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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May 20. 2023

여행과 글쓰기와 책읽기의 같은 이유

feat 여행의 이유

리베카 솔깃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 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김영하'라는 소설가는 익히 들어본 이름이지만 그의 책을 읽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TV에서 봤을 때 지식도 깊은 것 같 이내 말도 잘했지만 특별히 재미있을 것 같은 캐릭터는 아니었거든요. 어여튼 이번엔 우연히 그의 책에 걸려들었습니다.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보아 어렵지 않게 도전해 보아도 될 듯 보였거든요. 읽고 나서는 자꾸 '여행의 목적'이라고 기억하게 되는 그의 '여행의 이유'는 사실 목적 지향적이지 않아 좋았습니다. 딱히 '여행의 이유'라고도 설명해 낼 이유도 아닌 것이 그냥 여행을 좋아하게끔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결국  이유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의 시작은 어이없게도 '추방'으로 시작합니다. 여행의 시작부터 비자를 발급받지 않고 갔다가 중국에서 쫓겨난 것이었지요. 여행의 시작부터 어이없이 발린 그는 프로 여행러가 아님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여느 여행기와 다를 것임을 책머리부터 강하게 암시하지요. 그러나 요즘 세대는 알랑가몰랑가 멀미 방지를 위해 키미테를 귀 밑에 붙이고 떠난 중국 여행으로 인해 인생이 바뀐 여행은 그의 운명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여행은 물론 설레고 신나는 일이긴 하지만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던가,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처럼 한편으로는 사서 고생하는 과정이기 마련입이다. 그런데 그것이 글쓰기와 닮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하지요. 미지의 세계로 발돋움을 하고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무지막지하게 딴 길로 새고 꼬여가는 여정 속에 신나게 고생하는 것. 정말로 글쓰기와 참으로 닮았습니다. 글이라는 여정 또한 한번 시작하면 알 수 없는 길로 들어서는 여행과 같으니까요. 한번 글을 쓰고 나면 기운이 소진되어 다시 글을 쓰지 않을 것 것 같은데 또 그 설렘으로 인하여 여행과 같이 쓰기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더 나아가 책 읽기도 여행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어디로도 떠날 여건이 되지 않았을 때 책을 통하여 여행을 떠나곤 했었습니다. 그것이 책뿐만 아니라 영화 같은 것을 통하여서도 일 수 있겠네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디디는 것! 여행도 책 읽기도 마찬가지겠지요. 다만 책 읽기는 보다 머릿속 여행인데 비하여 여행을 실제 떠나는 것은 몸으로 부딪혀 읽는 책에 가깝습니다. 한번 책 읽기를 시작하면 "언제 저 책의 마지막 장을 보려나?" 아득한 생각이 지만 결국은 그 여행은 책을 다 읽어야 돌아올 수 있는 여행이지요. 그리고 다시 다른 책을 집어 들어 또 여행을 떠납니다. 그 과정은 물론 설레고 신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행이기도 한 것을 책을 즐겨 읽는다 해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역시 생각으로 먹고사는 자들, 글을 쓰는 이들, 책을 읽는 들은 방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새로운 세상을, 남들이 경험치 못한 세계를, 먼 바다 건너편을 자꾸 보고 싶거든요. 그것이 곧 여행이지요. 그래서 여행과 글 쓰기와 책 읽기일심동체란 생각이 드는 것지요. 방랑하기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하나의 장소에 하나의 글에 하나의 책에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이 책은 확실하고도 다행히 여행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행기가 아닌 여행의 이유기가 되는 것이지요. 여행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었고 여행을 갈망하게 된 이유 말입니다. "여행하며 글쓰기의 영감을 받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단호히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여행은 그야말로 그 여행 당시에는 길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 전진하는  자체지요. 글쓰기의 한가한 영감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 여행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그 여행 이후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 있을 때 생각나는 것이 바로 '영감'이라는 항변이 꽤나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글쓰기도 책읽기도 여행처럼 그 당시가 아닌 나중에 비로소 영감으로 연결되는 것인가 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여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이 언제였을까요? 코로나 이전 언제쯤이었겠지요. 결국 제 자리에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혹자는 엄두도 내지 않는 글을 애써 고쳐가며 쓰는 것, 힘든 것을 알면서도 책을 고르고 책장을 한장한장 넘겨가는 것, 이 모두가 또 다른 여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영감 같은 것은 떠오를 겨를이 없는, 당장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생존여행이기도 하지만 여행 중간중강잠시 목과 마음까지 축이는 커피 한 모금의 달콤함으로 말미암아 멈출 수 없는 경험 하지요. 여행이 다시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쓰기 처럼, 책읽기 처럼 다시 용기를 내어 여행할 수 있기를, 그 설렘과 두렴의 방랑의 날을 그리며.


여행의 이유

한줄 서평 : 여행의, 글쓰기의, 책읽기의 같은 이유 (2023. 05)

내맘 $점 : $$$$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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