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라는 동물은 어릴적 관심을 확 끄는 동물이었습니다. 긴 코뿐만 아니라 부채 같은 큰 귀, 그리고 거대한 덩치는 이 세상의 동물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지요. 그래서 점토로 가장 좋아하는 동물을 빚어 보라는 미술시간의 과제가 주어졌을 때 주저 없이 코끼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점토로 만든 긴 코와 부채 같은 큰 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꾸 몸통에서 떨어져 좀 애를 먹긴 했지만완성된 코끼리의 모양은 아주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나지요.
그러나 코끼리는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데 반하여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은 아니었습니다. 동물원에서 마지막으로 코끼리를 본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뿐더러 동물원이나 서커스장에서 코끼리를 마주하는 것은 원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프리카나 인도로 코끼리를 보러 갈 정도도 아니었지요. 귀와 덩치가 좀 더 작은 인도 코끼리보다는 귀가 펄럭이고 덩치가 큰 아프리카 코끼리가 더 맘에 들긴 하였지만 아직은 아프리카 대륙은 밟아보지 못했으므로 눈에 그리던 긴 코와 큰 귀의 코끼리를 만날 일은 요원한 것이었지요.
다만 그 동안 코끼리에 대한 소식은 안 좋은 소식뿐이었습니다. 상아를 얻겠다고 코끼리를 마구 죽이고 상아를 밀수했다는 기사나 아프리카에서도 코끼리의 서식지와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불운뿐이었지요. 아프리카는 그냥 코끼리를 비롯한 동물들이 지배하도록 통째로 주고 싶었지만, 점점 더 아프리카도 인간의 대륙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간 코끼리를 만나러 가기전에 코끼리는 매머드처럼 전설이나 상상의 동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코가 그렇게 길고 귀가 부채처럼 큰지 마치 상상에서나 존재하는 만화 속 코끼리 덤보로 기억 되는것 말이에요.심지어는 그 큰 귀로 날 수도 있었다고 말이에요.
아기 코끼리 덤보
그래서 '코끼리도 장례식에 간다'라는 책은 코끼리에 대한 동경과 안타까움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동물들의 '의례'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의례라 하면 '관혼상제'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는 예법을 의미하지요. 인간은 동물에서 벗어나며 이 예법을 정례화합니다. 정례화 전에도 이 의례는 본능적으로 각각의 집안에서, 마을에서, 부족에서, 국가에서 나름의 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장례에 대한 의례는 가장 오래되고도 본능적인 의례였을 것이지요.
동물도 특히 이 장례를 치룬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장례의 본질이 슬퍼하고 기억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본능적인 요소라고 할수 있습니다. 특히 그것은 한 공동체 안에서 그렇습니다. 코끼리와 같이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에게는 동료의 죽음의 의미가 남다를 것이고 코끼리도 흙이나 나뭇잎을 덮거나 곁을 한동안 지키고 다시 돌아본다는 점에서 이 행동은 '의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동물원에서 생활하거나 해서 이 '의례'를 배우지 못한 코끼리는 이렇게 흙이나 나뭇잎을 덮거나 곁을 한동안 지키는 '의례'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할 수 없는 환경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 '의례'는 그 무리에서 전해지는 '학습'된 약속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인간의 관혼상제를 비롯한 장례라는 의례가 각 나라와 민족마다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는 것과 괘를 같이 합니다. 각기 다른 공동체가 이 의례를 인위적, 아니 코끼리적으로 정한 의식이기 때문이지요.
요즈음은나이들었지만성인이 영원히 되지 않고 결혼도 안 하고 제사도 잘 지내지 않지요. 그래서 의례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은 '장례'라는 점에서 인간이나코끼리나 의례적인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태고적 본능의 의례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 보다는 개나 고양이의 죽음을 더 슬퍼하고 개나 고양이도 반려 인간의 죽음을 더 애도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먼 이 '의례'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이미 통합되고 있는 놀라운 의례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코끼리도 장례식에 간다'라지만 "개나 고양이는 동료뿐만 아니라 인간의 장례식에도 가고 애도도 한다"라는 점에서 이 책은 그리 신비로운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장례는 처음부터 인간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셈이지요. 오히려 코끼리를 비롯한 개나 고양이가 더 슬퍼하고 애도한다니까요.
그러나 저러나 인간들이여 탐욕으로 인해 코끼리는 그만 괴롭히고 코끼리가 자유롭게 '의례'하며 자유롭게 살 낙원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란 코와 부채 같은 큰 귀가 전설이나 만화에서만 보는 모습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니까요. 코끼리는 역시 동물원이나 관광지나 서커스가 아니라 아프리카 초원의 대 자연 속에서 마주할 때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울 테니까요. 코끼리가 부디자유롭게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