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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Nov 07. 2021

E's 북 : 천하 대혼돈

문체 대혼돈 단 화두는 탁월 ($$$)

$ 문체 대혼돈


'천하 대혼란'으로 알고 있었는데 찬찬히 이제 보니 '천하 대혼돈'이네요.

어쨌든 제목만큼이나 '혼돈'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역대급 난이도였습지요.

이 '혼돈'의 문제는 '문체'의 혼돈인지 아니면 '번역'의 혼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문체의 혼돈이라면, 아주 어렵고 긴 문장을 번역자가 그나마 커버한 공로를 살 수 있겠지만, 번역의 혼돈이라면 한 철학자의 뜻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대역죄인이 되겠지요.

여하튼 '문체 대혼돈'의 향연입니다. '철학'이라는 심오한 사유의 문제를 표현하기 위해서라지만, 이렇게 문장이 길고 문장 앞쪽의 의미와 뒤쪽의 의미를 연결 짓기가 어려운 건 처음이었지요. 일부러 그런 걸까요?


이 철학자는 정녕 천하 대혼돈의 상황을 이렇게 난해한 문체에 녹여 놓을 만큼 탁월한 이일까요?


$ 슬라보예 지젝, 이름이 지적이어서


'슬라보예 지젝', 낯선 이름이지만 뭔가 그럴 듯이 '지적인 인'상을 주는 이름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어처구니없이 저자의 이름에 걸려들어 책을 선택하고 말았네요. 이유는 달라도 모든 책을 고를 때 각기 이유가 다 있는 법이지요. 이번에는 정신이 뭔가 '혼돈'의 생각 속에 있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는 철학계에서는 꽤 이름이 있는 사람인 듯합니다. 앞뒤가 뒤틀린 듯한 문체 속에서도 구사하는 용어들 만큼은 범상치 않은 듯 합니다. 사기 같으면서도 그저 허풍쟁이 도사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화두들의 신선함


그래서 이 책은 정말 그냥 집어던질까 하다가 끝까지 어렵게 끌고 갔었지요.

이유는 딱 하나, 던지는 화두들이 꽤나 신선했기 때문이었거든요.

예를 들면 

'트럼프와 유럽이라는 이념', '맞아요 인종차별은 여전합니다', '가짜 뉴스에서 거짓 선전까지, '섹스 봇 논란', '삶의 규제와 자유체험의 환상', '행복이라고? 됐거든!', '폭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중국은 공산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등은, 답은 어렵지만 한 번쯤 숙고해 볼 만한 화두를 족집게 도사처럼 속속들이 던져내고 있었거든요.

질문도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요. 사기꾼은 아닌듯 합니다. 설사 사기꾼이라 해도 질문만은 인정하지요.


'지젝'은 반 우파 포퓰리스트와, 좌파 사회민주주의 사이에 있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이 곧 정답은 아니지요. 이 철학적 논쟁은 그러므로 저자의 생각과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대단히 날카롭고 해학적으로 받아치고 있음으로써, 비 철학자인 우리도 그것에 대한 답을 한번 달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 국어 시험 지문과 논술 문제 화두로는 최고


한편으로 이 혼돈의 문체는 국어 시험의 지문으로, 이 화두들은 논술 문제의 질문으로 쓰라 하면 딱 일 듯합니다. 아마 난이도 최고로 인해서 아우성을 듣겠지만요.


재미있는 것은 이 혼돈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 우파 포퓰리스트로서 '트럼프'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그는 이 천하를 대혼돈으로 몰아넣긴 한 듯 하지요. 옳던 그르던 그랬던 그가 뉴스에서 사라진 지금은 혼돈이 좀 덜해지고 세상은 이전보다 안정된 것 일까요?

별로 그래 보이진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혼돈이지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좌와 우가 의미 없으며,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도, 한탕주의를 나무랄 수 있는 세상도 아니지요.


여전히 혼돈의 세상은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 와중에 한 마디 이정표를 찾아 헤매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결국 삶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정표는 사람이 아니라 늘 '책'에 있었다지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만.



천하 대혼돈 (2020. 12)

한줄서평 : 문체 대혼돈이지만 탁월한 화두의 향연 (2021.08)

내맘 $점 : $$$

슬라보예 지젝 지음 / 강우성 옮김 /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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