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하늘에서 번쩍번쩍 천둥벼락이 치기 시작하길래, "걸음아 날 살려라" 전속력으로 집으로 향했지만 건널목 신호등의 파란불이 깜박깜박, 차마 건너지 못하고 빨간불로 바뀐 순간 비가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합니다. 이런! 마침 우산이 없어요. 재빨리 오던 길을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겨우 머리 위로 비를 피할 곳을 골라 잠시 대피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쯤일까요?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어느 다리 끝의 한편인가 봅니다. 그 대신 바람은 끝내주게 시원하게 불어옵니다.
우산을 가지고 와 구조해 달라는 요청은 보내지 않기로 합니다. 기다리다 보면 비가 그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하지요. 앞쪽으로도 뒤쪽으로도 오갈 수 없이 꼼짝없이 비 기둥에 갇힌 듯합니다. 뜻밖의 조난을 당한 셈이지요. 배터리도 마침 17% 밖에 없고 이러다 곧 SOS를 보낼 수단마저 끊길지 모릅니다. 이 정도면 조난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지요.
그냥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긴 뭐 하니 글을 써 보기로 합니다. 배터리도 알마 안 남았는데 SOS를 보낼 소중한 전력을 글에 낭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가 그치지 않고 더 심하게 내릴 수도 있으니까요. 잘못하면 강물이 다리 위로 넘실댈 수도 있지요. 뭐 그래봤자 물에 빠진 생쥐 꼴 밖에 더 되겠어요? 뭐라고 쓰다 보면 조난일지라도 남겠지요.
예기치 않은 천둥벼락과 비를 맞은 것은 이 순간뿐이 아니겠지요. 비가 언제 그칠지 모르지만 마냥 기다려야 할 때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어있어요. 섣불리 움직이는 것이 비를 더 맞게 될 일일지 아니면 아예 조난을 당하게 될 일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모든 것을 체념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은 것이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죠. 이렇게 삶은 자주 조난을 당하고 그때마다 필요한 우산은 자주 없기 일수니까요.
그러나 채 글을 마치기도 전에 빗방울은 가늘어지더니 이내 비는 그친 듯합니다. 뜻밖의 조난에서도 구조대도 없이 탈출하게 된 것이지요. 조난일지는 집에 가서 마저 써야 할 모양입니다. 지금 혹 조난 당해 있진 않나요? 비가 언제 그칠지 모르고 마냥 기다려야 할 상횡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섣불리 앞으로 나섰다가 비만 더 쫄딱 맞데 될 때도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 자존심을 구기고 구조대를 요청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조난 일지를 쓰다 보면 이 빗방울이라는 올무에서 거짓말처럼 풀려날 때도 있겠지요. 설령 그렇지 못하고 비에 흠뻑 젖은 생쥐꼴로 구출된다 해도 조난 일지는 남을 것이라고요. SOS! 여기 조난일지만은 꼭 찾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