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저물고 밤이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날이 푹푹 찝니다. 그런데 창밖에는 집에 안 가고 잡담을 하고 있는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날이 더우니 문을 열어 놓았고 그러니 잡담의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지요. 좀 조용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잡담하기 좋은 날인걸 어찌하겠어요.
잡담하기 좋은 날이란 이렇게 비가 한주 내내 온다고 예고된 전날, 날이 푹푹 찌는 날 그늘에 앉아서 가끔씩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바람을 맞으며 뉘엿뉘엿 해가질 무렵이 안성맞춤이지요. 게다가 잡담이 살짝 귀에 거슬리는덧 같으면서도 쉬 뭐라 못하는 것은 그 잡담을 저들과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 내내 줄곧 떠들었던 기억 때문입니다.
그때는 뭐가 그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아니면 공부가 하기 싫었는지 별 이유를 다 들어 밖에 나와 잡담을 몇 시간씩 떠들었지요. 지나고 나면 별 쓰잘 때 없는 이야기여서 지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는 무척 간절한 이야기 같기도 했습니다. 뭐라도 떠들지 않으면 이 푹푹 찌는 무더위가 쉽게 가시지 않을 것만 같았거든요. 딱히 덥고 습한 여름뿐 아니라, 춥고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인 까닭에, 싱숭생숭 아지랑이 같은 잡생각이 피어오르던 봄인 까닭에, 낙엽이 떨어져서 구르면 또 가을인 까닭에, 늘 그랬지만 언제나 잡담하기에 좋은 날은 계속되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잡담할 이야깃거리도 노닥거리고 있을 상대도 마땅치 않은 듯싶네요. 시답지 않은 이야길 귀 기울여 맞장구처 주며 받아줄 이가 별로 남아 있기도 어렵고 끝이 없었던 잡담거리가 이제 별로 생각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잡담은 시간 낭비 같이 느껴지고 의견이 다른 이야길 잘못했다가는 그날로 갈라서거나 칼 맞기가 십상일지도 모르니까요.
잡담하는 얘들의 알 수 없는 웅얼거림에 가락을 맞추어 한편에서 홀로 글로 잡담을 늘어놓아 봅니다. 왜냐하면 날이 푹푹 찌는 잡담하기 참 좋은 날이기 때문이지요. 잡담을 늘어놓고 나면 답답했던 가슴이 거짓말처럼 뻥 뚫리 듯이 시원해졌지요. 그러고 보니 잡담이 별 쓰잘데 없는 것이 아니라 참 요긴한 것이었습니다. 잡담으로 인하여 여전히 숨 쉬며 살고 있으니까요. 뭐 지금껏 쓴 글의 8할은 잡담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영양가 없는 잡담이, 그리고 그 잡담을 진지하게 받아주고 또 더하여 잡담을 끊임없이 늘어놓던 이들이 그리워지는 푹푹 찌는 여름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