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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Aug 17. 2023

바보야 진정 두려운 건 핵폭탄이 아니라고!

feat 오펜하이머

이 영화를 보기 '이미테이션 게임'이란 영화가 먼저 생각났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비치'가 '앨런 튜링'으로 열연한 이 영화도 '오펜하이머'와 마찬가지로 세계 제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천재'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는 앨런 튜링이 나치에 맞서 '에그니마' 코드를 풀어내는 일종의 컴퓨터의 원형을 만들어 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면, 오펜하이머에서는 원자폭탄을 만들어 마침내 전쟁을 끝내고 세상을 구하게 되지요.

이미테이션 게임

그러나 그런 엄청난 공로를 세운 천재의 삶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는 것이 또한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천재적인 두뇌뿐만 아니라 조국을 구하겠다는 신념과 열정으인간이 도무지 해 내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성공해 내며 전쟁에서 세계를 구하지결국 이 천재들은 철저히 도구로서 이용당하고 버려질 뿐입니다. '앨런 튜링'은 동성애라는, '오펜하이머'는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사상가였다는 족쇄로 그리고 공통적으로 '매카시즘'에 의해 희생되고 말지요.

오펜하이머

원자폭탄의 실험에 성공하여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은 공포스러우면서도 황홀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습니다.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섬광과 거대한 버섯구름이 끝도 없이 피어오르은 모습은 신에게 불을 훔쳐 전해 주었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현실이 된 것처럼 장엄하면서도 지금 저지르고 이는 이 짓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 듯한 공포를 낳기에 충분했지요.

핵구름, 핵버섯

그러나 원자폭탄 보다 두려운 것은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의 증오와 시기심, 권력욕은 어떠한 폭탄 보다도 강하고 뜨겁고 무섭게 떨어지는 법이니까요. 사실 이과 계통, 특히 과학의 영역은 문과 문돌이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입니다. 신은 어찌하여 저렇게 동시대임에도 불구고 평범한 문돌이 말고도 천재적인 과학자를 주었는지 믿어지지 않을 따름이지요.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사랑을 나누며 산스크리트어로 "난 아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읊조릴 때는 정말 인간 아닌 신이 보낸 천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헐 과학도 천재인대 언어도 천재라니! 뭐 이런 경우 없는 인간이...'

프로메테우스의 불

그러나 그렇게 엄청난 천재도, 과학도 고이념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 결국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으로부터 원자폭탄을 훔쳐와 전해준 무시무시한 반신반인조차도 매카시즘 앞에 철저히 분열되고 파괴되고 마니까요.

잔다르크, 마녀사냥

처음에는 영화를 굳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보여주나 의아함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원자폭탄 개발의 과정뿐 아니라 꽤 많은 부분을 전후 오펜하이머의 보안인가 청문회에 대한 내용과 오펜하이머를 매카시즘에 엮어 몰락하게 하였던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독의 상무부 장관 인준 청문회에 대하여 할애하지요. 그냥 열정적으로 히틀러에 대항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고 멋지게 핵 실험에 성공하는 것만을 보여주었다면 영화가 훨씬 재미있었을 인데, 그에 못지않게 전후의 부분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지리멸렬이 보여주고 있었거든요.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원자 폭탄보다 무서운 바로 파괴적인 인간의 '매카시즘'대해 경고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나 생각되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켰고 공통의 적이었으며 마치 지옥에서 온 이름 같았던 '히틀러'와 '나치'라는 이름은 전쟁 후 이제 더 이상 걱정할 이름이 아니게 되었지요.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매카시즘'은 전쟁의 영웅들 마저 희생시키는 정치적 도구와 분열의 기폭 장치로 이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폭탄 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의 정신을 분열시키고 마음마저 방사능 이상으로 피괴시키는 매카시즘 파괴적인 욕망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 모든 일이 미국에서는 한 시대를 거쳐온 역사이고 과거가 되었습니다. 뒤늦게지만 오펜하이머의 자격은 다시 회복되었고, 결국 내통자는 다른 사람임이 밝혀졌으며, 매카시즘에서 비롯된 과오와 반성이 뒤따랐고 경계해야 할 교훈을 얻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살아 다시 꿈틀 되고 있나라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오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보고 알 수 있는 시차 없는 지구촌의 시대에도 여전히 말이지요. 심지어는 그 이념의 갈등으로 이미 수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을 겪고 나서조차도 그 악마에 대한 환상이 결코 명멸하지 않고 지옥에서 깨워 다시 고개 들어 부활시키려는 모습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지요.


영화를 보고 난 생각은 원자폭탄에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으로부터 가져다준 천재들도 마찬가지로 죄가 없지요.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다준 것이 인간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프로메테우스처럼 고통의 형벌을 견뎌야 했지요. 그것은 과학이었을 뿐 인간을 위해서 그리고 히틀러와 나치라는 이념의 핵분열 앞에 세계를 구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었지요.


러나 그것을 사용하고자 했던 이들은 적이 아니라 바로 내부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불의 힘이라는 권력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핵폭탄을 적국이 아니라 내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터뜨릴 준비가 된 자들이지요. 오펜하이머는 손에 피가 묻은 것 같다며 오랫동안 괴로워했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그를 징징거린다며 내쫓습니다. 피 따위는 개의치 않는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지요. 그들은 보다 더 강한 힘을 위해서 수소폭탄을 개발하고, 거기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더더더 큰 힘을 위해서라면 말이죠.


안타깝게도 과학은 그야말로 이를 위한 도구일 뿐이지요. 천재도 도구로 쓰이기는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원자폭탄도 두려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념 앞에서는 고도의 과학적 장난감에 불과할 뿐이고요.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  인간을 위한 진심을 쓰고 버리는 자,  피의 헌신을 하찮게 여기는 자, 인간의 증오와 시기심, 권력욕과 이를 위한 '매카시즘'핵탄두 보다 더 무서운 것임을 오펜하우머를 통해 '놀란' 감독은 경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바보야 진정 두려운 건 핵폭탄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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