 것도 같습니다. 이른 아침의 소음에 짜증이 밀려 오지만 더 눈을 꽉 감라 버립니다. 절대 잠에서 깨어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북돋습니다.


 큰 한방으로 결국 잠을 깨운 것은 휴대폰에서 난 사이렌 소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휴대폰이 고장 나거나 귀신이라도 들린 줄 알았지요. "경계경보 발령, 대피할 준비를 하라" 합니다. 이 위급 재난 문자는 스팸일까요? 진짜 재난 문자일까요? 밖에서도 시끌시끌해 창문을 열어보니 역시 무슨 대피하라는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 것이 스팸은 아닌가 봅니다.


잠시 눈앞으로 미사일이라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영화 속 한 장면을 상상해 보며 휴대폰을 찾아보았지만 비교적 인터넷 세상은 조용합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그래도 세수는 하고 대피해야지"하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찬물로 얼굴을 씻고 이도 닦고 TV를 켜 뉴스를 찾아봅니다. 북한에서 위성 발사체를 쏘았나 봅니다. 그것도 예고된 발사체였다네요.


왜 위성 발사체를 하늘이 아니라 남쪽으로 계속 쏘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백령도 어디 떨어질것 같다고도 하고 제주도 어디일지도 모른다는 보도도 나옵니다. 그냥 아는 섬을 말하기 놀이일까요? 어디로 쏘았는지 모르는 게 분명합니다. 설사 위성이 아니라 미사일이라 해도 어디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재난 문자에 비하여 별로 걱정된 모습도 아니고 다른 방송은 평시와 다르지도 않습니다.


카톡방이 잠시 분주해집니다. 제일 많은 질문은 그래서" 어디로 대피하나요?"라는 것이었지요. 하기야 대피할 곳도 습니다. "피난이라도 가라는 것인가?"' "미친놈들"이라는  욕지거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쯤이면 전쟁은 아닌 것 같고 뭔가 상황 파악도 안 된  가운데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에게 당한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지요.


순간 "주가가 폭락하면 어떤 주식을 사야 할까?" 생각을 해 봅니다. 아니야 "채권이 나을까"' "달러는?" 위험의 가장 확실한 지표인 환율은 미동이 없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더욱 이 상황이 선동에 가깝다는 확신이 생기지요. 환율은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요. 다행히 주식시장은 아직 개장 전이었습니다.


잠시 후 위급 재난 문자는 오발송이었다는 요란한 재난 문자가 급하게 다시 울립니다. 양치기 소년이 뻥이었다고 합니다. "미친!" 욕지기를 한 사발 날려줍니다. 이러한 경험이 어릴 적에도 한번 있었습니다. 북에서 비행기가 귀순을 했을 때인데 경계경보가 크게 울렸고 그 와중 하굣길에 가방을 벗어던져버리고 집으로 뛰었다는 일화가 화자 되기도 했었지요. 그런 시절도 아닌데 "늑대가 나타났다"라니요.


이제 전쟁이 났다 해도 방송도, 경보도, 재난 문자도 앞으로 믿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믿을 것은 주가나 환율이나 채권 금리겠지요. 그리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전쟁 나면 어차피 죽을 것, 주식과 채권과 달러를 잔뜩 사고 기다릴 것입니다. 항상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외치는 양치기의 거짓말에는 음모가 숨어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때 자칫 잘못하면 양을 다 털릴 수 있어요. 그보다는 늑대에 쫓긴다고 하는 양을 사 모아야 할 수도 있지요. 실제 늑대보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두려움과 불신의 늑대가 때론 더 무서운 법이니까요.

늑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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