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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Jul 30. 2023

부끄러움의 힘!

feat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조금 부끄럽게도 표지에 매혹적인 여인이 그윽이 눈길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책이 아주 얇았기 때문에 이 여인을 잘못 만났을 경우에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지요. 마음에 별로 들지 않더라도 책을 빨리 읽어버림으로써 곧 이별을 통보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첫인상과 달리 이 이야기는 훨씬 더 옛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극복하기 어려운 나이차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952년이란 해가 자연적으로 기억됨은 작가가 이 년도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었때문입니다. 이 해는 저자의 생이 극적인 획을 긋고 나누어지는 순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낫을 들고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었던 6월의 어느 날 일요일 오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잊히지 않는 암살시도가 계획적이었다거나 성공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이날 오후 가족들이 자전거를 타고 함께 산책을 나감으로써 이 사건은 감정의 해프닝과 화해 무드어지는 듯 보였지요.  그래서 자칫 추리소설을 기대케 했던 이 이야기는 불현듯 성장 소설로 전환되고 말았고 잘못된 만남일지도 모른다는 슬픔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하고 말았습니다. 다만 재빨리 책 읽기를 마무리함으로써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었지요.


그럼에 불구하고  사건이 함의하고 있는 것은 꽤 상징적인 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행동이 그러한 가정환경, 즉 가난하고  당시 하급계층에서 일어날 만한 일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사립학교에 다니는 우등생으로 공립학교에 다니는 들과 구별되어 있다는 자신의 위치를 철저하게 깨부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봤자 저자는 가난한 하급계층에 속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니까요.

뉴진스 슈퍼 샤이

그렇다면 '부끄러움'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가난해서 메이커 옷을 입지 못했거나 작은 셋집에 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 볼 때, 그러한 것들 누군가, 특히 이성친구 앞에 들켰을 때 한두 번쯤 부끄러움이 느껴졌던 것도 같습니다. 이 부끄러움은 책 내용과 같이 그야말로 가난한 환경으로 인해 는 초라함이지요. 갖지 못했거나 그렇지 못한 부모인해 벌어진 부끄러움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와 생각하는 '부끄러움'과는 분명 다릅니다. '부끄러움'이란 가난하고 없어 보여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거짓되고 옳지 않은 일을 행할 때 느껴야 는 감정, 양심에 거리낌 없이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의 파렴치함, 그것이 '부끄러움'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끄러움'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거짓되고 옳지 못해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양심에 거리낌 없이 나쁜 일에 앞장서고도 부끄럽긴커녕 오히려 당당하고, 가난하거나 갖지 못한 것을 더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래서 물질이나 권력을 갖은자는 점점 부끄러움이라고는 없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짓과 옳지 못한 일을 행하면서도 오히려 기고만장하고 갖은것으로 부끄러움을 덮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 대신 부끄러운 것은 갖지 못한 자의 몫이 되어 버렸고요.


'부끄러움' 흔히 금수를 사람과 구분 짓는 요소였습니다.

벌거벗거나 아무 데서나 교미를 하는 것은 동물이었고, 인간이라면 적어도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였지요. 그러나 이제 갖은자는 벌거벗어도, 아무 데서나 교미를 하여도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었으니 이 시대는 점점 부끄러움과 염치를 모르는 짐승세계로 회귀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러한 시대에 '부끄러움'과연? 무엇일까요. 갖은자에게는 불필요한 체면일 뿐 그렇지 못한 자에게나 남은 쓸데없는 양심일까요?

아니 에르노

책을 다 읽고 찾아보니 저자는 의외로 무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였습니다. 가장 최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에 그야말로 '부끄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진실만을 쓴다는 그녀의 품은  자전적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인사건 후 추리 물을 상상했던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지요. 이것은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산 경험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제 그녀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났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대신 그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써 나아가는 듯하지요. 어릴 적 '부끄러움'이라는 경험이 '부끄러움'으로 말미암아 '거짓'과 '위선'이 아니라 '진실'만을 써 나갈 수 있는 힘이 된 것이지요.


'부끄러움'은 바로 감당해야 할 우리의 몫이자 의무 같은 것입니다. 점점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거짓과 옳지 못한 것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금수와 다를 바 없는 파렴치한 세상이 되어갈 때, '부끄러움'이야말로 '진실'되게 말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지요. 바로 아직 '부끄러움'을 아는것이 인간이요 그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


부끄러움

한줄 서평 : 부끄러움의 힘!(2023.07)

내맘 $점 : $$$

아니 에르노 지음 / 이재룡 옮김 / 비채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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